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체험기

"제 안의 우주를 찾았습니다"

  • 작성자수선재
  • 작성일2004-02-13 11:10:00
  • 조회수12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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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의 우주를 찾았습니다"



명상화가 이본

이본(32·二本)씨는 명상화가다. 본명은 최경아. 명상을 통해 얻은 영감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이본은 그에게 명상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최근 2년 동안 200점이나 그렸다. 그가 그린 그림은 자연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아기의 맑은 웃음, 꽃봉오리, 피리 부는 소녀가 그가 좋아하는 소재들이다.

명상화가로 알려졌지만 이본씨는 그림을 공부한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 배운 게 전부다. 미술학원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다. 부모님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교회 합창단으로 못 이룬 꿈을 달랠 정도로 음악애호가다. 그런 집안 분위기 탓인지 남동생도 음악가의 길을 가고자 바이올린을 잡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밥술은 뜰 수 있는' 집안이었지만 두 남매 모두를 음악가로 키우기에는 가난했다. 연주자의 실력 못지 않게 악기의 음감이 중요한 바이올린은 악기 값만 천만원 단위였다. 레슨비도 만만찮았다. 부모님은 내노라하는 경주 최씨 양반집 어른들답게 아들을 선택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씨의 피아노 레슨비를 대주던 부모님은 1990년 그가 숙명여대에 입학하자 "너는 장녀니까 이제부터 알아서 살아가라"며 홀로서기를 요구했다. 남동생 뒷바라지에 버거운 까닭이었다.

"직장을 그만두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에서 세 시간 거리의 직장을 오가며 자식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보고 자란 터라 서운한 생각도 크게 들지 않더군요."

그가 꿈꿔왔던 대학 시절의 낭만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었다. 그는 사실상 고학생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다섯 '탕'을 뛰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어떻게 살았는지 신기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업과 아르바이트에 레슨까지 받은 날에는 집에 도착하면 피곤해서 몸이 무너져 내렸고, 기절하듯 잠을 잤다. 유명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기 위해 4년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병마로 만난 새로운 세계

1994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피아노 연주 실력은 성에 차지 않았다. 졸업 뒤 마음에 쏙 드는 피아노 선생님을 만난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 "대학원에 가는 셈치고 레슨을 받았어요. 정말 열심히 연습했지요."

그 해 9월. 드디어 무대에 섰다. 대학 친구와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쇼팽홀'에서 '듀오 리사이틀'이란 이름의 연주회를 했다. 무대 위에서 '쇼팽 발라드 4번'을 연주할 때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피아니스트의 꿈이 손에 잡힐 듯했다. 하지만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97년 12월, 두 번째 연주회를 일주일 앞둔 때였다. "장소 예약도 끝나고 표도 이미 다 팔았던 시점이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피곤해 집에 누워 있었는데 배가 아파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응급실로 실려갔어요."

난소낭종. 의사는 난소에 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수술을 하지 않고 그대로두면 난소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 연주회는 무산됐다. 10년 전부터 가끔 배앓이를 했던 게 기억났다. 혹시 맹장염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조금 참고나면 통증이 사라지곤 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자신이 후회됐다. 결혼 생각을 하니 수술이 두려웠다. 부모님도 후유증으로 아이를 낳지 못할까 걱정해서 수술을 반대했다. 통증이 가라앉자 다른 치료법을 찾기 시작했다. 피아노 공부도 당분간 쉬기로 했다. 두려웠다. 생식, 한방, 식이요법, 자연치료법들에 눈길이 갔다. 남자친구의 권유로 명상, 단전호흡, 위빠사나에 관한 책을 읽고 기수련 단체도 여러 곳에 다녔다. 몸과 마음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서른이 되면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을 거라 믿었지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했어요.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것도 아니고 건강도 좋지 않고, 더구나 난소에 이상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남자친구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기 시작해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도 멀어져 갔습니다."

1998년, 대학교 3학년 때 만나 7년째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하지만 그는 '결혼할 뻔한 남자'와 이별한 대신 정신적인 지주가 된 선생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수련 단체에서 만난 이들로부터 입소문으로 듣고 찾아간 곳이 바로 수선재. 1998년 10월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기체조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우주에 가득한 생명에너지인 기를 소우주인 몸 안에 받아들여 모으고 유통시키는 수련을 하면서 그는 건강을 되찾았고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내 모습이 진짜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몸의 병도 마음에서 왔다는 걸 깨달았지요. 호흡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밝고 순수한 본래의 나를 되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명상을 통해 나 자신이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인정하게 됐어요."

수련에 몰입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체조, 명상 그리고 호흡을 했다. 고요히 호흡을 하노라면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고 잔잔한 기쁨이 가슴에서 피어올랐다. 삶은 고통이 아닌, 아름답고 즐거운 놀이라는 깨달음도 왔다.


삶이 고통이 아닌 즐거운 놀이

하루는 명상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우연히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그림을 통해 더 깊고 넓은 정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볼 것을 권했다.

미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던 터라 망설임도 있었지만 용기를 냈다. 명상을 통해 보고 느낀 내용을 그려보기로 했다. 처음 아이를 그렸다. 이어 나뭇잎, 하늘, 밝음, 어두움을 그려보았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특별히 무엇을 그려야겠다고 고민하지 않습니다. 새, 꽃, 달 같은 것을 그리기도 하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옮길 때고 있구요. 어떤 때는 그냥 그리다보면 어느순간 그림이 완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조차 못한 그림이 앞에 놓여 있어 놀랄 때도 많아요. 힘들지도 않더라구요. 한 호흡으로 그릴 때는 20분 만에 한 작품을 그린 적도 있습니다."

그의 그림은 자연스러운 선과 편안한 색감이 특징이다. 이는 비움에서 나온다. 하늘, 꽃, 그리움 같은 소재를 떠올리기는 하지만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당연히 스케치는 없다. 편안히 호흡을 하면서 손이 가는 대로 그린다. 많은 이들이 경탄하는 색상도 떠오르는 느낌대로 선택했다. 그는 "어떤 보이지 않는 파장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명상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는 지난 1999년 자신이 그린 명상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어 함께 수련하는 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본씨는 얼마 전 '그림명상'을 개발했다. 그림, 음악, 호흡, 해설을 결합한 장르다. 그림을 보면서 편안한 명상 음악을 배경으로 나오는 그의 해설을 따라가면 누구나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종류도 다양해 마음이 강해지는 명상, 편안해지는 명상, 꿈을 이루는 명상, 화해, 자유를 비롯해 지금까지 15가지 그림명상을 만들었다. 요즘은 경기도 용인의 집과 충북 진천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명상 지도도 한다.

꿈을 물었다.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결혼 뒤 겪을 일이 이미 다 보여요. 결혼보다는 붓끝이 살아 있을 때 많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분노, 슬픔, 미움 같은 감정을 버리지 못한 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명상을 통해 밝고 순수한 참나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수선재 회원이신 명상화가 이본(二本)님이 월간 <허스토리> 2004년 2월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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