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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수련이야기(7)-인간의 운명

조회 수 599 추천 수 0 2016.04.29 16:07:55

인간의 운명

 

운명이라는 주제

 

이번 글의 주제는 ‘인간의 운명’입니다. ‘운명’이란 주제가 떠오른 것은 앞의 글 [업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업에 의해 삶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운명이라고 한다는 말과 사람의 일은 거의 관성에 따라 가고, 이 관성이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는 말이 여운을 남겨 끝말잇기 하듯 좀 더 이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운명(運命)이라는 말도 업(業)이라는 말만큼이나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지만 그 정체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음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이라고 정의해 놓았군요. 이 정의가 적절한 것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음국어사전]에는 운명에 관한 예문으로서 ‘운명에 순응하다’ ‘운명을 탓하지 말고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져라’ 등이 제시되어 있는데, 운명이 그저 순응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의지로써 극복 가능한 것인지는 운명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일 것입니다.

 

사실 이 글은 이 물음에 대해 선서 말씀이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를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른 문제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글은 핵심적인 물음에 집중하되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좀 쓰겠습니다.

 

먼저 운명과 관련된 선서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은 읽기 편하도록 적절히 다듬었습니다.

 

선서 말씀(1): 스케줄과 명부

 

하늘이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는 뜻은 오로지 한 가지, 진화입니다. 그러나 한 번의 생에 인간에서 선인이 되는 모든 공부를 다 할 수는 없으므로 ‘이번 생에는 이렇게 살면서 이런 공부를 해봐라’ 하고 계획을 짜는데 이것을 스케줄이라고 합니다. 스케줄은 진화에 가장 도움이 되도록 정해지는데, 전생이 있는 영들은 전생의 삶을 기반으로 해서 정해집니다. 우리가 사주팔자, 운명, 소명, 사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가 다름 아닌 스케줄입니다. 그러니 인생은 자신의 스케줄을 찾아 이루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닙니다.

 

스케줄은 하늘의 뜻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진화 수준에 따라, 의식 수준에 따라, 영격에 따라 스케줄을 짤 때 자유의지가 반영되는 비율이 다릅니다. 영의 수준이 우주 반열의 선인이 되면 스케줄을 자신의 의사대로 짤 수 있으며, 그 전에는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스케줄의 큰 줄기는 모두 본인의 동의하에 정해집니다.

 

개인의 스케줄은 명부(命簿)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명부는 조물주의 서고인 명부전에 보관된 기적인 책으로서 크기와 두께가 앨범만하지만 그 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정보가 압축 저장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명부를 한 권씩 가지고 있습니다. 명부에는 개별 인간의 영의 창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선서 말씀(2): 운명의 비율

 

인간의 일은 큰 문제는 명으로 정하고 있으나 작은 것은 본인에게 맡깁니다. 70% 정도는 사전에 정해지고 30% 정도는 본인의 마음에 의존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예정된 부분이 30%, 본인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40%, 본인이 바꿀 수 있는 부분이 30%입니다. 처음의 30%는 출생 전 조건이요, 중간의 40%는 출생 후 지정된 조건이요, 나중의 30%는 본인의 마음에 달린 조건입니다. 앞의 두 가지를 합친 70%를 이른바 운명이라고 하며, 나머지 30%가 변수로 작용합니다. 30%는 불변, 40%는 중간, 30%는 가변이지만, 중간의 40%도 노력하기에 따라 변화가 가능하므로 70%까지 변화가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비율은 이렇지만 영의 소속에 따라 예정된 부분의 비율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정의 비율은 높은 하늘일수록 높고 낮은 하늘일수록 낮기 때문에, 하천으로 갈수록 실수의 위험이 높아 성취가 어려워집니다.

 

선서 말씀(3): 변수

 

신의 일은 변수가 없으나 인간의 일은 변수가 있습니다. 변수야말로 인간의 발전 가능성이요 잠재력입니다. 변수의 활용 여하에 따라 인간의 능력은 무궁한 발전이 가능합니다. 인간이 노력하는 만큼 거두고 그 이상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변수 때문입니다. 변수는 노력하는 인간에게 무서운 힘입니다.

 

수련은 인간의 의지로 인한 변수입니다. 인간이 수련을 통해 우주기운과 연결되면 조물주의 본체와 기가 유통되면서 명부의 제약조건이 풀리고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역학(易學)이 불확실한 것은 인간의 의지로 인한 변수의 독파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의지로 인한 변수는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입니다. 의지는 운명의 가장 큰 변수입니다. 의지가 작용하는 한 운명도 비켜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마음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므로 마음먹기에 따라 나아가는 방향이 정해집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이 80%를 좌우하더라도 나머지 20%만 갖고도 얼마든지 자신을 변화시키며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봄으로써 신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조물주조차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자유의지에 따라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앞에서 말한 영의 자유의지와 다릅니다. 영의 자유의지가 높을수록 예정의 비율이 높아지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는 낮아진다는 역설이 성립합니다.)

