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학교 수선재 - 맑게 밝게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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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재 문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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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24일 일요일 오전, 맑음.

 

 

민선은 화해역(和解驛)에 내렸다.

함께 내렸던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금방 사라지고 민선이 혼자 서 있었다.

타고 왔던 기차가 떠났다.

 

시골역이라 조용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청아했다.

기찻길가는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민선은 코스모스를 한참 바라보았다.

민선은 코스모스를 좋아했다. 그 향기, 그 꽃잎, 그 꽃망울, 그 잎줄기를.

 

민선에겐 화해역이 처음이었다.

이곳에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었으며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었다.

그런데 오게 되었다.

 

 

 

2000년 9월 11일 일요일 밤, 흐림.

 

추석 전날 밤이었다.

아파트 10층의 베란다에서 모자(母子)가 달구경을 하고 있었다.

둥그런 달이 방금 구름에서 빠져 나왔다 다시 구름 속으로 숨었다.

마치 잠깐의 달구경에 하늘의 미소를 전하려는 듯이.

 

이제 자야할 시간이었다.

순자는 아들 민선에게 조용히 말했다.

“민선아 오늘은 작은 방에서 같이 자자이.”

 

그 말을 듣고 민선은 놀랬다. 함께 자자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민선은 잠깐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

 

민선이 7살 때, 순자는 민선과 함께 지금의 남편에게로 시집을 왔다. 남편에겐 이미 3남 2녀의 자식과 노모가 있었다. 그 때부터 민선은 어머니와 함께 잘 수 없었으며 어머니와 단둘이 있는 것을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시선도 길게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했다. 혹여 자신이 팥쥐처럼 보일 빌미를 만들기 싫었고 어머니가 팥쥐 엄마처럼 되지 않기를 바랬다. 그리고 오늘도 어머니와 단둘이 있는 것이 마음 편하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내었다. 이젠 형제들이 오해를 하더라도 용기 있게 ‘단둘이 있는 것이 어떠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8세가 되어서야 그런 용기가 났다. 민선은 20년 이상 움츠리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길들여져 있었다.

 

민선은 자신이 누울 자리에 담요와 이불 그리고 베개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보며

미안했다.

 

‘내가 먼저 이런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순자는 아들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자그라.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민선은 어머니의 말씀대로 자리에 눕기 위해 다리를 이불 속으로 넣고 있었다.

순자는 그 순간 민선의 발을 보았다. 컸다. 볼 때마다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 순자는 큰 발이 싫었다. 민선의 아버지 발도 그렇게 컸었다.

순자는 민선의 친아버지에 대한 외모만큼은 민선에게 절대 얘기해 주지 않았었다.

괜히 아들에게 콤플렉스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순자는 민선에게 물었다.

 

“니 아직도 친구들이 대발이라고 부르나?”

 

“네.”

 

“다른 별명은 없나?”

 

“네. 왜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다. 얼른 자그라.”

 

순자는 민선에게 다른 별명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민선은 어머니 얼굴을 한 번 잠시 쳐다본 뒤 눈을 감았다. 어머니를 정면으로 계속 쳐다보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였다.

민선은 잠이 오질 않았다. 그냥 잠을 청하는 척 시늉만 낼뿐이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게야. 뭘까?’

 

순자도 자리에 누웠다.

모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그냥 누워 있을 뿐이었다.

민선은 어머니 쪽으로 몸을 돌려 어머니를 안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마음조차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조차 어색했다.

둘은 5분 정도 그렇게 누워 있었다.

 

순자가 민선에게로 돌아눕더니 민선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이목구비를 손으로 느껴보려는 듯하였다. 민선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순자는 민선의 얼굴에서 손을 떼어 민선의 왼손을 끌어다 잡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민선에게 물었다.

 

“민선아, 니 아부지 보고 싶지 않트나?”

 

민선은 대답했다.

 

“아니.”

 

민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계획해 두었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

그렇지만 순자는 민선이 아버지를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하면서 민선에게 말했다.

 

“보고 싶겠지. 니 이모도 그르드라. 니가 아마 보고 싶어 할끄라고.”

 

민선은 방금 전보다 조금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진짜 보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갑자기 왜 그걸 물으세요?”

 

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아무래도 누워서는 할 얘기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러자 민선도 어머니를 따라서 일어나 앉았다.

 

“아무래도 니 아부지가 죽을 때가 됐는지, 꿈에 니 아부지가 다 보이드라. 참 신기하제.”

 

민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표정이었다.순자의 목소리가 좀 커졌다.

 

“죽을 때가 되니 지가 잘못한 그 죄를 이제 알았는지 내한테 무릎을 탁 꿇고 니를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빌드라. 쪼끔 불쌍하데.”

 

순자는 민선의 반응을 살폈다. 민선은 무표정이었다. 순자의 목소리가 다시 조금 낮아졌다.

 

“그래도 내 아무 말도 안했다. 내 그 인간한테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욕도 아깝지 욕도 아까워.”

 

순자의 말은 사투리 짬뽕이었다. 전라도, 서울, 강원, 경상도 등에서 적게는 10년 많게는 15년 이상을 살면서 사용해온 사투리가 섞여 있었다.

 

민선은 무표정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순자는 민선의 반응을 살폈으나 무표정을 일관하는 민선에게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은 싫더라도 민선이 원한다면 만나 보도록 권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선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민선의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표정한 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아팠다. 자식이 저런 표정을 자신에게 보여줄 정도면 스스로에게 얼마나 다짐해왔을 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명절이면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찾아와 주는 아들이 고맙고 기특했다. 순자는 민선에게 말했다.

 

“그만 자자.”

