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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수련이야기(10)-인간의 욕구

조회 수 815 추천 수 0 2016.07.31 12:25:22

인간의 욕구

 

 

욕구의 문제

 

원래는 이번 글의 주제로 ‘인간의 언어’를 다뤄볼까 했는데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수련 중에 문득 ‘인간의 욕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앞의 글 [선악의 피안]이 인간의 본성을 다룬 것이니 이번엔 본능이나 욕구를 다뤄보는 것도 그런대로 어울리겠다 싶었습니다.

 

글머리에 ‘욕구의 문제’라고 써놓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인간에게 욕구는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애를 써보거나 깨달음 같은 것을 추구해 보신 분이라면 욕구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웬만큼 아실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우선 욕구와 욕망과 욕심의 개념부터 구별하고 갈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특히 욕구와 욕망은 구별되지 않은 채 사용되는 수가 많은데, 구별할 필요가 있는지도 한번 알아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인간의 욕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이론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매슬로의 욕구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만 수련의 관점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욕구와 본능은 어떤 관계인지, 본능의 욕구와 본성의 욕구는 어떻게 다른지, 인간의 욕구는 선한지 악한지를 살펴본 다음에,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대해 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욕구와 수련은 어떤 관계인지를 선서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금촉수련, 특히 금욕수련이 비중 있게 다루어질 것입니다. 이하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욕구, 욕망, 욕심

 

먼저 욕구의 정의부터 알아보겠습니다. [다음국어사전]을 보니 욕구(desire)무엇을 얻고자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정의되어 있군요. 또 [다음백과사전]은 욕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거나 혹은 후천적인 사회생활의 결과로 만들어진 감정이나 심리상태로 자신에게 부족한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상태를 말한다. 식욕이나 성욕과 같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생명 유지와 개체 보존을 위해 가지는 선천적인 욕구도 있지만, 특정한 상품이나 서비스 등에 대한 욕구와 같이 인간이 사회적, 경제적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학습된 욕구도 있다.

 

다음에 욕망의 정의를 보겠습니다. [다음국어사전]에는 욕망(desire)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러한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다음백과사전]에는 인간의 행동을 야기시키는 동인이라고 간략하게 요약되어 있군요.

 

영어로 똑같이 desire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사전의 정의만으로는 욕구와 욕망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인터넷 자료들을 좀 뒤져보니 욕구와 욕망을 구별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지만 딱히 이것이다 할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좀 주제넘은 감이 있지만 제 방식으로 욕구와 욕망을 구별해 보고자 합니다.

 

이 글은 매슬로의 욕구이론을 기본으로 다룰 예정이고, 매슬로가 말하는 욕구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은 욕구가 아닌 욕망으로 보기로 하겠습니다. 배가 고파서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은 선천적인 것이므로 욕구이고, 최신형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것은 학습된 것이므로 욕망입니다.

 

욕구는 아직 특정한 대상을 향하기 전의 것으로 한정하고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은 욕망으로 보기로 하겠습니다. 배가 고파서 무언가 먹고 싶은 것은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으니 욕구이고, 된장국에 밥을 먹고 싶다면 대상이 특정되었으니 욕망입니다. (욕망의 대상은 구체적인 사람이나 사물을 말할 수도 있고 어떤 부류를 말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령 알콜 중독자가 아무 술이나 먹고 싶다면 술이라는 부류가 대상이 되겠습니다.)

 

욕구는 무의식적인 것이든 의식적인 것이든 가리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꿈에서 무의식적으로 배가 고픈 것이나 깨어 있을 때 의식적으로 배가 고픈 것이나 같은 욕구임에 차이가 없습니다. 이에 반해 욕망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것이므로 당연히 의식적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욕망은 의식적일 것이나, 간절하거나 습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꿈에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욕구와 욕망을 구별하는 이유는 뒤에서 보겠지만 욕구는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반면에 욕망은 악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배가 고파서 무언가 먹고 싶은 욕구는 선악의 범주에 들지 않지만, 남의 음식을 훔쳐 먹고 싶은 욕망은 악한 것입니다.

