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체험기

선(仙), 수련과 생태주의의 만남

  • 작성자수선재
  • 작성일2003-06-23 01:26:00
  • 조회수9237
이상훈 (수선재 운영위원, 선문화연구회 이사)



제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선(仙)입니다.

먼저 선의 두 가지 의미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은 글자를 보면 알다시피 사람 인(人) 자와 뫼 산(山) 자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곧 사람과 산이 함께 있는 형상이지요.

사람과 산이 함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로부터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수련을 하기 위해 산에 갔습니다.
옛 선인들이 수련을 하러 산에 들어갔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서에 보면 예수님도 수시로 홀로 산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텐트치고 고기 구워먹으면서 질펀지게 놀려고 산에 가기도 하지만....)
이처럼 산은 예로부터 수련하는 장소였고, 그래서 선이라는 글자는 심신을 닦는수련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한편으로 선(仙)은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산이라는 것이 원래 온갖 식물과 동물이 어우러져 사는 가장 풍성한 생태계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선이라는 글자에는 자연과 어울려 사는 생태주의적 삶이 담겨 있습니다.


선(仙)이라는 글자에 담긴 두 가지 의미 - 수련하는 삶과 생태주의적 삶.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이 두 가지 삶의 관계입니다.
이 두가지 삶의 방식이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것이 연결되어 펼쳐지는 선문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제가 살아왔던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광고회사에 다니던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전호흡이나 기(氣)의 세계에 유난히 관심이 더 많다는 것 뿐이죠.

그러던 저는 3년 전쯤 수선재에서 단전호흡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무너지는 건강을 찾고 싶었고, 나아가 삶의 의미나 깨달음 같은 것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했는데, 이 수련이란 것이 참 좋았습니다.
하다 보니 몸이 가벼워졌고, 저를 괴롭히면 두통과 만성피로가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쯤 수련을 하다보니 몸이 맑아지면서 기를 느끼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하더군요.

어느 날부턴가 음식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몸이 탁하고 감각이 둔할 때는 화학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도 맛있게 잘 먹었는데 어느 순간 몸이 그런 음식을 싫어한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기에 대한 감각, 곧 기감이 발달하면서 음식에 담긴 기를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음식이 싱싱한지 아닌지, 몸의 기운을 좋게 만드는 음식인지 아닌지 예전보다 훨씬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염되지 않은 유기농 음식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그것들을 더 많이 사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회원들과 사귀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먹거리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커피만 마셨는데 이제는 녹차나 보이차 등 여러 종류의 차문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환경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졌습니다. 예전보다 도시가 탁하다는 것이 더 예민하게 느껴졌고, 산에 가면 자연의 생기가 훨씬 더 좋고 강렬하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살던 아파트가 답답한 새장처럼 느껴졌고, 자연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수련을 통해 제 몸의 기가 맑아지고, 감각이 살아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수련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일들 이면의 의미를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광우병의 경우, 예전 같으면 광우병 유발 바이러스가 문제라고 생각할 뿐, 그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동족을 사료로 먹이는 비인간적인 폭력 때문에 생긴 문제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큰 문제가 된 사스(SARS)도 폭력적이고 잔인한 가축 사육에 대한 천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잔인하게 가둬 키우고 성장호르몬이 들어간 사료를 먹고 자란 가축의 고기를 먹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정신적인 가치에 눈을 뜨면서 물질주의적 삶을 확실히 넘어서게 되었습니다. 제가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까지도 저와 제 가족이 돈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그것이 곧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환경이 회생불가능할 정도로 점점 악화되고 있어도, 많은 제3세계 사람들이 환경파괴로 인한 가난과 절망에 빠져있어도,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잔인한 사육에 고통받고 있어서, 그 결과 광우병이나 사스 등 갖가지 무서운 질병이 퍼져도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수련을 통해 저는 제 자신을 자연과 우주와의 연관 속에서 명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목적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진화 혹은 영적인 진화임음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지금까지의 수련 역정에 대해 길게 말씀드리는 것은,, 수련을 통해 제게 일어난 변화가 생태주의적 삶의 가능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지만 왜 이다지도 실천은 적은 것일까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알지만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팍팍해서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나 살기도 바쁜데 무슨 환경이냐?”

