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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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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수련이란 역사와 지향점 원리와 체계 어떻게 다른가 깨달음의 단계 대자유의 경지
선계수련은 호흡 수련과 의식 수련을 반반 병행한다는 점에서 타 명상법과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식이 높아도 호흡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의식과 현실의 괴리만 더 커집니다. 눈만 높아져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호흡만 하면 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한 10년은 걸리기 때문에 호흡과 의식을 병행하여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이렇다 할 수련법이 없었기 때문에 말씀으로 깨는 방법만 썼습니다. 수련법은 경전에도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수련법을 전달한 경우는 없었는데, 왜냐 하면 수련법은 상대방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을 때 전달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에 써놓더라도 대충 객관적인 내용만 써놓지 비밀은 다 빼놓습니다. 직접 전수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재목이 안 된다 싶으면 알맹이는 빼고 전수를 합니다. 그런데 선계수련은 전인을 만들고자 하는 수련이기 때문에 말씀과 호흡을 다 같이 공부하도록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자꾸 자신을 비워내는 수련을 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빠른 방법, 쉬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은 노력한 만큼 가는 것이지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 일주일 내지 한 달 만에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일주일 만에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명상 단체에서는 ‘버리는 방법’을 쓴다고 얘기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찌꺼기가 많이 끼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버려야만 본성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버리는 것만으로는 힘이 생기지 않고, 또 지속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호흡을 통해 기운을 지원하고 또 진화할 수 있는 말씀을 불어넣어야만 지속력이 생깁니다.


선계수련은 단전호흡을 한다는 점에서 요가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가는 복식호흡을 합니다. 가슴에서 하는 호흡은 얕은 호흡이지만, 깊이 호흡을 하다 보면 복식호흡을 하게 됩니다. 요가도 ‘챠크라’라고 하는 우리 몸에 신성을 깨우는 일곱 부분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중의 하나가 단전이라고 말할 뿐 단전이 크게 중요하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래서 기운을 어디에 가두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기운을 가두지 않으면 뭘 해 볼 수는 없습니다. 어딘가에 가둬야만 동력이 될 수 있고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운을 모아 뭔가 해 보겠다 할 때는 기운의 저수지인 단전이 필요합니다.

요가가 중요시하는 것은 기운의 흐름을 막히지 않게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기운의 유통, 자연스럽고 막히지 않는 흐름을 중요시합니다. 그렇게 하면 편안해지니까 거기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뭘 해 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단전을 통해서 우주로 가겠다’ 하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단전에 대한 개념은 없는 것이지요.


선계수련은 기운을 발산하지 않고 내기(內氣)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기공과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계수련을 간단히 표현하면 두 가지인데, 첫째는 내기를 강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파장을 낮추는 것입니다. 내기 즉 내 안의 기운을 강화하여 업을 해소하고 또 파장을 낮추는 수련을 하는 것입니다.

기공(氣功)의 경우 기운의 흐름을 강조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기공을 하시는 분들은 온몸을 흐르는 기의 유통에만 관심을 두고 축기 같은 것은 안 합니다. 또 기공을 하면 기운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기공의 맥은 지기(地氣, 지구에서 나오는 기운)인데 지기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수련은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지 않습니다. 내기를 강화하고 익혀서 그 기운의 힘으로 업을 풀어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있어야 오랜 세월 쌓여 온 업을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으로 가려면 반드시 업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파장을 낮추는 이유는 자신의 본성을 만나려면 본성의 파장에 맞추는 수밖에 없는데 그 본성의 파장이 한없이 낮은 대역의 파장인 알파파장이기 때문입니다.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아주 잔잔한 파장입니다. 거기에 맞추려면 파장을 낮추는 방법 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선계수련과 종교의 차이점은 우선 ‘갈고 닦는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종교가 ‘믿으면 천당 간다’는 식으로 내가 없이 믿는 것인데 비해, 선계수련은 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갈고 닦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믿음이 상실되면 갈 곳이 없지만, 선계수련은 믿음이 상실되었다 하더라도 갈고 닦은 만큼은 자신의 것으로 남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선계수련은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타 종교와 다릅니다. 종교의 경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고,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며, 믿음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으로만 전파했지 방법을 알려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깨달음으로 가는 정확한 수련법이 전수된 예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각 종교의 창시자가 이러이러한 수련을 했을 것이라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기는 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수련을 하셨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구체적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드린다’는 점에서 선계수련의 근본적인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