 

욕구와 욕망에 비하면 욕심(greed)은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다음국어사전]은 욕심을 어떠한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과도한 욕구나 욕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욕심은 악한 것이 명백하므로 자세한 언급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매슬로의 욕구이론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했습니다. 즉 생리욕구, 안전욕구, 소속(사랑)욕구, 존경욕구, 자기실현욕구입니다. 이를 욕구 5단계 이론이라고 합니다.

 

생리욕구는 자기보존과 종족보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이며, 육체적 욕구에 해당합니다. 생리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환경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안전욕구, 소속(사랑)욕구, 존경욕구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욕구이며, 주로 정서적 욕구에 해당합니다. (안전욕구는 두려운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므로 두려움이란 감정과 관련됩니다.) 인간은 이 욕구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에 상대적으로 의존하며 다소의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자기실현욕구는 자기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욕구이며, 영적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실현욕구를 선계수련의 용어로 표현하면 진화욕구라고 할 수 있으며, 세분하면 지혜욕구, 사랑욕구, 의지욕구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욕구이론에 의하면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욕구가 나타난다고 하며,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욕구 불만이 생기고 욕구 불만이 심하면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매슬로의 욕구이론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를 더한 7단계이론과, 여기에 초월적 욕구를 더한 8단계 이론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는 자기실현욕구 아래에 놓이고, 초월적 욕구는 자기실현욕구 위에 놓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인지적 욕구, 초월적 욕구, 심미적 욕구는 대략 진, 선, 미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런 덕목들이야말로 자기실현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추가된 세 욕구는 자기실현욕구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진, 선, 미는 모두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초월적)인 것이 있지만, 진과 미는 인지적 욕구와 심미적 욕구에 대응하므로 초월적 욕구는 선과 대응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욕구와 본능

 

[다음국어사전]에 의하면 본능은 학습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동물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갖추고 있는 행동양식이나 능력을 말합니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을 본능이라고 합니다.

 

행동양식이나 능력을 말하건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나 감정을 말하건 본능은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앞에서 저는 욕구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모든 욕구는 일단 본능적 욕구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욕망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을 포함하므로 본능적인 것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보통 본능적 욕구라고 하면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육체적 욕구만 생각하기 쉽지만, 매슬로의 욕구이론에서 보았듯이 욕구에는 육체적인 것 외에도 정서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고, 세분하면 인지적인 것, 심미적인 것, 초월적인 것까지 포함됩니다.

 

 

본능적 욕구와 본성의 욕구

 

그런데 선계수련에서는 본능과 본성을 구별하므로, 모든 욕구는 본능적 욕구라고 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던 앞의 말을 조금 수정하여 욕구의 일부는 본성의 욕구라고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욕구 중에서 본성의 욕구라고 할 만한 것은 영적인 욕구 즉 진화욕구이니 매슬로가 말한 자기실현욕구가 이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네 가지 욕구를 본능적 욕구로 보는 데는 별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본능적 욕구는 결핍을 채우려는 욕구이고, 본성의 욕구는 영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욕구입니다. 이렇게 보면 매슬로가 자기실현욕구를 성장욕구라고 부르고 나머지 네 욕구를 결핍욕구라고 부른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저는 본성의 욕구라는 표현을 쓰면서 스스로 놀랐습니다. 욕구는 오로지 본능에서만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본성에서도 나온다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동안 ‘본성의 소리’이니 ‘본성의 부름’이니 하는 말은 들어봤어도, 그리고 ‘진화욕’이라는 말을 무수히 듣고 말해 왔으면서도, 그 소리와 부름이, 그 진화를 향한 열망이 본성의 욕구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욕구는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욕구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라면 ‘인간의 욕구는 선한가 악한가?’ 하는 물음은 좀 격이 떨어집니다. 인간의 욕구는 선악의 범주에 속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음이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앞의 글 [선악의 피안]에서 살펴본 것처럼 본성을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본능은 과연 어떤가를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욕구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선악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의 현실을 보면 욕구는 과하거나 모자라는 경향이 매우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욕구는 과해도 탈이고 부족해도 탈이니 욕구의 과부족은 악이라고 해야 할 테니까요. 가령 밥을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고 너무 안 먹어도 문제 아닙니까.

