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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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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수련이란 역사와 지향점 원리와 체계 어떻게 다른가 깨달음의 단계 대자유의 경지
남사고, 서경덕, 이지함, 황진이, 신사임당, 이순신 등이 선계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완성한 대표적인 분들이셨으나, 이러한 사실이 일반에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옛 선인들의 숨겨진 수련 역정은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도서출판 수선재 펴냄)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선계수련은 문화영 선생님이 영적인 스승인 천강(天降) 선인에게 선계수련의 맥을 전수받음으로써 시작되었고, 1998년 창립된 수선재를 통해 일반에게 널리 전수되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인연 있는 소수에게만 간간히 전수되어온 선계수련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보급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 선계수련은 환웅-단군을 시조로 삼거나 조선 조 단학파(丹學派)를 맥으로 삼는 타 선도수련과는 다른 맥입니다. 중국 기공이나 요가의 맥과도 다릅니다.


선계수련의 지향점은 ‘선계(仙界)’입니다. 선계란 수련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의 경지, 대자유의 경지를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선계의 반대말은 속계(俗界)입니다. 속(俗)이란 글자를 보면 사람(人)이 골짜기(谷)에 있는 형상입니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휘둘리며 사는 어두운 골짜기의 모습입니다. 선계란 이러한 어두운 골짜기에서 벗어나 햇볕 따뜻하고 맑은 바람이 부는 산등성이에 올라서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깨닫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엄청난 것이 깨달음이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을 알았다는 얘기입니다. ‘우주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줄 알았더니 하나의 어떤 질서에 의해서 움직이더라’ 하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지요. 인간들의 행동이나 인간사회의 모습이 우연인 것 같고, 억울한 희생자도 많은 것 같고, 중구난방인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까 어떤 법칙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자기한테 닥치는 일도 모르지만 또 사회적으로 전체적으로 닥치는 일에 대해서도 모릅니다. 그 모든 사태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모르니까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기도 합니다. 가뭄이 몇 년 이상 계속되면 어떻게 되더라, 어떤 전염병이 나오더라, 하는 걸 과학적으로 규명을 합니다.

그런데 깨달음이란 과학적으로는 몰라도 그냥 아는 것입니다. 왜 계속 가문지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지식 없이 지혜로 알아지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깨달으면 일단 삶이 달라집니다.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차이를 아십니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의시가 개입된 적극적인 행동이고, ‘살아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삶이 달라지는가? 깨달으면 첫 번째로 앎이 생깁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안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아는가? 우선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뭘 하던 사람인지, 뭘 해야 하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이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됩니다. 자신이 떠나 온 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가야 할 곳이, 지금 어떤 시점에 있는지 알게 됩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탈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항해를 할 때 떠난 곳이 분명하고 갈 곳이 분명하면 표류를 안 하잖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분명치 않으면 망망대해에 떠서 표류하다가 좌초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사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지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세상공부를 굉장히 많은 밑천을 들여가면서 어렵게 하지요.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가면서 어렵게 세상공부를 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해서 세상을 다 알았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겉모습은 알 수 있을지언정 세상이 어떤 원리와 구조에 의해서 돌아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까 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우주의 일원이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가 인간 세상의 일원일 뿐 아니라 우주의 일원으로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에 대해 알고, 세상에 대해 알고, 또 우주에 대해 알면 그 때는 도리를 알게 됩니다. 인간의 도리, 세상의 도리, 우주의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도리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인간적인 도리와는 좀 다릅니다. 우주의 도리는 따로 습득을 해야 됩니다.

깨달으면 두 번째로 사랑이 생깁니다. 이때의 사랑은 우주의 사랑입니다. 『선계에 가고 싶다』를 보면 우주의 사랑이 어떻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인간적인 사랑,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 같은 운명체라는 것, 한 나무의 같은 뿌리로부터 나온 열매라는 것, 이런 것을 알 때 진정으로 타인을 궁휼히 여기는 그런 사랑이 나옵니다.

이런 것을 모르면 그 때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정(情)이라고 부릅니다. 정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사랑은 승화된 감정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생기면 같은 생명체를 사랑하게 되고, 또 같은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애정을 갖게 됩니다.

깨달으면 세 번째로 자신이 아는 것, 사랑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아는데 그치지 않고, 또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알고 사랑하는 것을 끝내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하단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는데 일단 깨닫고 나면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상단에서 앎이 시작되어, 중단에서 사랑이 싹트고, 다시 하단의 의지로써 자신의 사명을 이뤄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보통 삶과는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 드라마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허준이라는 분이 그토록 감동적인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허준이라는 분이 자신의 삶에 대한 ‘앎’이 없었다면 그런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광해군이 허준에게 곁에서 안위를 돌봐달라고 하는데, 자신은 환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노라고 사양합니다. 그렇게 의사로서 환자들에 대한 사랑이 있는 분이셨습니다. 또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준다는 뜻도 있었겠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이지요.

또 주먹밥을 어린아이가 대신 먹도록 주는데, 자신의 명을 아는 선인의 마지막을 잘 표현했습니다. 하필이면 왜 어린아이에게 주먹밥을 주었는가? 어리다는 것은 대단한 가능성을 지닌 생명입니다. 그 어린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 분의 임종 장면도 참 감명 깊은데 무엇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셨습니다. 깨닫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헛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깨닫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인 것이지요. 그 분은 공부를 하시면서 자신이 선인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사명을 알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