 

순자는 얼른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민선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민선은 어머니를 보았다. 누워 있는 어머니의 등이 휑하니 보였다. 체구가 작아 보였다. 어머니의 몸은 어느새 할머니가 되어가고 있었다. 흰머리가 늘고 목소리도 작아지고 눈빛도 약해지고 있었다. 작아지고 약해지고 있었다. 민선은 어머니가 가여웠다.

 

‘불쌍한 나의 어머니!’

 

민선은 어머니와 같은 자세로 어머니의 등뒤에 붙어 누웠다.그리고 천천히 어머니를 껴안았다.

어머니 품의 따뜻함이 손과 팔을 타고 민선의 품으로 전해져 왔다. 따뜻했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

기억해두고 싶은 따뜻함이었다.

 

잠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순자는 조용히 민선에게 말했다.

 

“민선아, 난 괜찮으니까 언제라도 아부지 보고 싶으면 가봐라.”

 

민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정말 아버지를 보고 싶은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민선은 아버지에 대해서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2000년 9월 13일 수요일 오후, 비.

 

 

민선은 귀경 버스에 타고 있었다.

기차표는 구하기 힘들었지만 버스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민선의 기분은 차분한 상태였다.

추석 전날 밤 어머니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민선아, 난 괜찮으니까 언제라도 아부지 보고 싶으면 가봐라.”

 

‘묵인해주시겠다는 것인가?’

‘내가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컸다고 생각하신 것일까?’

 

민선은 아버지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저 어머니께 전해들은 것만을 알뿐이었다.

그것도 여쭈어서 들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넋두리로 들었었다.

 

순자는 민선이 4살 무렵에 아들을 데리고 남편에게서 두 번째로 도망쳤다. 그것도 이웃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며. 어느 날 아들을 병신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이 길로 아들을 데리고 떠나라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말을 들었다. 이유인즉 아이 아버지가 보상금을 탈 작정으로 아이를 달리는 택시 밑으로 밀어 넣었었는데 마침 의도적인 사고를 알아채고 급정거한 택시 운전사와 크게 싸웠었다는 말을 전해들었던 것이다. 놀음할 돈이 필요하여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민선은 아버지를 떠나게 되었다.

성인이 된 민선은 몇 년에 한 번씩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었었다.

 

 

“총각이라고 했는데 결혼해 보니 국민학교 3학년인 아들이 하나 있드라.”

“그 인간은 인간이 아니여!”

“짐승이여!”

“아니여, 짐승도 그런 짓은 안한다”

“아니구 내 팔자여.”

“난 니가 차암 신기하다”

“니는 어떻게 그렇게 착할 수가 있냐? 나는 니가 크면 그 인간처럼 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민선은 아버지에 대한 어떠한 얘기를 들어도 시큰둥했다.

아버지의 악행만을 들려주는 어머니가 가여워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자신은 그 이야기에 대해 멍했다.

그냥 아무 것도 마음에 두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두면 어머니 앞에서 화를 낼 것 만 같았다.

그런 얘기는 왜 해주며 왜 그런 남자와 결혼했냐고 따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머니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아버지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냥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고 자신에게 남겨 두지 않으려 했다.

그냥 그렇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며 살아 왔었다.

 

그러나 삶은 민선이 그렇게 잊고 살도록 놓아두지 않았다.

 

산을 오르다 힘들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묵묵히 아버지와 함께 산을 오르는 아이를 보면 부러웠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보면 민선과 순자는 마치 세입자처럼 ‘동거인’으로 적혀 있었다.

순자는 아버지의 이혼 불허가 그 이유라고 민선에게 말했지만 민선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떠난 이후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족보 좋아하는 학교 선생님은 수업시간 내내 족보가 교과서였다. 지루했다.

새아버지 회갑잔치 때 직장 상사는 서류상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휴가와 경조비를 준비해 주지 못한다고 했었다. 섭섭하고 서러웠다.

그렇지만 다 지난 과거였다. 사람들이 그러한 관습과 법에 길들여져 있듯이 어느새 민선도 그러한 일에 별로 동요되지 않을 정도로 길들여져 있었다.

 

그렇게 일상의 자극에 동요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무관심으로 살아왔던 민선일지라도 일단 한 번 아버지가 떠오르면 같은 장면을 반복하여 상상하였고 그 장면 속에서 빠져 나오질 못했다.

그 장면은 4살의 어린 아이를 택시 밑에 밀어 넣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지금 귀경 버스 안의 민선도 그 장면을 반복하여 떠올리고 있었다.

인간이 그럴 수가 있을까라는 질문도 함께 반복하며.

 

그러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후두둑 후두둑.

 

차창에 세게 부딪히는 빗줄기 소리에 민선은 잠에서 깨었다. 차창을 흘러내리는 빗물은 무엇인가를 씻어내리고 있었다.

 

민선은 자신이 어쩌다가 잠이 들었는지를 생각해봤다.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그 생각은 그만 해야 했다. 이젠 그만 생각하고 싶었다.

 

‘내가 왜 자꾸 그 생각만 하지?’

‘내가 왜 자꾸 그 생각만 하지?’

‘내가 왜 자꾸 그 생각만 하지?’

 

민선은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찾고 있었으며 답을 찾지 못한 스스로에게 되뇌어 물었다.

 

 

‘그러게! 내가 왜 자꾸 그 생각만 하지?’

‘다른 기억은 없나?’

‘그게 그 사람의 전부일까?’

‘맞아! 난 그 사람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좋은 점은 없었을까? 단지 돈 때문에 그랬을까?’

 

 

민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려 준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다른 부분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택시 밑으로 넣는 그 사건이 너무 크게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다른 호기심이 민선의 마음속에 들어갈 여유가 없었던 것이었다.

 

민선은 서서히 다른 질문들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조심스럽게.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얼마나 닮았을까?’

 

‘나처럼 발이 클까?’

‘나쁜 짓만 했을까? 좋은 점은 하나도 없을까?’