 

식욕, 성욕, 명예욕 등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과부족이 악이라는 게 쉽게 이해됩니다만, 과연 자기실현욕구도 (부족할 땐 당연히 문제겠지만) 과할 때 문제가 될까요. 진화욕구가 강한 것도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진화욕구가 강한 것도 역시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강한 진화욕구는 수련 초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나중에는 외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데 상당한 장애가 됩니다. 수련이란 앉아서 호흡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주변과 두루 조화를 이루며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본능적 욕구든 본성의 욕구든 욕구를 적절히 제어하여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중용의 실천으로서 그 자체가 본성의 욕구에 따르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오욕칠정

 

욕구 얘기가 나온 김에 오욕칠정(五慾七情)에 대해서도 좀 알아보겠습니다. 오욕은 인간의 대표적인 다섯 가지 욕구를 말하며 보통 식욕, 성욕, 수면욕, 물욕, 명예욕을 듭니다. 칠정은 인간의 대표적인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하며 보통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을 듭니다.

 

오욕과 칠정은 인간의 대표적인 욕구와 감정을 든 것이므로 어떤 것을 들건 큰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매슬로의 욕구이론을 틀로 삼아 오욕을 한번 분석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오욕 중 식욕, 성욕, 수면욕은 생리욕구에 속하고, 물욕은 안정된 생존을 위한 것이므로 대략 안전욕구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명예욕은 존경욕구에 속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욕에 매슬로가 말한 소속(사랑)욕구와 자기실현욕구가 빠져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특히 영적인 성장욕구인 자기실현욕구가 빠져 있는 것은 인간의 욕구를 나쁜 것으로 보는 동양의 전통적인 인성론이나 수양론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오욕칠정과 관련하여 저는 오래 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오욕의 욕과 칠정 중 하나인 욕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자료를 뒤져보니 대체로 오욕의 욕은 본능적 욕구를 말하고 칠정의 욕은 욕심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칠정의 욕이 과연 욕심일까 의문이 생깁니다. 욕심은 욕구나 욕망이 과한 것이어서 악한 것인데, 칠정으로 대표되는 감정은 과하거나 부족하지만 않으면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슬픔은 그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 슬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오히려 슬플 때도 슬퍼할 줄 모르는 것이 나쁜 것이고, 과도하게 슬퍼하는 것이 나쁜 것이겠지요. 두려움도 그렇습니다. 과도한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두려움을 모르는 것도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유아들은 두려움을 모르는데 만일 아이들이 자라면서 두려움을 배우지 못한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칠정에 들어 있는 욕을 욕심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자연스런 감정인데 욕만 나쁜 욕심으로 보는 것은 일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칠정의 욕은 오욕을 대표하는 말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오욕을 칠정 속에 집어넣긴 했지만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오욕이 과연 감정에 속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오욕 중 식욕, 성욕, 수면욕은 육체적인 것이니, 물욕과 명예욕만 정서적 욕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욕을 정서적 욕구로 본 것은, 앞에서 안전욕구를 정서적 욕구로 보았듯이, 물질을 통해 두려운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매슬로의 자기실현욕구는 영적인 것입니다. 인지적 욕구, 심미적 욕구, 초월적 욕구를 감안하더라도, 심미적 욕구는 정서적 욕구와 가깝다고 볼 수 있지만, 인지적 욕구는 지적 욕구로서 정서적 욕구와 거리가 멉니다. 초월적 욕구를 앞에서 말했듯이 절대적(초월적) 선을 향한 것으로 본다면 이것은 의지적 욕구에 해당합니다. (진, 선, 미는 각각 사고, 의지, 감정의 이상적 지향을 가리킵니다. 앞의 글 [선악의 피안] 참조.)

 

그러니까 종합해 볼 때 인간의 욕구에는 육체적인 것, 정서적인 것, 지적인 것, 의지적인 것, 영적인 것이 섞여 있기 때문에 칠정 중에 오욕이 들어간다고 해도 그것이 꼭 감정을 뜻하진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욕구 자체는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므로 의지에 속한다고 봅니다. 다만 욕구의 원천은 육체(감각), 사고, 감정, 의지 등 다양하겠습니다.)

