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체험기

수행이란 제 마음 다스려 세상..

  • 작성자수선재
  • 작성일2004-12-24 10:56:00
  • 조회수7466
6기 김종철


촌로들 건강 보살피며 호흡명상 치과의사 김종철씨

예순이 되던 해부터 치과의사 김종철(63)씨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요즘 눈도 나빠져 환부도 잘 보이지 않고, 손도 떨리고…. 계속 일을 하는 건 환자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부인은 그가 하는 이야기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수련을 시작한 남편은 이즈음 아예 수련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처음엔 못 알아듣는 척했다. 그러나 남편은 “잘못하면 병을 고치러 온 사람이 병을 얻어갈지도 모르겠어”라고 강도를 높였다. 같은 치과의사로서 겁이 났다. 결국 손을 들었다. 그러자 김씨는 두 말 않고 병원 문을 닫았다. 모교인 서울대 치의과대학의 외래교수직도 그만뒀다.

김씨는 대신 진료 장비의 일부를 충북 진천 덕산면 두촌리의 수선대로 옮겼다. 수선재 서울 약수동 도장에서 폐교를 개조해, 회원들이 호흡·걷기·숲·별 명상등을 할 수 있도록 꾸민 수련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토요일마다 두촌리 주민들에게 의료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도반인 한의사 임동진(69)씨가 벗이 되어 주민들의 진맥을 봐주고, 침을 놔주고, 약도 지어주고 있다. 그것이 지난 2001년 5월의 일이었다.

처음엔 진천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했다. 한번에 80여명씩 몰려들었다. 몸이 버티질 못했다. 이듬해부터 두촌리 주민들로 한정했다. 찾아오는 이들이 20~30명으로 줄었다. 대개 80대 이상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치아는 완벽하게 망가져 있었다. 간단한 스켈링부터 신경치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치아를 거의 쓸 수 없는 분들을 위해 틀니도 만들줬다. 임동진 한의사에게는 대개 팔 다리 허리 결리고 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찾아왔다. 치료받고 1~2주 동안 쉬면 될텐데, 침 맞고 돌아가선 일하고, 그러다 허리가 아파 다시 침 맞으러 온다. 일하지 말고 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막무가내다.

한번은 안씨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업고 왔다. 할머니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진료소에서 틀니를 해준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나선 길이었다. 치아가 없이 죽으면 저승에서도 치아를 구할 수 없어 밥을 먹지못한다고 할아버지는 믿고 있었다. 이승에서야 입을 뜻대로 움직이기도 힘드니 저승용 틀니였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매주 토요일마다 할머니를 업고 왔다. 아픈지 안 아픈지 표현도 못하는 할머니와 눈빛으로 소통을 하며 겨우 틀니를 완성해서 끼워줬다. 그때까지 그의 머릿 속에는 ‘내 처가 저렇게 누워 있으면 나도 저렇게 정성을 쏟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맴돌았다고 한다.


앞만 보며 ‘잘나가던’삶 마흔 넘어 ‘나’찾으러 단전호흡 수선재 찾아 본격수련에 심취 아에 병원문닫고 주말엔 시골로

“의사란, 돈만 받지 않으면 참으로 좋은 직업입니다. 사람의 가장 약한 부분이 고통인데, 그 고통을 덜어주고, 없애주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 직업입니까. 지금까지 30여년 돈을 받고 일했으니 이젠 받지 말자. 시골 노인들이 어디 제대로 치료 한번 받았을까. 돈 받는다면 누가 치료를 받으러 올까.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죠.”

이런 결심의 뿌리는 마흔세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흔살이 넘으면서 뜻하지 않은 변화가 그에게 찾아왔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가 뒤돌아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성공했다. 당시 두 딸도 예비 의사였다. 자신은 알아주는 의사였고, 대금·섹스폰·기타·플루트 등 10여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승마·낚시·골프·테니스·윈드서핑·수상스키·스킨스쿠버에서도 뒤지지않고, 서예·사진·아마추어 무선통신에도 손을 댔다.

그러나 뒤돌아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과연 올바르게 살아왔나. 돌아보니 자신은 20대에 준비해온 것으로 그동안 살아왔다. 60대 이후에도 그렇게 살 수 있겠지만 그 허전함과 무료함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처음엔 철학을 공부할까 생각하고, 대학도 알아보았다. 어느 날 우연히 단전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신이 맑아지고, 두뇌가 명석해진다고들 했다. 그때만 해도 수련이니 수행이니 하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던 그였다. 수련 결과를 신비화하고, 수련 과정이 종교화되는 것 같아서였다. 그는 그저 60대 이후에도 맑고 밝은 정신적 능력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호흡수련을 하기로 했다.


수련의 길서 얻은 깨달음 “이웃이 내안에, 나는 그들 안에”


수련의 기초를 배운 뒤, 경기도 용인의 태화산에 움막을 짓고 토요일마다 내려갔다. 새와 바람 속에서 수련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다. 다만 진도를 측정할 수 없고, 실제로 진전이 없는 게 문제였다. 단전에 기운을 모아(축기) 온 몸의 혈을 열고 기운이 돌도록 해야하는데 축기 과정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장에서 도반들과 함께, 사부의 지도를 받으며 수련하기로 하고 찾은 곳이 수선재 약수지부였다. 1999년이었다.

“수련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죠. 제 마음을 관리하는 것과 이웃과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 그것이죠.”

사람들은 하루 3끼를 먹고, 치솔질을 하고, 매일 옷을 갈아입고, 집안의 냉난방에 신경쓰며 산다. 귀찮다 여기지 ?方? 열심히 몸을 관리한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기쁘고 슬프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등 칠정에 끄달리는 마음은 괴롭지만,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로 이 마음의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게 수행이고 수련이다. 그는 호흡을 통해 단전의 힘을 기르고 그 힘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말 뿐일 수 있습니다. 결국은 자기만족을 위한 거니까요. 그러나 부처님도 그러셨듯이, 가르침의 가장 좋은 방법은 선함과 고요함 속에서 악인이 자연스럽게 동화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란 자신의 고요함과 평안함으로 이웃과 세상을 고요하고 평안케 하는 사람입니다.”

수행이란 자연만물을 나의 일부로 깨닫는 의식의 확대 과정이라고 한다. 이웃한 것들이 나의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있으며, 나 또한 그들 밖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수련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두촌리 촌로들과 아름다운 토요일 오후를 빚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글·사진 곽병찬 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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