‘나를 귀여워한 적도 있지 않았을까?’

‘…’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민선은 스스로의 생각에 놀랬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한 생각에 매달려 있었구나! 그 사람에 대한 다른 면도 있을 텐데.’

‘그렇다면…?’

 

민선은 아버지를 한 번 정도는 만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그냥 멀리서 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한 번 만나 보자. 별 부작용은 없을 거야.’

 

민선은 아버지를 만나면 뭔가 알 수는 없지만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선한 모습 아니 불쌍한 모습이라도 보면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처럼 씁쓸한 화면만을 기억하는 것은 더 이상 싫었다.

 

‘한 번 만이라도 만나 보자.’

 

민선은 그렇게 다짐한 후, 언제쯤이 좋을까를 생각했다. 핸드폰을 꺼냈다.

전자메일 예약전송 기능을 선택했다. 그리고 익숙하게 입력했다.

 

받는 사람 : finesky0913@skyvalley.co.kr.

발송예정일 : 9월 21일.

제목 : 화해.

 

전송했다. 안심이 되었다. 민선은 프로그래머이었다. 직업이 프로그래머라 그런지 남들은 잘 사용하지 않는 예약전송 기능을 종종 사용했다. 그것도 대부분 자신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사용하면 잊기 쉬운 약속을 상기시키기에 편했다. 요즘 회사 일이 바빴다. 그렇게 바쁘게 쫓기다 보면 어느 새 오늘의 다짐을 송두리째 잊어버릴 수도 있기에 자신에게 편지를 남긴 것이었다.

 

후두둑 후두둑. 비는 여전히 차창을 씻어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느낌일까?’

 

 

 

 

2000년 9월 24일 일요일 오전, 맑음.

 

 

민선은 화해역사를 나와 가을 햇살 아래 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사의 까만 아스팔트 마당이 깨끗하게 보였다. 물을 뿌려 청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역사 주변엔 아담하게 가꾸어진 국화꽃 화분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국화꽃을 보자 중학교 때 거름을 너무 주어 웃자라 버린 국화꽃이 생각났다.

 

민선은 역사 앞의 도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역사 앞에는 구형 모델이지만 깨끗한 택시 한 대가 서 있었다.

택시의 문에 전화번호가 보였다. ☎ 386-8282.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광고였다.택시의 운전석 문이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열렸다.사십대 중반의 택시기사가 내렸다.

그는 노란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민선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고 있었다.

민선은 도로 가에 서서 역사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택시기사가 천천히 민선의 옆으로 다가가 친절하게 물었다.

 

“어디 가요?”

 

민선이 고개를 돌려 택시 운전사를 보았다. 택시 운전사의 얼굴을 보니 착하게 생겼다. 초등학교 시절, 면(面)에서 인기 있던 택시 운전사 최기사가 떠올랐다. 최기사는 밤과 새벽일지라도 부르면 달려와 주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승차비를 할인해서 받았었고 기분 좋을 때는 공짜였었다. 그리고 방향이 같은 어린 학생들을 공짜로 태워 주어서 학생들에게 우상이었었다. 민선도 최기사의 택시를 서너 번 타 보았었다. 어른이 되면 자신도 최기사 같은 택시 기사가 되고 싶었다.

 

‘감내골.’

 

민선이 오늘 가려 하는 곳은 감내골이었다.

택시를 타고 휙하니 빨리 가고 싶진 않았다. 가능하다면 걸어서 가고 싶었다.

민선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곧이어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씨, 감내골 걸어가면 얼마나 걸려요?”

 

기사는 감내골 손님을 종종 태우고 이야기를 나누어 봤기에 걸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민선이 그곳까지 걷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서너 시간은 걸려요.”

 

기사는 민선이 택시를 타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민선은 서너 시간이라는 기사의 대답을 듣고 고민했다.

 

‘걸어갈까?’

 

‘걸어가다 힘들면 버스 타고 가면 되지 않을까? 버스는 얼마나 자주 있을까?’

 

민선은 기사가 당연히 버스 시간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예의 있게 물었다.

 

“버스는 언제쯤 있는지 아세요?”

 

기사는 버스는 서너 시간 후에나 있기 때문에 이젠 민선이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2시쯤에요.”

 

민선은 고민했다.

 

‘택시를 타면 너무 빨리 가는데. 걸어가기엔 좀 멀고…’

‘에이 걷자. 걷다가 힘들면 지나가는 트럭이나 경운기 얻어 타지 뭐. 그것도 재밌을거야.’

 

민선은 느긋하게 대해준 택시 기사에게 조금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아저씨, 저 걸어갈께요. 감내골 어디로 가야되요?”

 

민선의 예상 밖의 대답에 기사는 내심 놀랬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걷겠다는 데.

그래도 돌아올 때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쭈욱 서너 시간 걸어가면 감내골 표지판이 나와요. 걷기엔 멀텐데.”

 

기사는 명함을 꺼내어 민선에게 내밀며 걱정반 기대반의 표정으로 민선을 보며 말했다.

 

“그럼 가다가 힘들면 전화해요. 핸드폰 있지요?. 돌아올 때라도 좋고.”

 

“네. 알겠습니다.”

 

민선은 명함을 받아 청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민선은 택시 운전사를 뒤로 한 채 감내골 방향으로 걸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얼마 가지 않아 도로가 한적해졌다.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소리 나는 곳을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개울은 도로 주위로 흐르고 있었다. 아니 도로가 개울 주변에 놓여져 있었다.

민선의 고향과 비슷하게 도로가 놓여 있었다.

 

민선은 고향이 생각났다.

 

강원도 어느 산골, 광천(光川).

 

하교 길에 멀리 작게 보이는 집을 찾기 위해 파란색 기와 지붕을 찾기보다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살구꽃을 먼저 찾았던 그 동네였다.