 

허나 문제의 해결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칠정의 정(情)을 욕구와 감정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보면 되니까요. 사단에 지적인 사고작용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들어 있음을 감안하면 칠정의 정(情)도 감정과 욕구(의지)뿐만 아니라 사고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욕구와 수련

 

이하에서는 선서 말씀을 중심으로 욕구와 수련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욕구보다는 욕망이나 바람과 같은 표현이 많지만, 그 실질적인 의미가 욕구이건 욕망이건 문맥을 이해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다른 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씀들은 읽게 쉽게끔 적절히 다듬었고 진한 글자로 표현했습니다.)

 

바람은 그 자체가 수련을 끌고나가는 원동력이자 한편으로는 방해가 되는 면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이런 양면성이 있으며 이 양면성조차도 잘 조화를 이루어 균형 상태에서 이끌어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욕구가 있어야 인간은 삶도 가능하고 수련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욕구가 과하면 삶에도 수련에도 방해가 되는 것 또한 명백하니 조화와 균형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라는 생각이 없고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며,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갖고 싶어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은 취하고 싶은 것이며 내 것은 취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이미 내 것이거늘 내 것이 아니라는 그 생각이 사람을 초조하고 서두르게 하는 것입니다.

 

자타가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이기심을 비롯한 모든 욕심의 근원일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편히 살고자 하면 수련을 안 하는 편이 낫습니다. 수련은 인간 세상의 각종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멀리 떼어 놓음으로써 하늘에 가까이 가는 것이니만큼,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하늘이 필요한 것들을 내려주는 경우 외에, 스스로 구하여 향유하려 함은 수련에서 역행하는 일입니다.

 

수련이 욕망을 멀리 떼어 놓는 것이라면, 이때의 욕망은 악한 욕망이거나 욕심의 의미입니다. 욕구의 의미라면 절제해야 한다고 해야겠지요. 물욕에 관한 아래 말씀처럼 말입니다.

 

물(物)은 멀리할 것도 가까이할 것도 아니며 다만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족한 것으로서, 그 부담을 덜면 덜수록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물 위주로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져 있어 보일 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니, 항상 하늘을 우러러 합리화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물에 대한 잡념은 수련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수련 중인 사람이라고 해도 물에서의 완전한 해탈은 어렵습니다. 물에서의 완전한 해탈이 어렵다면 이를 유효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수련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절약과 절제로 벗는 법과 풍족과 여유로 벗는 법이 있는바, 상근기의 경우 풍족과 여유로 벗는 법이 낫습니다. 상근기는 대개 큰 욕심이 없으므로 그 욕망이 쉽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말씀들은 성욕에 관한 것입니다. 성욕은 우주의 근본적인 에너지로서 종족 보존을 위해, 그리고 진화를 위해 사용됩니다.

 

성욕은 선계에서도 필요한 것이며 우주를 진화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에너지(기)의 일종입니다. 불필요하고 필요하고가 아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며,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축복받은 기운입니다. 인간은 성욕으로 인하여 종족 보존에 성공하여 모든 발전의 원동력을 일으켜 왔으며 다른 생물 역시 그러합니다.

 

성욕의 기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진화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하며,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합니다. 성욕은 가장 큰 혜택이자 수련을 막는 가장 큰 장애이기도 합니다. 성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수련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수면과 수련의 관계에 관한 말씀을 하나 보겠습니다.

 

잠은 사람에 따라 다르나 6-8시간은 자야 합니다. 잠은 많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니 일정 시간 수면을 취하고 깨어 있는 시간을 늘려 가급적 의식세계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것이 좋습니다. 무의식세계는 현재의식으로 끌어내기엔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가급적 의식세계에서 생활하고 수련함이 요구됩니다. 수면 중에도 수련은 되지만 의식세계의 수련에 비해 1/100 정도의 효과밖에 나지 않습니다.

 

아래 말씀의 안이함은 편하게 쉬려는 욕구일 것이며, 수면욕과 함께 묶어서 ‘휴식욕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휴식욕구도 과하거나 부족할 때 나쁜 것이지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습니다.

 

안이함에 빠지다가는 점점 더 안이함에 유혹되어 결국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안이함은 그 자체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유혹 중의 하나입니다.

