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케별의 사랑이야기

9편. 이라이, 아스 유학을 떠나다

  • 작성자수선재
  • 작성일2019-11-18 11:01:20
  • 조회수45

이라이는 그 첫 생의 결과에 따라 아스 프로젝트의 몇 세대로 참여할 수 있을지 결정이 난다. 아스 프로젝트의 지원자가 너무 많기에 이라이처럼 한참 후에 아스 프로젝트에 지원한 이는 일단 아스에서 한 생을 산 후 그 결과에 따라 몇 세대로 참가할지 지정받는다. 50세대로 참가한다면 참으로 쉽고 편한 스케줄이 배정될 것이나 그만큼 진화의 속도는 느리다. 


이라이는 조금이라도 앞 세대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힘든 스케줄을 짰으며 성공 확률 5%의 아스 유학에 도전한 것이다.


아스라이의 시간은 아스보다 10배 천천히 흐른다. 아스에서의 삶을 관찰하고 배우는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하기 위한 설정이다. 아스에서의 1년이 아스라이에서는 10년이니, 아스에서 1년 동안 일어난 일을 살피고 배움을 얻을 시간이 10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라이가 아스라이에 와서 공부한 나날들이 1000여년이 흘렀지만 아스에서는 100여년 밖에 흐르지 않았다. 이라이가 아스에 내려가기로 한 타이밍은 아스의 시간으로 B.C. 500년 정도. 아직 문명의 성장이 충분하지는 않은 시기였다. 


이라이는 때가 되자 잉케로 돌아갔다. 아스로 내려갈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잉케에는 아스로 유학 가는 이들을 위한 의식이 있다. 잉케에는 ‘진화의 탑’이라는 것이 있다. 그 탑이 있는 광장 앞에서 수많은 이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아스로 떠난다. 이라이도 그 의식을 치러야 했다. 이라이의 마지막 인사는 이러하였다. 



“잉케의 모든 이들이여! 잉케의 모든 생명이여! 나는 오늘 잉케의 형제별인 아스로 떠납니다. 


잉케와 아스의 오랜 인연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인연의 끝에 잉케와 아스가 다시 만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잉케와 아스의 만남처럼 우리의 진화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스에서 진화를 이루고 오겠습니다.”



아이아가 이라이의 진화를 기원하며 춤을 추었다. 이라이는 아이아를 바라보며 생각하였다. 



‘아이아,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켰지. 그 사랑이 나를 아스로 가게 만들었지. 나는 아스에서 더 깊은 사랑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아에게 그 사랑을 알려줄 수 있을까?’



이라이는 아이아와 마지막으로 포용한 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라이의 에너지 라인(energy line)이 끊기고 이라이는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 감을 느꼈다. 이라이의 영은 마침내 그의 몸으로부터 분리되었다.



*



유럽의 어느 농가에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의 이름은 한스. 


한스는 벤야민의 아들이었다. 벤야민은 대장장이였다. 벤야민은 힘이 세고 성격이 난폭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벤야민은 또 사람들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데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면 마을에 있는 우물을 자신이 만든 덮개로 덮은 후 덮개를 열 때마다 곡식을 얼마쯤 내게 하는 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벤야민의 이런 횡포가 못마땅했지만 아무도 말을 못하였다. 벤야민의 힘과 싸움 실력이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벤야민에게는 사사라는 부인이 있었다. 사사는 벤야민의 아내이자 한스의 엄마였다. 


사사의 성격은 상당히 이기적인 면이 있었다. 예를 들면 마을 사람들의 빈곤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여 수확한 곡식을 큰 이자를 물려 뺏어오곤 했다. 마을 사람들이 굶주릴 때 곡식을 빌려준 후 말이다. 


한스는 벤야민과 사사 사이에 태어난 첫 아이였다. 벤야민은 한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벤야민의 성격상 자기 아들이라고 하여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그 영역 안에서 우두머리 수컷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사사는 한스를 사랑했다. 한스에게 항상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했다.


한스는 어릴 적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다. 세상일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강했다. 농사를 지을 때면 왜 씨앗을 땅에 뿌리는지, 왜 잡초를 제거해 줘야 하는지, 왜 거름을 줘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산에 가면 왜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는지, 인간은 왜 동물을 잡아먹는지 등등 남들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한 가지 한 가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한스는 이 모든 호기심 이외에 근본적인 호기심이 하나 있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 않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스는 이런 의문을 갖고 자랐으나 어느 한 사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주는 이는 없었다. 


한스의 나이 15살에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벤야민이 사사를 때리다가 그만 그녀를 죽여버리고 만 것이다. 그전부터 벤야민은 사사가 일을 잘못할 때마다 종종 때리기는 했으나 죽일 정도까지 때린 적은 없었다. 


헌데 어느날 사사가 벤야민이 아끼는 대장간 도구를 잃어버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사사가 그 도구를 가지고 일을 한 후 밖에 놓아두었는데 사라진 것이다. 사실은 벤야민에게 앙심을 품은 마을 사람이 가져간 것이었으나 사사나 벤야민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벤야민은 사사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때렸다. ‘이 정도 때린 걸로 죽기야 하겠느냐’라고 생각했으나 급소를 맞은 사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한스는 그 장면을 전부 목격했다. 


그 전부터 한스에게 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스는 아버지가 싫었으나 반항 한 번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주는 위압감이 너무나 대단했기 때문이다. 


한스는 어머니의 사랑에 기대어 자랐으나 어머니도 이기적인 면이 강하여 한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주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한스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사사의 한스에 대한 사랑은 상당히 조건적인 면이 있었다. 한스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심한 욕과 함께 체벌을 하였고 도움이 되면 칭찬하고 껴안아주는 식이었다. 


한스는 그래도 사사를 사랑하여 사사의 마음에 들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다. 사는 한스에게 이런저런 잡일을 많이 시켰다. 밭일은 물론 산에 가서 땔감을 가져오게 하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에게 이자를 받아오게 하였고, 때로는 물건을 훔쳐오는 일도 시켰다. 한스는 이런 일들을 군말 없이 하였고 사사는 한스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사가 벤야민에게 맞아죽은 후 한스의 마음속에 기댈 곳은 사라지고 말았다.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스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였는데……. 한스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사사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시체를 어떻게 하면 감출 것인가에 대해 신경을 쓸 뿐이었다. 아버지는 사사의 시체를 몰래 묻은 후 그녀가 도망갔다고 소문을 냈다. 한스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을 발설하면 죽여버리겠노라고 협박했다. 한스는 아버지의 위압감에 눌려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한스는 아버지를 도와 대장간 일을 했고 어머니가 하던 일도 하였다. 한스의 마음은 외로움과 비애로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혼자 산 위에 올라가 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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