살구나무 주위엔 세 집이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파란 기와지붕을 얹은 집이 민선의 집이었다.

빨간 지붕은 강원이네 집이고, 슬레이트 지붕은 맹꽁이네 집이었다.

학교를 가거나 돌아올 때 민선은 언제나 개울물 소리를 들었었다.

 

졸졸졸. 줄줄줄. 구르륵.

 

아무리 들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 소리.

민선은 개울을 좋아하면서부터 다짐했었다.

 

‘언제고 나의 집은 작은 개울이 멀지 않은 곳에 지으리라.’

 

민선은 터벅터벅 걸었다.도로 주위는 황금들판이었다.

뿌듯했다. 마치 자신이 가꾼 황금들판인양 뿌듯했다.

 

‘이맘때면 운동회를 할텐데.’

 

운동회를 마치면 얼른 돌아오라는 새아버지의 말씀에 친구들과 아쉽게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며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 여느 날과 달리 보이던 황금들판.

 

다른 친구들은 놀았지만 민선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시큰둥했어야 하는데 그날만은 황금들판이 민선을 흥분시켰다. 벼가 아름다웠다. 들판이 아름다웠다. 벼이삭은 고개를 깊이 숙이고 있었다. 벼 한 톨 한 톨이 제 빛을 뽐내고 있었다. 벼베기를 하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한참 동안 들판을 바라보았다. 낫질도 가벼웠다. 평소엔 한 손에 두 포기를 베었었는데 그 날은 세 포기 네 포기까지 베어도 힘이 들지 않았다. 투두둑 투두둑. 벼의 밑동이 낫에 베어지는 그 소리에서 풍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한 톨의 벼라도 떨어질세라 베어낸 벼를 살며시 논바닥에 널었다. 즐거웠다. 해가 저물수록 짙어지는 황금들판 또한 아름다웠다. 벼이삭의 그림자가 있어 저 아름다운 빛깔이 있음을 깨달았다. 땀흘려 가꾼 보람이 이런 것임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민선은 도로 가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들판을 바라보았다. 논마다 색이 달랐다. 당연하였다. 농부의 정성에 따라 품종에 따라 논의 색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트럭 한 대가 민선의 등뒤로 지나갔다.

민선은 일어서서 다시 걸어갔다.

조금 지루해졌다.

신발을 벗었다. 양손에 신발을 한 짝씩 들고 걸어갔다.

발이 시원해졌고 기분이 좋아졌다.

작은 모래들이 밟혔다.

재미있게 걸어갔다.

30분 정도 걸으니 약간 지루해졌다.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흑갈색 지붕의 화해역이 아담하게 보였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일까?’

‘돌아갈까?’

‘언젠가 또 오게 될텐데 온 김에 가보자.’

‘아버지는 어떤 느낌일까?’

‘정말 악인일까? 혹시 어머니가 거짓 이야기를 꾸며 댄 것은 아닐까?’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을까?’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아버지는 어떤 느낌일까?’

‘만나서 실망만 하는 것은 아닐까?’

 

 

민선은 고민하며 걷고 있었다.

 

 

‘만나면 무슨 말을 먼저 꺼낼까?’

‘아니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좋을 지도 몰라.’

‘그냥 멀리서라도 보고만 돌아올까?’

‘…’

‘가보자. 어떻게 되겠지.’

 

 

민선은 계속 감내골을 향하여 걸어갔다.

 

 

 

오후가 되어서야 민선은 감내골에 도착하였다.

산아래 20여 가구가 보이는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인 감내교를 지나니 콤바인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민선은 콤바인을 본 적은 몇 번 있어도 직접 운전해 본 적은 없었다.

 

 

‘논이 아무리 넓어도 저거 한 대면 하루만에 끝낼 수 있을 거야. 탈곡까지 한 번에 해버리니.’

‘하지만 낫질도 재밌는데.’

 

 

콤바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콤바인이 민선이 서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점점 시끄러워졌다.

 

 

‘다시 돌아가겠지.’

 

 

콤바인의 시동이 꺼졌다. 콤바인에서 사람이 내렸다. 아가씨였다.민선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더니 민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방인에 대한 의심과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민선은 아가씨에게 물었다.

 

“저, 김선명씨댁이 어디지요?”

 

아가씨는 잠깐 가르쳐 줄지 말지를 고민하다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마을 뒷산 중턱이었다.

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 집 주위의 나무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빨간색 기와지붕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담했다.

 

“빨간색 기와지붕 말인가요?”

 

“녜.”

 

“고맙습니다.”

 

 

김선명.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몇 번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이름이었다.

지금도 이름이 적힌 쪽지가 지갑 속에 있었다. 계속 기억할 자신이 없었다.

 

민선은 뒷산 중턱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조금 걸어가자 다시 콤바인 소리가 들려왔다.

 

민선은 20여분 뒷산을 올랐다. 빨간 기와집의 윤곽이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집 주위엔 개나리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엔 제법 큰 소나무들이 있었다. 이 소나무들 때문에 멀리에선 이 집이 잘 보이지를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 가에는 큰 대추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다 대추나무를 올려 보니 검붉게 익은 대추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발길로 대추나무를 차면 금방이라도 대추 소나기를 맞을 것 같았다.

 

집은 남동향이었다. 뜨락의 왼쪽엔 장독대가 있었고 크고 작은 대여섯 개의 항아리들은 가을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더 들여다 보니 장정 두셋은 누울 수 있는 넓이의 마루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그 안쪽에는 띠살문이 네 개 있었다. 아마 방이 2개쯤이고 한 개의 띠살문은 왼쪽의 부엌으로 통하는 문 같았다. 마루 앞에는 서너 켤레의 신발이 마치 정리라도 한 듯이 가지런히 있었다.