 

정 힘들면 쉬는 것이 좋으나 정도 이상의 휴식으로 미래를 포기하는 법이 없도록 하십시오. 결과를 눈앞에 두고 잠시의 휴식에 젖어 있다가는 눈앞에서 결실을 놓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쉬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는 것은 황금보다 더한 결실을 가져올 수 있으나, 쉬지 않아야 할 때 쉬는 것은 나태에 직결되는 것으로서 자신을 잃는 가장 결정적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제 진화욕구에 관한 말씀들을 보겠습니다. 견성(본성을 만남)으로 대표되는 영적인 진화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며,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진화욕구는 근원적으로는 ㅎ.ㄴ(아래아 한) 즉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오행의 부조화를 통해 조화의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원하는 바가 있으니 바로 견성입니다. 허나 본인이 이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아는 데만도 수천 인연을 거치게 되며, 알게 된 후에도 또 수천 인연을 거쳐 견성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본래의 자기를 확인하고 일치시키는 일은 그 이상이 있을 수 없는 보람이며 자기만족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최고의 보람을 추구함은 가장 큰 성취이자 결실로서, 그 복은 어떤 복도 능가하는 기쁨입니다.

 

ㅎ.ㄴ(아래아 한)은 하나의 뜻으로 모두 모여 통일되는 것을 의미하는바, 흔들림이 없는 상태로 통일되는 것입니다. ㅎ.ㄴ(아래아 한)은 모두에게 동질성을 부여하므로 동화에의 욕망을 일으켜 주기도 하며, 근본적으로 하나임을 일깨워 주기도 합니다.

 

인간의 삶은 오행이 부조화되어 있어 그 부조화로 인하여 조화에 다가가려는 욕망이 나타나게 되고, 그 욕망이 수련으로 이어질 때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아래 말씀들은 욕구를 다스리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기, 포기하기, 서두르지 않기, 마음을 가라앉히기 등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라지 않은 뜻밖의 선물이 더욱 반갑듯이 바라지 않음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바람은 그 자체가 갈증이며 그 강도가 심할수록 충족은커녕 갈증만 심해질 뿐이니, 적당한 선에서 바람을 줄여 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구함으로써 내 것이 되지 않은 부분은 포기함으로써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포기하면 그 순간 사라진 것 같아도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며,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수련생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감정의 부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바가 있습니다. 원하는 바에 대하여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으나, 항상 확실한 것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업장이 두터워 워낙 깊이 욕(慾)에 빠졌으면 끄집어내기가 어려우며, 얕게 빠졌다면 끄집어내기가 쉽습니다. 욕에 빠짐과 본성의 경험은 정반대인 것 같으나 사실상 원리는 하나로서, 한 발을 우측으로 딛느냐 좌측으로 딛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욕에 빠지는 것이요, 마음이 가라앉으면 각(覺)에 이르는 것입니다.

 

욕구는 과할 때만 문제가 아니라 부족할 때도 문제입니다. 아래 말씀들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필요한 것을 구함에 관한 것으로서 반드시 욕구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욕구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방법은 호흡이며, 필요한 것을 구하는 방법은 뜻입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아가는 것과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이 다릅니다. 부족한 부분 역시 내 안에 있는 것이니, 내부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으면 이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고 나의 부분들을 받아들이십시오. 받아들이는 방법은 호흡입니다.

 

매사에 충실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역시 하늘의 뜻입니다. 필요한 것은 뜻한 바 있으면 구해집니다. 구해지지 않음은 뜻이 부족한 것입니다.

 

 

금촉 및 금욕

 

이하에서는 선서 말씀을 중심으로 금촉수련에 대해, 특히 금욕수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금촉의 개념에 관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금촉(禁觸)이란 몸에 관한 일체의 접촉을 하지 않는 것, 즉 기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기운을 열지 않고 만나므로 공사가 분명합니다. 대화만 하고 상대방 일에는 참견하지 않으므로 기운을 섞지 않습니다.

 

금촉의 대표적인 것은 금욕이지만 금촉은 그 외에도 다양합니다. 자꾸 과시하고 싶은 사람은 과시욕을 누르는 것, 끊임없이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욕구를 끊는 것, 먹는 것을 밝히는 사람은 식욕을 끊는 것이 금촉입니다. 눈으로 사치하는 사람, 듣는 것을 즐기는 사람, 책에 빠지는 사람은 그런 욕구를 끊는 것이 금촉입니다.

