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재 이야기

우리는 흥미로운 미생(未生)

  • 작성자수선재
  • 작성일2020-11-17 14:22:33
  • 조회수27

“주문한 지 3주나 지났는데 아직 도착을 안해서요.”

“문자발송 안내해 드렸는데 못 받아보셨나요? 요즘 주문량이 밀려있어서 한 달은 기다리셔야 될 것 같은데요.”

“문자는 못 받았는데. 당장 급한데요.”

“정 급하시면 본사와 직접 거래하시겠어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네~ 이렇게 저렇게~~~”

캠핑장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다시 되짚어보려니 속이 쓰리다ㅠ)

지난 여름, 지독히도 습했던 그 긴 여름 마을 게스트하우스에 제습기가 필요했고 나는 제습기를 구입해야 했다.

축축한 곰팡이들과의 싸움에 지쳐가던 나는 열을 올리며 마을 공용 제습기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당시 제습기 물량이 부족했던지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락 내리락~

온라인으로 중고 거래도 해보지 않았던, 아주 정직한(정품, 정가) 물건 구입만 소소하게 할 줄 알았던 나는

인지도가 있는 대기업 온라인 쇼핑몰이였기에 거기에 등록된 판매자들도 철썩같이 믿고 거래를 진행했던 것이다.

갑자기 1순위로 떠오른 제습기가 눈에 띄였고 작년 모델이라 그런지 가격도 비교적 저렴했다.

당장 구입모드로 직진하며 이노무의 오지랖이 발동을 시작~ 마을 사무실 제습기까지

자청해서 구입하기로 한 것이다.

“아~ 네네~~~”

이럴 땐 어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상대방 말을 고분고분 잘 듣고 따라하는지^^;;

Y사 거래를 취소하고 본사와 직거래를 카톡으로 진행하며

그쪽 통장으로 입금을 해버린 순간 뒤늦게 희미하게나마

불안이 뒤통수를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으니!

‘어~~~??? 이래도 되나?(불안불안)’

그땐 이미 늦었다. 입금된 돈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물론 내가 원하던 제습기는 더더욱 없었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 다시 본사로 전화를 했을 땐 영어와 중국어가 되풀이되어 흘러나왔고

덩달아 내 머릿속도 벌들이 행진하듯 윙윙거렸다~~~

그렇다! 몇 개월치의 마을 생활비가 손끝에서 휘리릭~ 연기처럼 사라져지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덜컥 잡은 것이 캠핑장 스텝이었다!

한동안 휴장을 하다가 시작된 캠핑장에는 예약과 정리, 관리를 해 줄 담당자가 필요했다.

겨울은 동파의 염려가 있어서 딱 두 달간 캠핑장을 맡아서 하는 것으로 하고

날려버린 생활비를 여기에서 충원해야지 하고 나름 계획하게 진행되었던 것이었는데...

그러면서 나의 흥미로운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ㅎㅎ

공동체에 살다보면 함께 사는 분들과 서로 민낯을 드러내며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주 깊게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스치듯 피상적으로만 알던 사람을, 또 그 사람을 상대하는 나 자신에 대해

한 우물을 깊게 파듯 아주 깊게까지 속속들이 알게 된다는 것인데

하지만 좀 더 폭넓은 인간관계를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주로 혼자 뭘 하는 걸 좋아하다보니

관계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는데 캠핑장에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다보니

매주 다른 형태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이를 해결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캠퍼들의 약 80%가 매너가 좋으신 분들이다.

조용하고 캠핑장의 규칙대로 질서를 유지하며 잡음이 없고 캠핑을 즐긴다.

그리나 약 10~20% 정도의 작은 변수가 매주 꼭 발생한다.

- 사이트 달랑 하나 예약하고 즉석에서 주변 친구들을 계속 부르는 상황, 외부차량 3대까지 온 적이 있다.ㅠㅠ

- 술 사러 밤새 차로 들락날락하는 상황. 주로 젊은 층이다.