 

주위는 조용했다.

민선은 아버지의 집을 가까이에서 보자 가슴이 두근두근 해졌다. 그리고 다시 망설였다.

 

 

‘돌아갈까?’

 

하늘을 보았다.

맑았다.

 

‘아니 들어가자.’

‘부딪혀 보는 거야.’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다.

한 번 더.

한 번 더.

 

 

휴~.

 

 

집 앞으로 걸어갔다.

 

“계…”

 

“계…”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솔잎 사이로 대추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솔잎이 용기를 내라는 듯이 솔잎바람 소리를 내었다.

대추 나뭇잎도 재잘거렸다.

용기를 내었다.

 

 

“계세요?”

 

“…”

 

 

조용했다.

솔잎 바람 소리만 들렸다.

 

민선은 더 큰소리로 불렀다.

 

 

“계세요?”

 

“…”

 

 

 

인기척이 없었다. 대추 나뭇잎 바람 소리만 들렸다.

 

 

“아무도 안계세요?”

 

“…”

 

 

‘혹시 거동이 불편한지도 몰라. 나이가 있는데.’

 

 

민선은 마루 너머에 있는 방문을 노려보았다.

혹시 소리를 내지 못하고 거동이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지만 방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나?’

‘어딜 갔나?’

‘지금은 아무도 없나 보다.’

 

 

민선은 얼른 그 집을 빠져 나왔다.

마치 도망치듯이.

그리고 그 집 주위의 넝쿨 뒤에 주저앉았다. 그곳에 있으면 그 집에선 민선을 볼 수 없었다.

그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망치듯 나와 버린 자신을 보았다.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어색해 하는 자신을 보았다.

 

 

‘돌아갈까?’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려 보자. 조금 기다려 보면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민선은 그 집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그래도 인기척이 없었다.

한참을 더 바라보다 보니 긴장이 풀렸다.

한숨을 쉬며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사람이 살고 있나 물어볼 걸 그랬나.’

‘깨끗한 걸 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더 기다려 보자.’

 

 

민선은 기다렸다.

서너 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사람은 나타나질 않았다.

 

 

‘에이 그냥 돌아가자.’

‘오늘은 아닌가 보다.’

‘인연이 아닌가 보다.’

 

 

민선은 뒷산을 내려왔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빠져 나왔다.

도로에 들어서자 긴장이 풀렸다.

화해역을 향해 걸어갔다.

터벅터벅.

 

 

‘그래 보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뭘 하려는 거지?’

‘그냥 어떻게 생겼나 볼려구?’

‘아니. 아버지를 느끼고 싶어. 나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야.’

‘어쨋튼 오늘은 그냥 돌아가자.’

 

 

 

오후 늦게서야 화해역에 돌아와 서울행 기차표를 끊고 보니 두어 시간이 남았다.

해는 벌써 저물었고 어두웠다. 역전 앞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대발이네’

 

포장마차의 이름이 대발이네였다.

민선은 피식 웃었다. 반가웠다. 자신의 별명이 대발이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포장마차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주인이 반겼다.

 

“어서 오세요. 그리 앉으세요.”

 

민선은 의자에 앉았다.

포장마차 안에 손님이라고는 민선이만 있었다. 시끄럽지 않을 것 같아 좋았다.

 

포장마차는 작은 트럭을 개조한 것이었다. 트럭의 앞머리를 제외한 세 면은 포장으로 잘 막혀 있었다. 아늑했다. 민선의 왼쪽에서는 오뎅 냄새와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리며 민선을 유혹했다. 그리고 민선의 오른쪽에는 투명한 유리 뚜껑 속엔 갖가지 안주 재료들이 싱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닭다리, 닭똥집, 오징어, 꽁치, 고등어 등이 보였다. 트럭의 앞머리 쪽에는 십여 개의 사진들이 아기자기하게 게시되어 있는 작은 게시판이 있었다. 주인의 나이는 마흔 정도로 보였고 주방장에 어울릴 정도로 살이 붙어 있었다.

 

 

“뭐 맛있는 거 없어요?”

 

“술 한 잔 하시게요?”

 

“아뇨. 출출하니까, 그냥 오뎅 한 그릇 주세요.”

 

“네.”

 

 

주인은 대접에 오뎅을 담고 있었다.

민선은 짐작은 되었지만 그냥 넌지시 주인에게 물었다.

 

 

“포장마차 이름이 대발이네네요?”

 

“네, 대발이넵니다. 처음 오시는 손님들은 예전에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했던 그 대발이로 알고 있는데요. 그게 아니라 저와 제 아버지가 발이 좀 커서요. 그래서 대발이네라고 지었습니다.”

 

“그래요? 근데 제 별명도 대발인데. 참 살다 보니 이런 경우도 있네요.”

 

 

주인은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그래요? 몇 미리 신으세요?”

 

“285요. 몇 미리세요?”

 

“저도 285입니다.”

 

“똑같네.”

 

 

주인은 잘게 썰린 파를 둥둥 띄운 오뎅 대접을 민선에게 내밀며

 

 

“자 여기 있습니다.”

 

“야~ 맛있겠다.”

 

 

민선은 국물부터 한 모금 마셨다.

맛있었다. 몇 모금 더 마셨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따뜻한 맛이었다.

오뎅도 하나 간장에 찍어 먹었다.

 

 

“근데, 손님이 별로 없네요?”

 

“네. 시골이라 별로 없어요.”

 

“장사 되겠어요?”

 

“장사는 별로 안돼요.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살 정도지요.

저희 아버지부터 해오던 것인데 저도 좋아서 하고 있습니다.”

 

“뭐가 좋은데요?”

 

 

주인은 씨익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냥 먹는 거 파는 게 좋아서요. 맛있게 만드는 것이 즐겁고 맛있게 먹는 손님 보면 즐겁고 그래요.”