 

사람에 따라 금촉 대상이 다르지만, 금촉의 핵심은 기존에 에너지를 분출해왔던 일을 금하는 것, 그 일을 한다 하더라도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금촉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에게는 열 가지 감각이 있습니다. 그중 다섯 가지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서 오감(五感)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다섯 가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 맛이 없는 것을 맛보고, 냄새 없는 것을 냄새 맡고,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지는 감각으로서 이들을 합하여 육감(六感)이라고 합니다. 오감에 빠지면 육감이 마비됩니다. 표면의 현상만 보고 이면의 숨어 있는 이치를 보지 못합니다. 세계 전체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합니다.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훨씬 더 커서 비율로 치면 1 대 99 정도이니 오감으로 파악하는 세계는 전체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육감을 열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파악하려면 오감의 문을 닫아야 합니다.

 

금촉은 자신을 통제하는 마음공부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몸에도 의사가 있어서 안 하려고 해도 습관이 들어 몸이 저절로 당깁니다. 마시고 싶지 않아도 술만 보면 저절로 군침이 돈다거나 성욕을 제어하고 싶어도 이성을 보면 몸이 저절로 반응합니다. 금촉수련을 하면 무절제한 욕구를 제어함으로써 마음을 통제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본능적인 욕구를 이겨본다는 것이 대단한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금촉에 성공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일주일간 말을 안 해보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자신에 대해 아주 큰 믿음이 생깁니다. 반대로 해내지 못하면 패배감이 생기고 자신에 대한 불신이 쌓입니다.

 

금촉은 빠른 길입니다. 넉넉하게 할 것 다 하면서 하면 오래 걸립니다. 특히 성욕을 끊는 것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가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데 힘들다고 그때그때 해소하면 끝이 없습니다.

 

금촉은 일생생활과 병행할 수 있으며, 쉽진 않지만 해낼 수만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이른바 생활금촉입니다. 관련 말씀을 보겠습니다.

 

세상 속에 묻혀 살면서 시행하는 금촉수련은 세상의 수억 가지 감정의 한 가운데를 뚫고 나오는 방법입니다.

 

가정에서 주부로 생활하면서도 금촉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밥 하고 살림 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 일 다 하면서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늦게 들어오거나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더라도 그냥 바라보기만 하고 더 이상 들어가지 않습니다. 반응하여 주고받으면 벌써 기운을 섞는 것입니다. 차라리 산속에서 혼자 수련하면 쉬울 텐데 속가(俗家)에서 할 일 다 하면서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잔인한 일입니다. 허나 해낼 수만 있다면 훨씬 빠른 길입니다.

 

외딴 곳에서 혼자 수련하면 아무리 일정 경지에 올랐더라도 다시 속세로 내려와 사람들과 상대하면서 반응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특히 천적을 만나면 공부를 새로 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면서 금촉 수련을 하다 보면 아무리 센 상대가 와도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한 마디로 고수가 되는 것입니다.

 

금촉은 수련과정에서 무척 중요한 공부이지만, 금촉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하면 되는 것이며, 몸을 부딪쳐 가며 쓴 맛 단 맛을 겪어보는 경험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관련 말씀을 보겠습니다.

 

금촉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금촉도 때가 있어서 어떤 때 어떤 부분에 관하여 금촉을 하는 것이지 무작정 하는 게 아닙니다. 가령 처음 수련을 시작해서 백일 동안 단전을 형성할 때는 금욕을 해야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필요한 때에 하면 됩니다. 특히 경험이 적은 젊은 분들은 무조건 금촉보다는 경험이 더 필요합니다. 겪을 것을 겪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항상 본인이 몸으로 부딪쳐서 터득하는 것이 공부가 크게 됩니다. 쓴 맛을 봐야 단 맛을 아는 법입니다. 아무리 사랑이 어쩌고저쩌고 해도 본인이 직접 뜨거운 맛을 봐야 사랑의 느낌을 아는 것이지 남 얘기만 들어서는 모릅니다.

 

금촉의 백미는 역시 금욕입니다. 관련 말씀을 보겠습니다.

 

인간에게 성욕이 내려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종족 보존을 위한 도구이고, 다른 하나는 선인이 되기 위한 강력한 시험 도구입니다. 종족 보존은 성욕을 활용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본능에 따르는 것이나 선인화는 성욕을 억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본성을 향하는 것입니다.

