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내 나이 오십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무엇을 고민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살아 있어서 살아진 인생이었기에(그렇다고 마냥 우울하지는 않았지만)
삶의 고단함으로 과거의 일들은 빛바랜 파편으로 남겨져 있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의 일기를 꺼내어 연도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연초의 몇 달은 정성껏 일기를 적어 나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텅텅 빈 페이지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다시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으려는
나의 뜨거운 몸부림의 흔적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가 되면 하고 싶은 일들과 이런저런 바람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어느 해는 일기조차 기록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지
텅 비어 있는 다이어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게 여겼던
시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몇 십 년이 흐린 뒤,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은 다이어리를 보니
이젠 기억들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내 인생에서 그 시간들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아파 왔다.
30여 년간의 일기를 쭈욱 읽다보니 반복적으로 고민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좀 더 나은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평범한 학창 시절을 거쳐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아가며 큰 불만 없이 지냈었다.
그러던 중 인생의 큰 위기가 결혼 초반에 찾아왔다.
나중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 생각에 분가를 하지 않고,
신혼 초에 시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다.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가정에서 자라온 나는 가부장적인 시댁에서의
생활에 적응하기가 꽤나 힘들었었다.
생활 패턴과 사고방식이 서로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를 비롯해 남편, 시부모님 모두 힘들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나만
힘들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결혼을 하면 바로 아이가 생길 거라는 믿음은 왜 있었던 것인지,
남들은 그렇게도 쉬운 임신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고,
결혼 몇 년 후 어렵게 임신을 했지만, 기쁨도 잠시 임신 초기에
유산을 하는 내 인생 최고의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몸과 마음의 상처로 인해 알 수 없는 몸의 통증과 마비에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며 괴로워했다.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했지만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인해
벌어진 것 같다는 의사들의 소견이 있을 뿐, 다른 원인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수선재를 알게 되고,
2002년 진천에 있는 수선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우선 내 마음과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선재에 건강반으로 등록하여
몸의 건강을 챙기고자 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도 없고, 수련에 대한 인식 부족, 경제적인 이유
등등으로 수련을 계속해 나가지는 못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조금 마음의 안정을 얻기는 했지만
수선재 수련생으로서의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이다.
가끔 호흡문을 외우고, 선체조를 하면서 수련에 대한 미련이
내 마음 한 켠에 조금은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내 인생인데 왜 나는 내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다.
내가 원하는 삶이란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지 않는 나만의 자유!
오십 평생을 살아온 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열망!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일들을 겪으며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래저래 시간이 흘러 20여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수선재를 다시 만났다.
수선재를 만나 ‘나’라는 존재가 지구에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화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경험하는 온갖 일들, 온갖 감정들, 슬픔이나 고통이니 죽을 것 같은
아픔이 모두 공부의 교재라고 하니 조금은 내 인생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마음의 자유는 수련을 통해, 호흡을 통해
점차 자신을 맑고 밝고 따뜻하게 만듦으로 자신에게 힘이 되고,
나아가 가족과 친구에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 순간 감사의 마음으로 수련을 통해 자신을 바꿈으로써
내가 속한 세상이 조금이라고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이 되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길 바래 봅니다.
현재 나는 생애 처음으로 독립하여 혼자서 살고 있으며(남편의 배려)
오십 평생을 살아온 청주라는 도시에서 고흥이라는 시골로 이사하여
지인의 도움으로 오이 하우스에서 일하며 체력도 기르고,
생태 공동체인 선애빌 생활을 통해, 자연에서의 삶과 수련을 병행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10개월 정도의 선애빌 생활(현재 진행형)을 하며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일(텃밭, 울력, 마을회의, 김장 등)들을 하고,
공동체 안에서 생활하며 서로 다름을 이해를 하고, 더불어 함께 하는 즐거움과
자연이 내어 주는 사랑(맑은 하늘, 각종 열매, 무수히 아름다운 꽃과 동물들),
수련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이러한 경험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장점과 단점 등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데 힌트를 주며, 자기 자신을 바로 인식하고, 객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그리고 수선재 수련을 통해 점차 괜찮은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
제 자신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자극적이지 않아 수련의 묘미를 알기는 어렵지만,
수련의 밋밋함에 조금은 익숙해져 가고 있다.
심심한(아주 깊고 깊은) 평양 냉면의 맛이랄까?
수련이 조금 힘에 버거울 때도 있지만
같이 평양냉면의 맛을 느껴 보실래요?
지금 이 순간 수련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심심한 평양냉면의 맛을 수련에 비유를 한 글 멋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