 

“멋있는 말이네요.”

 

“너무 멋부렸나?”

 

“아닙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요”

 

 

쿨럭쿨럭. 쿨럭쿨럭. 쿨럭쿨럭.

노인의 심한 기침소리가 포장마차 밖에서 들려왔다. 주인이 소리쳤다.

 

 

“아버지! 안으로 들어와요. 그러다 해소가 심해져서 죽으면 내 책임 아니유.”

 

“알았다. 알았어.”

 

 

주인의 말이 조금 거칠었지만 민선은 그것이 좋게 들렸다.

부자간에 농담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듣기 좋았다.

민선은 오뎅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점심을 굶었기 때문에 양이 부족할 것 같아 더 먹을 것이 없나 음식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노인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의 오른손은 의수였다.

노인이 민선을 흘깃 보더니 다시 물끄러미 보았다.

민선이 말했다.

 

 

“오뎅 맛있네요. 저거 고갈비 맞죠?”

 

 

민선은 양념이 묻혀진 고등어가 놓여있는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고갈비가 반가웠다. 고갈비는 고등어를 갈비처럼 양념에 잘 절여서 불에 구워낸 것인데 민선은 고갈비를 좋아했다.

 

 

“네 맞습니다.”

 

“고갈비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포항에 있을 때는 포장마차 갈 때마다 고갈비를 먹었었거든요. 근데 서울에 오니까 그게 없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경상도 쪽에서만 팔드라구요.”

 

“네 맞습니다. 고갈비는 원래 경상도 쪽에서만 주로 팔지요. 근데 저희 집에서도 팝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한테 가르쳐 주셨고, 저희 아버지는 경상도 친구한테 배웠어요.”

 

“네에. 고갈비 하나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직접 구워야 되니까 좀 기다리셔야 될 겁니다.”

 

“네 기다릴께요.”

 

“소주 먼저 드릴까요?”

 

“아뇨 이따 고갈비 나올 때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노인은 주인에게 불을 지펴놓겠다고 말하고 나가면서 민선을 생각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억이 안나네. 어디서 봤지?’

 

 

주인은 양념이 얹혀진 고갈비를 석쇠에 넣고 있었다.

 

민선은 포장마차 안을 둘러보았다. 트럭의 앞머리 쪽에 사진들이 붙어있는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일어서서 가까이 가 사진들을 자세히 보았다. 여러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독사진도 있고, 단체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진 안에 대발이네 포장마차가 있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주인은 고등어가 넣어진 석쇠를 포장마차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달하고 다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면서 민선이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민선은 흡족했다. 적어도 고갈비를 숯불은 아닐 지라도 연탄불에라도 구워올 것이기에. 편하게 하려고 그냥 가스불로 후라이팬에다 대충 해서 주는 곳도 보았었기 때문이었다.

 

민선은 사진들을 가리키며 주인에게 물었다.

 

 

“단골손님들인가요?”

 

“아닙니다. 우리 회원들입니다. 아참 손님도 가입할 수 있겠네.”

 

“네?”

 

“손님도 대발이라고 하셨죠? 그러면 무조건 가입할 수 있습니다.”

 

 

민선은 주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주인이 말했다.

 

 

“큰발사모라고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민선은 대답은 모르겠다고 했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선이 말했다.

 

 

“아하! 발 큰 사람들의 모임인가요?”

 

“네 맞습니다. 큰 발을 사랑하는 모임. 줄여서 큰발사모.”

 

“하하하. 이름이 재밌네요.”

 

“손님도 가입하시죠? 인터넷 동호회라 참 좋아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가족이지요.”

 

 

민선은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과 돈은 물론이고 그 사람들과 정말로 잘 사귈 자신이 없었다. 자신이 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가까이 갈 자신이 없었고 타인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기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모적으로 만날 시간이면 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주인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했다.

 

 

“아닙니다. 이름만 등록해두려면 가입하지 않는 게 낫겠죠?”

 

“맞습니다.”

 

 

주인은 섭섭했지만 손님인 민선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화제를 바꾸어야 했다.

 

 

“서울 가세요?”

 

“네. 시간이 좀 남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벌초하러 오셨나요?”

 

“아니요. 그냥 왔습니다.”

 

 

민선은 하루를 돌이켜 보았다.

 

하루 종일 아버지만을 생각했던 하루였다. 이런 날은 없었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왔었어요.”

 

“네. 잘 계시든가요?”

 

“아뇨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지금 아버지랑 같이 삽니다.”

 

 

민선은 노인의 기침소리에 주인이 노인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네에. 아까 아버님께 말씀하는 거 보니까 아주 친해 보이든데요?”

 

“친하긴요? 그냥 편하게 대하는 게 서로 좋더라구요.”

 

 

민선은 20년 이상 한식구로 살아왔지만 새아버지와의 서먹서먹함이 떠올랐다.

그래서 힌트라도 하나 건질 요량으로 주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친해지나요?”

 

“궁금하세요?”

 

“네.”

 

“공짜로 가르쳐 줄 수는 없는데.”

 

“고갈비 맛있으면 하나 더 먹을께요.”

 

“하하하.”

 

 

주인은 크게 웃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믿으실 지 모르겠는데 저는 나쁜 놈인데 하늘이 도와 아버지와 친해졌어요.”

 

“네?”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지는 놀음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아침에 나가면 새벽이 되어야 들어오는 것이 다반사였어요. 돈이라도 따오면서 그러면 몰라요. 맨날 가서 잃기만 하는 거에요. 그러니 마음씨 착한 새엄마도 도망갔지요.

 

“어렸을 때 마음고생 좀 하셨겠어요?”

 

“네. 좀 했지요”

 

“근데 왜 나쁜 놈이에요?”