 

성욕은 부모의 재산을 가지고 가출하려는 탕아와 같아서 기운을 안으로 받아들이고 공들여 단련하는 축기와는 반대로 기운을 외부로 방출하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성욕은 수련의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고 수련을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련 시 가능한 금욕을 하는 게 좋은 이유는 회음으로 정기와 탁기가 같이 나가기 때문입니다.

 

수련 과정에서 성욕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반드시 재발하여 자신이 그동안 공들여 쌓아놓은 에너지마저 본능 차원에서 소모하게 되므로 방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관리해야 합니다.

 

금욕 중에는 성(sex)의 문이 닫힘에 따라 심적이 고통이 있지만 그만큼 외부에서 기적인 교류가 있게 되므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성욕을 끊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금욕하라고 하면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비를 넘고 나면 달라집니다.

 

금욕 기간은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성을 봐도 아무렇지 않고 스스로도 아무 생각이 안 날 때까지 하면 됩니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떠오르면 잊어버리고, 떠오르면 잊어버리고 하는 연습을 계속하면 정말로 잊어버리게 됩니다.

 

금욕은 결혼 전에 해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다만 결혼한 사람들은 적절한 조화가 필요합니다. 물론 금욕을 통하면 수련이 더 빠르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관련 말씀을 보겠습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금욕으로 인해 가정불화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하셔야 합니다. 백일수련이나 단전재건수련과 같은 특정 시기에는 금욕이 좋지만 이런 때도 배우자에게 양해를 구하여 부드러운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때에는 부부간에 잘 지내시는 게 좋습니다. 갑자기 금욕을 하면 상대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데 그것 또한 도리가 아닙니다. 다만 지나친 손기(損氣)가 되지 않도록 적당한 선에서 절제하는 게 좋습니다.

 

부부간에 정(精)을 아껴 정(情)이 솟지 않음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과다한 사용으로 정을 소모함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수련을 위한 적정량의 확보와 생활을 위한 적정량 사용의 조화 위에서 양립시켜 나갈 수 있는 지혜야말로 무리 없이 수련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성욕을 극복하는 수련법에 관한 말씀도 있습니다.

 

성욕을 극복하고 본성으로 나아가는 수련법은 두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내부를 성찰하는 과정을 통하여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본성을 일깨우는 것(내관법)이며, 둘째는 일깨워진 본성을 통하여 본능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가 외부로 표출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성욕 에너지를 순화시켜 단전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선인화의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순기법)입니다. 들판에서 날뛰던 들소를 길들여 논밭을 가는 순한 동물로 이용하는 현명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많이 날뛰던 소는 에너지가 충만하므로 더 많은 밭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넘기 어려운 욕망이나 애착은 회음으로 뽑아 깊이 묻으십시오. 그래도 안 되면 북극성을 향해 앉아 다 뽑아 보낸다고 생각하고 호흡에 듭니다. 주로 23:00~02:00 시간대가 좋으니 잡념 없이 들어보도록 하십시오.

 

상단으로 밝은 빛을 받아 하단으로 모으고 하단에 모인 내용은 아래로 밀어 내립니다. 밀어 내린다고 아래로 빠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 쌓이는 것입니다. 쌓인 욕(慾)의 덩어리는 후에 도로 변하는 근본이 됩니다.

 

평소에 지나치게 성욕을 느끼면 수련 시 여자는 중단에 집중하면서 용천으로 내보내고, 남자는 하단에 집중하면서 용천으로 욕의 덩어리를 내보냅니다.

 

 

마무리하며

 

인간의 욕구에 대해 그렇게 쓸 게 많을 줄 몰랐는데, 쓰다 보니 계속 글이 늘어났습니다. 금촉과 금욕에 관한 선서 말씀도 더 많았지만 적당히 줄인 것입니다. 금촉과 금욕에 관한 제 경험을 적으면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저도 대부분의 수련생들처럼 선계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금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금욕은 수련 초기에 단전을 형성할 때 꼭 필요하다고 해서 백일 이상을 했습니다. 한동안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다가 최근에 다시 금욕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 1월초부터 시작하였으니까 2년 7개월 정도 되었군요. 두 달쯤 있으면 천일이 되는데, 선서 말씀처럼 이성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가 되려면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련 초기부터 시작했던 다른 금촉수련으로는 글쓰기 절제가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인터넷에 코를 박고 세상사에 관하여 논쟁적인 글을 꽤 많이 썼는데 인터넷 글쓰기도 세상 사람들과 기운을 섞는 일이어서 끊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처음 이백일 동안은 한 줄도 안 썼고, 이후에는 가끔씩 썼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안 쓰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기간이 전부 합쳐서 10년쯤 됩니다.