 

운명의 정의

 

이상의 선서 말씀을 토대로 서두에 언급했던 ‘운명’이란 말의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국어사전]의 정의를 다시 보면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입니다. 이 정의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두 가지입니다.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와 ‘초인간적인 힘’입니다.

 

선서 말씀에서 보았듯이 운명은 인간 삶의 사전 스케줄일 뿐이므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해 보입니다. 또 운명의 스케줄은 인간이 영으로 있을 때 자신의 의사에 따라 (직접 또는 동의하에) 정한 것이므로, 인간을 초월한 힘이라는 뜻의 ‘초인간적인 힘’도 좀 정곡을 빗나간 감이 있습니다. (‘초인간적’이란 말은 영이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리 있지만 인간 자아의 주체가 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정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 운명은 100% 예정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므로 ‘지배’라는 말도 지나치게 무거워 보입니다. ‘힘’이라는 말도 ‘스케줄’에 비하면 좀 강압적으로 보이고요. 운명이란 말의 정의를 만드신 분들이 운명을 무겁고 강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창하고 무겁고 강압적으로 보이는 사전의 정의를 선서 말씀을 토대로 바꿔보고 싶은데요. 앞에서 언급한 인간 삶의 사전 스케줄이란 말에 살을 좀 붙이면 될 것 같습니다. 운명이란 인간이 태어나기 전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정한 삶의 스케줄로서 인간 삶의 대강을 정한 것이다, 이 정도면 어떨지요.

 

예정 대 자유의지

 

인간의 삶이 운명적으로 예정(결정)된 것이냐 자유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냐는 특히 서양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입장이 있고, 양자를 절충하는 입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서 말씀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100% 예정된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운명으로 예정된 부분과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섞여 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절충적 입장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주의할 것은 자유의지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선천적 자유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예정된 길에서조차 벗어날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분들이 실수를 줄이기 위해 예정을 100%로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영격이 높을수록 영의 자유의지가 크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작다는 것, 반대로 영격이 낮을수록 영의 자유의지가 작고 인간의 자유의지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유는 작은 것이고 영의 자유는 큰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할 것입니다.

 

영의 자유의지가 크든 작든 운명이라는 삶의 스케줄을 정할 때 자신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탓하는 것은 사실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인간은 지구로 올 때 망각의 법칙에 따라 이전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원초적 무지’를 피할 수 없으니 운명을 탓하는 것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만.

 

삶의 4인자와 운명

 

다른 글에서 말씀드렸지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요인은 유전인자, 시간인자, 환경인자, 영성인자입니다.

 

유전인자와 시간인자는 이미 정해진 것이므로 바꿀 수 없으니 운명의 예정된 부분에 해당할 것입니다. 환경인자는 처음에 지정된 것은 예정일 테고 나중에 바꿀 수 있는 것은 변수일 것입니다. 영성인자는 타고난 영격이란 면에서는 예정일 테고 영적 잠재력이란 면에서는 변수일 것입니다.

 

결국 운명의 변수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인자와 영성인자라는 것을, 그중에서도 일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변수가 인간을 키우는 것이라면, 관건은 환경인자와 영성인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운명에 대한 푸념

 

저도 젊은 시절 삶이 고달파서 하늘에 대고 따진 적이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잠시 교회에 다닌 적이 있어서 젊은 시절에도 인간의 삶을 주재하는 신(神)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체 나를 어디에 쓰려고 이런 고생을 시키느냐?’는 식으로 따지기도 했습니다.

 

신을 믿었다고는 하나 무슨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막연히 ‘하늘이 있겠지’ 하는 정도였으므로,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세상에 적응하기 바빴으므로, 그럭저럭 하늘에 대고 제 운명을 푸념하는 일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속으론 ‘이게 아닌데’하는 모종의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이 ‘모종의 불만’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만으로 작용해서 저로 하여금 자꾸 새로운 일을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일을 바꾸기도 하고 직업 자체를 바꾸기도 했지만, 바뀐 것도 처음에만 반짝 흥미가 있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지루해지곤 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십대와 삼십대를 보낸 후 다시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가 사십대 초에 선계수련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의 운명이, 그렇게 고달팠던 저의 삶이, 제 영의 의사에 따라 미리 정해졌던 것임을 알던 순간, 운명이란 것이 고정된 게 아니라 제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임을 알던 순간, 저는 ‘아, 그렇구나!’ 하는 경탄과 함께 ‘어, 이게 뭐야!’ 하는 황당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습니다.

 

치열했던 정공부도, 그 세세한 내용까지 다 미리 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대의 동의하에 미리 계획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싸움에 푹 빠져들어 똥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온갖 감정을 화산처럼 폭발시키던 일이 꿈만 같습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삶의 각본을 들고 있겠지만 지구라는 공동의 무대에서 함께 공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동운명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까운 인연일수록, 특히 지독한 인연일수록, 서로를 많이 공부시키는 고마운 인연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을 통한 인연도 지구인 전체를 놓고 보면 꽤 가까운 인연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본성과의 대화 1~4권, 수선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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