 

“하하하.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입학을 못했어요. 너무 서럽고 화가 나서 매일 기도를 했지요. 제발 아버지가 놀음을 그만두게 해 달라고요.”

 

“그게 나쁜 짓인가요? 좋은 거지.”

 

“그게 아니에요. 어느 날 아버지가 손에 붕대를 잔뜩 감고 나타나셨어요. 놀음하다 다쳤대요. 돈도 없어 치료를 제 때 하지 못해 오른손을 절단하게 되셨어요. 그 이후 아버지는 놀음을 끊으셨어요.

 

“…”

 

“제 기도가 아버지의 오른손을 잃게 했지요.”

 

 

주인은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구워지고 있는 고갈비 양념내가 민선의 코를 찔렀다.

민선의 입속엔 침이 고였다.

 

‘맛있겠다.’

 

‘저 아저씨도 마음 고생 좀 했겠구나.’

 

민선의 마음은 고갈비에 대한 즐거운 기대감과 주인에 대한 동정이 교차했다. 자신이 말을 이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 사건 이후로 아버님과 친하게 된 건가요?”

 

“네. 아버지가 희한하게 변하드라구요. 그 때부터 이 곳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어요. 늦었지만 저도 학교에 보내주시고요. 그리고 저도 희한하게 포장마차 일하는 아버지가 좋아졌어요. 그리고 포장마차도 좋아졌구요. 거참 희한하드라구요. 그렇게 싫었었는데. 아마도 매일매일 포장마차 수레를 함께 끌고 밀어주고 한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네.”

 

 

노인이 고갈비를 가지고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와서 주인에게 건네주면서 민선을 한 번 흘깃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무래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주인은 석쇠에서 고갈비를 꺼내어 접시에 담았다.

 

 

“자 고갈비 다 됐습니다”

 

“캬. 냄새 좋은데요.”

 

 

민선은 얼른 뱃살을 한 점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소주 한 병 주세요”

 

“네 여기 있습니다.”

 

 

민선은 소주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참 오래간만의 고갈비 맛이라 그런지 소주 맛도 좋았다.

민선은 빈 잔을 주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럼, 비결은 기도네요.”

 

 

소주를 한 잔 따랐다.

주인이 씨익 웃으며 반가이 받아 마셨다. 그리고 잔을 민선에게 돌려주었다.

 

 

“네. 맞습니다. 기도에요. 저는 기도의 힘이 그렇게 무서운 줄 그 때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기도를 종종 하는데, 그 때 같이 기도발이 잘 받은 적은 그 이후로 없었습니다. 그 때가 베스트였어요. 하지만 기도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뭔가 최선을 다했다는 그런 느낌. 아시나요?”

 

“아뇨. 잘 모릅니다. 저는 기도를 별로 해보질 않아서”

 

“한 번 해보세요”

 

“네.”

 

 

민선은 겉으로 대답하고 피식 웃었다.

민선은 주인이 행복해 보였다.

 

 

‘저렇게 오손도손 사는 사람도 있는데. 난 어떻게 해야 되지?’

 

‘매듭이 너무 많아. 내겐 그 매듭을 풀 힘이 없어. 어디 힘으로 푸나? 지혜가 있어야 풀지. 지혜는 어디에서 얻지? 책? 많이 읽었지. 지혜라…. 에이 또 괜한 생각이야. 답도 없는데, 술이나 마시자.’

 

 

민선은 고갈비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노인이 슬그머니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더니 민선을 바라보았다.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듯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갔다.

민선은 노인이 그렇게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의식하지 못한 채 고갈비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리고 소주를 한 잔 더 마셨다. 주인에게 한 잔을 더 권했다.

주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거절하며

 

 

“아닙니다. 그만요. 집에 갈 때 운전해야 하거든요.”

 

“그러시군요.”

 

 

민선은 소주 두 잔을 더 마셨다.

취기가 올라왔다.

서글퍼졌다.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있지? 내가 왜?’

 

‘아버지가 뭐길래?’

 

‘아버지!?’

 

 

민선은 서글퍼졌다. 그러나 왜 서글픈지를 몰랐다. 그냥 서글펐다. 서늘한 가을 밤에 한적한 시골역에 외롭게 혼자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서울행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여웠다. 도대체 아버지가 무엇이길래.

 

 

민선은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고 몇 잔을 더 마셨다.

취기가 올라왔다. 취기가 오르자 주인에게 묻고 싶었다.

민선이 주인을 보며 말했다. 약간 취기가 섞인 목소리로.

 

 

“저기요. 그 있잖아요.”

 

“네.”

 

 

주인이 민선을 바라보았다. 민선의 눈빛은 뭔가를 갈망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아버지가 뭐에요?”

 

“네?”

 

 

주인은 민선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민선은 주인의 당황해하는 표정을 보고 자신이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닙니다. 제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어요. 고갈비 진짜 맛있네요. 하나 더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부르네요. 취기도 있고, 기차시간도 다 됐고.”

 

“…”

 

“얼마에요?”

 

“네. 다 합해서 만육천원입니다.”

 

 

민선은 잠깐 주인의 편안한 표정을 사진을 찍어두듯이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민선은 이만원을 냈다.

 

 

“거스름돈은 놔두세요”

 

 

주인은 민선이 음식에 만족했음을 알았다.

그리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고갈비 생각나시면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

 

 

민선이 포장마차를 나서려는데, 주인은 잊은 것을 찾아낸 듯이 민선을 불러 세웠다.

 

 

“손님! 사진 한 장 찍고 가시겠어요? 대발이네를 들른 기념으로.”

 

“사진 찍으면 저도 받을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이래봬도 최신식 디지털 카메랍니다. 이메일 갖고 계시죠?”

 

“네.”