 

책 읽기 절제도 저한테는 중요한 금촉수련 중 하나였습니다. 선계수련에서는 선계의 파장에 다른 파장이 섞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데, 책은 다른 파장의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과거에 책을 많이 봤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나이 삼십에 뒤늦게 책에 관심이 생겨서 아무 책이나 게걸스럽게 집어먹던 시절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책 읽기를 절제한 기간도 대략 10년쯤 됩니다.

 

저에게 성욕 절제만큼이나 힘들었던 것은 술 절제입니다. 술도 수련 초기부터 1년씩, 아니면 몇 달씩 금주한 적이 여러 번인데도, 다시 술을 마시면 과거의 폭음 버릇이 도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에 지장을 준 적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합리화의 혐의가 있지만 저는 술을 아예 끊기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절제하고 싶었습니다. 술을 아예 끊는 것도 술에 지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저는 이제야 겨우 술을 절제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수련 시간을 조정한 덕분입니다. 늘 아침에만 수련을 해 오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신법수련을 밤에 하면서부터 술이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 것입니다.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금촉수련으로서 본격적으로 해보지 못한 것은 묵언수련입니다.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묵언하는 것도 해볼 만할 일인데, 어쩐지 저는 묵언에는 그렇게 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일상생활을 통해 말을 절제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관심이 많았고, 말의 절제는 그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1. 본성과의 대화 1~4권, 수선재, 2010

2. 선계에 가고 싶다 1~2권, 수선재, 2008

3. 선인류의 삶과 수련 1~2권, 수선재, 2012

4. 존재의 심리학, 에이브러햄 매슬로, 정태연/노현정, 문예출판사, 2014

5. 동기와 성격, 에이브러햄 매슬로, 오혜경, 북이십일, 2009

 

 

 


반백

2016.08.29 13:16:03
*.112.208.37

본성의 욕구의 핵심은 영이 성장 또는 진화하여 본성과 하나 되려는 욕구이므로 엄밀하게는 영의 욕구라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육체에 본능적 욕구가 있다면 정신(영)에도 본능적 욕구가 있으리라는 것이 당연히 예측되는 바인데, 생각이 미처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본문은 그대로 두되 댓글로 바뀐 의견을 기록해둡니다.

반백

2016.08.29 13:29:17
*.112.208.37

이 글을 쓰고 나서 매슬로가 욕구를 needs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욕구와 욕망을 needs와 desire로 구별하는 것도 가능하겠습니다.

반백

2016.08.30 10:53:58
*.154.40.114

욕망은 대상 특정이라고 했지만, 반드시 구체적인 대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부류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가령 알콜 중독자가 아무 술이나 마시고 싶은 것은 구체적인 술이 특정된 것은 아니지만 술이라는 부류가 특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욕망이 당연히 의식적이라고 한 것은 좀 부정확해 보입니다. 가령 욕망이 간절하거나 습이 되면 꿈에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무의식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욕구와 욕망을 구별하는 기준으로는 선천적인 것이냐 학습된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고, 대상이 불특정이냐 특정이냐는 보조적 기준이며, 의식적이냐 무의식적이냐는 적절한 기준이 아닙니다.

 

본문에 바뀐 생각을 추가하였습니다.

반백

2016.09.02 11:55:56
*.154.40.114

조선성리학의 사단칠정론 중 칠정을 악하게 보는 견해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삭제하였습니다. 그 견해(퇴계)는 칠정을 악하게 보는 게 아니라 칠정에 선악이 있다는 것인데, 착각을 했습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인성론이나 수양론이 인간의 욕구를 악하게 본다는 대목은, 단정해서 말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되어, 놔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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