- 퇴실시간이 3시간이 지나도록 퇴실은 하지 않고 밥 먹기 위해 새롭게 고기를 굽고 있는 상황

(퇴실시간이 지나면 추가비용이 있지만 나가겠다고만 하면서 계속 눌러있다.)

- 가족들이 합류했는데 이불 없냐고 묻는 상황

- 좀 더 널찍한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 사이트 하나에 파쇄석이 2개로 주차와 텐트를 칠 수 있도록 했는데

파쇄석 2개에 텐트 2~3개를 꽉꽉 채우고 다른 공간에 주차 해서 여유 공간을 빡빡하게 만드는 상황 등등이다.

오늘은 모든 캠핑객은 다 철수하고 달랑 한 사이트만 남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급기야 텐트와 신발만 남겨두고 사라져버린 상황이 발생~

허걱! 그런데 밖에 나뒹구는 가스통은 또 뭔가?

혹시나!!!

순간 뉴스에서만 보던 불길한 사고가 아닐까 싶어 불러도 대답 없는 텐트를 급기야 열어보았더니

사람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었고!

아차! 이건 알고 보니 우리 쪽 불찰이었다!(실은 내 불찰~ㅠ)

월요일까지 예약한 손님이었던 걸 깜빡했던 거였다.

보통 일요일에 퇴실하는 손님이 대부분이었기에.ㅠㅠ

그들은 유유하게 속리산 산행을 하고 있었고 전화를 받는 손님은

일정체크를 하지도 않고 텐트를 열어보았다고 불쾌하다고 해서

또 연신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고.(사과는 대표님이ㅠ)

철커덩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 숨을 쉬었으니... 휴~~~

이 나이에 인터넷 사기를 당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나,

계속 인원이 추가되거나 퇴실 시간을 지연하면서 캠핑장 규칙을 몰랐다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분들이나,

입금을 했는데 예약확정을 안해줬다고 항의하고선 한참 후에 입금하지 않았다고

실토하는 분들이나...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열을 팍팍 내다가 이내 체념하곤

다들 바빠서, 사는 게 벅차서, 빠듯하고 빡빡하니까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우리는 다 미완이니까...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조각상

추상적이며 모호하며 그래서 신비로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2악장 밖에 없는 슈베르트의 8번 미완성 교향곡과

마지막 최후까지 작업을 했다는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조각상과

동생과 편집자가 마무리를 했다는 M.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그 유명한 작품들도 다 미완이었으니...

미완이기에 고정되어 있지 않아 미지의 것을 넘나들 수 있고

자신(감상주체)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놓은 것이다.

 

마을의 나무들도 이사를 했다. 여름날 캠핑장의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잔디광장 옆에는 큰 돌들이 쌓여있다. 하나씩 마을 곳곳에 자리를 잡아가겠지.

우리에게 과연 완성이 있을까?

하지만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나도 눈물을 머금고 용서했다.

생활비를 쏙 빼먹은 제습기 사기단을...

(나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해 주었으니~- -:)

@피에쑤

집사! 내 사진은 왜? 난 미완이 아니라 미묘(美猫)라니깐!








- 기대리선애빌에서 https://cafe.naver.com/seonville/2299

























 

댓글 4

  • 아이디
  • 비밀번호
  • 야생화
    • 2020-11-20 10:09

    캠핑장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네용. ㅎㅎㅎ 사람 상대하는 업종은 늘 ㅠㅠ 긴장의 연속인듯 합니다. 덕분에 기대리선애빌에 활력은 생기는 것 같으네용~ ㅎㅎㅎ 재미난 글 감사드려요_!

  • 마음소리
    • 2020-11-19 23:32

    @수선재
    앗.. 잊고 있었던 일을..
    다시 상기시켜주시는.. 덕분에 좋은 공부했죠^^
    감사합니다^^

  • 수선재
    • 2020-11-19 21:42

    마음소리님~
    관심에 늘 감사드려요.
    제습기보다는 고가의 드론이 더... ^^?

  • 마음소리
    • 2020-11-18 16:46

    ㅎㅎㅎ 이제는 비밀이 없어졌네요~ ^^
    더 좋은 공부의 장을 열여주셨네요 :) 화이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