그리고 이런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고 암담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환경운동에까지 신경 쓰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는 게 재미없고 희망도 없는데 무얼 신경 쓰겠습니까?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힘들고 팍팍하게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괴로워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환경문제라는 것이 사람들이 자기 자신 밖에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고 있는가?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주위환경과 자연을 사랑하기는커녕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조차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허겁지겁 일에 쫓기며 살고 있습니다. 쉴 때도 근심걱정 때문에 편안하게 쉬지 못하고 있지요. 이러한 삶이 자신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삶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몸도 움직일 수 없는 공장식 축사에서 항생제가 잔뜩 든 사료를 먹고 자라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소고기를 먹으면서 즐거워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소에게서 떨어져 어두컴컴한 축사로 옮겨지고, 부드러운 육질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 한번 못하고 길러진 송아지 고기를 먹으면서 고급 음식을 먹고 있다고 기뻐하지요. 과연 이런 삶이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고 행복한 삶인가?

전국 방방곡곡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그러면서 비만 때문에 지방 흡입 수술을 받기도 하는 모습이 자신을 사랑하는 삶인가?, 당뇨와 고혈압 때문에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니고, 항상 입에 각종 비타민제와 약이 떨어지지 않는 삶이 자신을 사랑하는 삶인가?

더 나아가 “사는 게 왜 이럴까, 내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무함을 느끼면서, 또 그 허무함을 잊기 위해 술을 진탕 마시면서 놀고, 단란주점 가서 아가씨 끼고 노는 것이 과연 이기적인 삶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인 삶조차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참답게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자신조차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그래서 여러 가지 심신수련을 찾고 있습니다. 요가나 단전호흡, 기수련 등의 심신수련은 자신을 참답게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것이겠지요.

수련은 몸을 위해 적절한 운동과 스트레칭을 주고, 숨가쁜 흉식호흡을 넘어 가장 깊은 단전호흡을 하고, 탁한 에너지로 오염되었던 몸을 맑은 기운으로 채워주는 것입니다.

수련은 또한 스트레스에 짓눌린 마음에 휴식과 안정과 평화로움을 가져다 줍니다.더 나아가 자신의 영혼을 위해 내가 누구인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자기 자신을 자연과의 연관 속에서 우주와의 연관 속에서 명상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하지요. 단순한 철학이나 학문적인 이해가 아닌 기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과 자연, 자신과 우주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여기서 심신수련의 놀라운 승화작용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 영성의 진화를 위해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자연과 우주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수련을 하면 기운을 통해 자신과 이웃, 자신과 자연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그 교감하는 능력이 크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수선재에서 수련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수선재 회원들을 보면 몸이 맑아지고 기운을 잘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염된 먹거리를 피하게 되고, 환경친화 유기 농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실제로 몇몇 회원들은 지금 농촌에서 환경친화 영농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회원은 황토에서 나오는 좋은 기운을 직접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황토를 이용한 환경친화 건축에 대해 관심가지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자연에 대한 겸손함이 길러지면서, 자연을 이용해야 할 자원이 아닌 우주의 이치를 담고 있는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실 옛날의 선비 문화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선비들의 필수 덕목 중의 하나였던 시(詩)와 사군자는 것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것은 물론, 자연의 지혜를 따르고 배우는 마음가짐을 갖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서삼경 중의 하나였던 역경(易經)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한 생태주의적 삶에 대한 교과서와 같았습니다.


저는 이처럼 심신수련과 생태주의가 연결될 가능성을 보게 되었고, 그 결과 선문화 운동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곧 우리나라의 수련문화와 생태주의 운동이 서로 결합하여 상승 작용을 일으키도록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유의 선(仙)문화를 통해 수련문화와 생태주의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문화는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사랑하고, 이러한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문화입니다.

선문화는 - 해야한다는 당위에 눌려 억지로 이런저런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수련을 통해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이 길러지면서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태주의적 삶을 살게 되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저는 심신수련이 생태주의와 결합될 때 이 양쪽의 사람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심신수련에 대해 장풍 쏘고 공중부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건전한 삶과 멀어지는, 특별한 도사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선문화를 통해 이러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아! 수련을 하면 저렇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사랑하게 되고, 더 나아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게 되는구나” 이렇게......

환경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수련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새로운 설득력을 지닌 채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수련문화를 통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모임이 선문화연구회입니다. 선문화연구회는 최치원 선생이 ‘현묘지도’ 라고 칭송했던 선(仙)사상, 그리고 생활 속에서 이어져온 선문화를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지금은 시작 단계라 미미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거라 믿습니다.

앞으로 심신수련과 생태주의가 결합한 대안문명을 일궈 나가겠습니다.




("제1회 세계문화오픈" 세미나에서 발표한 주제강연 내용입니다. 이 세미나는 2003년 6월 19일 COEX 그랜드볼룸에서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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