 

“잘 됬네요. 주소 적어 주시면 제가 오늘밤에 바로 보내 드릴께요.”

 

 

민선은 오늘을 기념하는 사진을 하나 남기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대발이네’라는 포장마차 이름이 보이도록 자리를 찾아 서며 말했다.

 

 

“좋아요. 찍어 주세요.”

 

 

주인은 민선을 촬영하고 민선에게서 전자메일 주소를 쪽지에 받았다.

 

 

민선은 포장마차를 떠났다.

그리고 민선은 화해역으로 걸어갔다.터벅터벅.

잠깐 서서 화해역사를 한눈에 넣어 보았다.

소박하게 보였다.

 

 

‘다시 올 기회가 있겠지.’

 

 

 

 

 

 

대발이네 포장마차 트럭이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주인이 운전을 하고 있었으며 노인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민선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서 봤을까? 누구지?’

 

 

노인은 주인에게 물었다.

 

 

“민수야, 아까 고갈비 손님 있잖니?”

 

“네.”

 

“그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던데…. 혹시 모르겠니?”

 

 

민수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잘 모르겠는데요.”

 

 

노인은 골똘히 생각했다.

 

 

‘누굴 닮았던 것 같은데! 누굴 닮았지?’

 

‘…’

 

‘순자?’

 

‘맞아. 혹시?’

 

 

순자였다. 그 손님은 순자를 닮았었다.

그 때였다.

띠리리리.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민수는 핸즈프리를 켜고 통화를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저씨!, 저 은실이에요~”

 

 

은실이는 민수와 한동네 살고 있는 발랄한 아가씨인데, 요즘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경운기와, 트럭은 이미 섭력한 상태였다.핸즈프리 스피커를 통하여 나오는 은실이의 목소리를 민수와 노인 모두 들었다. 노인은 은실이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표정이 좀 밝아졌다.

 

 

“웬일이냐? 은실이가 나한테 전화를 다하고. 그래 요즘 콤바인은 말 잘 듣고?”

 

“네, 재밌어요. 제가 좀 일찍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텔레비전 보다가 깜빡했어요.”

 

“무슨 일인데?”

 

“오늘 낮에 댁에 손님이 찾아 왔었어요.”

 

 

노인은 놀랬다. 그리고 고갈비 손님을 떠올렸다. 얼른 말했다.

 

 

“은실아!”

 

“안녕하세요? 어른신.”

 

“그래 그래. 그 손님 얘기 좀 자세히 해보거라.”

 

“남잔데요, 어르신 성함을 대면서 집이 어디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가르쳐 줬어요.”

 

“혹시 옷 색깔 기억하니?”

 

“네. 청바지에 노란색 티셔츠였어요.”

 

 

노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민수는 아버지를 보니 상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더 이상 아버지가 말을 잇지 않으실 것 같았다. 민수가 말했다.

 

 

“은실아! 나다.”

 

“네, 아저씨.”

 

“알려줘서 고맙고, 그만 끊을게. 잘 자라.”

 

“네. 운전 조심하세요.”

 

 

노인은 민수가 통화를 끝낸 후,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아까 그 고갈비 손님이 적어준 것 있지?”

 

“이메일 주소요?”

 

“그래 그거. 그것 좀 줘 보렴.”

 

“네.”

 

 

민수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쪽지를 찾아 꺼내어 아버지에게 주었다.

노인은 어느새 좌석 뒤에서 손전등을 찾아내어 손에 들고 있었다.

손전등을 켜고 쪽지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보려고 뚫어지게 보았다. 쪽지엔 finesky0913@skyvalley.co.kr 이 적혀 있었다. 0913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들 민선의 생일이었다.

노인은 쪽지를 계속 보고 있었다. 차가 흔들려 자꾸 초점을 흐리게 하였다. 초점이 흐려지는 대로 쪽지를 그냥 보고 있었다.

 

 

‘오! 민선이였구나!’

 

‘나를 찾아오다니!’

 

 

트럭의 속도가 줄었다. 트럭 멀리 앞에 표지판이 보였다. ‘감내골’이라고 적혀 있었다. 트럭은 천천히 우회전하였다. 잠시 후 감내교를 건넜다.

노인은 민수에게 말했다.

 

 

“민수야.”

 

“네.”

 

“차 좀 세우거라.”

 

 

민수는 트럭을 세웠다.

노인이 트럭에서 내렸다.

민수도 내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다. 별 구경 좀 해야겠다. 먼저 가거라. 천천히 뒤따라올라 가마.”

 

 

민수는 아버지의 낌새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빨리 돌아가서 인터넷에 접속하여 큰발사모에 들어가 오늘 찍은 또 한 명의 대발이 사진을 소개하고 싶었다.

 

 

“먼저 올라갈께요. 너무 늦지 마세요.”

 

 

트럭은 다시 출발했다.

빨간 기와집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노인은 감내교에 주저앉아. 그리고 난간에 기대었다.

왼손에는 여전히 쪽지가 쥐여 있었다.

한숨을 내쉬었다.

개울물을 보았다. 한참 동안.

개울물 소리는 여전하였다.

 

하늘을 보았다.

별이 보였다.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다시 개울을 보았다.

 

쪽지가 쥐어진 왼팔을 개울 쪽으로 뻗었다.

노인은 굳게 쥐어진 주먹을 보았다.

잠시 망설였다.

 

 

“민선아! 잘 커줬구나. 이제 죽어도 연한이 없다. 이상타, 착하게 살지도 않았는데 누가 내 기도를 들어주었을꼬! 민선이를 한 번만 만나보고 죽고 싶은 기도를...”

 

 

잠시후, 노인은 주먹을 폈다.

쪽지가 개울물에 떨어지더니 노인에게서 점점 멀리 떠내려갔다.

노인은 일어섰다.

 

 

그리고 집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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