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학교의 선생님인 문화영님의 첫 번째 저서이자 명상학교 수선재를 태동시킨 역사적 의미가 있는 책. 1,000일간의 고난도 수련 끝에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선도수련 일기. 호흡과 명상, 마음공부에 관한 가르침, 금촉수련의 힘겨움, 견성(깨달음)에 이르게 된 순간의 기쁨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명상학교의 선생님인 문화영님의 첫 번째 저서이며 명상학교 수선재를 태동시킨 역사적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1997년,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당시 안국동에 위치한 정신세계원에서 ‘저자와의 만남’ 강연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몇몇 수련인들이 문화영님이 수련지도를 요청하였고 이를 수락함으로써 수선재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에는 문화영님이 1,000여일 간의 고난도 수련 끝에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문화영님의 스승이신 천강 선인님에게 전수받은 호흡과 명상, 마음공부에 관한 귀한 가르침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금촉수련이라 불리는 고난도 수련의 과정, 견성(깨달음)에 이르게 된 순간의 기쁨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함께 선계수련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아래 ‘책을 내면서’를 읽어보시면 문화영님이 이 책을 낼 때의 절절한 마음이 와닿으실 것입니다.
<책을 내면서>
나는 길눈이 어둡다. 지하도에서 나오면 방향을 잘 잊으며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한다. 이런 습성이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노정에서도 나타났다.
삼십이 넘어서야 기(氣)를 알고 도(道)의 바다로 향하는 뱃길을 보았다. 사십이 넘어서야 문학이라는 나룻배를 만들고 배를 젓기 시작했다. 올해가 기를 알게 된 지 만 십년이 되는 해이다.
오르던 길을 중지하고 내리막길에 들어서면서 나는 비로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여러 색깔의 감정을 경험하였고 좀 겸손해졌다. 예를 들자면 짝사랑이라든가, 좌절이라든가, 소외감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인생은 고해(苦海)였다. 몇 번이고 자살을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내 마음은 왜 그렇게 힘들고 외로웠는지 모른다.
공부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일은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었다. 약 천일간 금촉(禁觸)수련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거의 모든 만남을 끊고 오로지 숨만 쉬었다. 최소한의 살림만 했다. 친구들은 하나둘 다 떠나갔다. 도무지 사람 구실을 하지 않으니 누군들 좋아했겠는가. 힘들 때마다 나는 단군신화를 생각했다. 그것이 힘이 되어 곰녀의 한 사람인 나는 드디어 최소한의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십년전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도반(道伴)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이 도중 하차했고 몇 사람만이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찾아 하고 있다. 공부란 끝이 없기 때문에 팔자 좋게 숨만 쉬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세상을 등진 공부는 반쪽이고 더불어 사는 일에 성공할 때 완성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는 단지 나 자신에 도달하기 위해서 책을 쓰는 일을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이 글을 통해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껍질이 수없이 벗겨지기를 원한다. 혼자 공부하는 것은 테니스 운동으로 말하자면 백보드를 상대로 혼자 공연습을 하는 것과 같다. 이제 나는 선수들과 공을 치고 싶다.
깨달음으로 향하는 수도(修道)의 과정에 동참할 동반자를 구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환영한다. 특히 살고 싶지 않거나 우울하거나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하는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신 분들은 이 글을 통해서 아마도 동병상련의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신비의 세계를 동경하는 분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정보를 같이 나누게 될 것이다.
문화영 (1951-2012)
명상학교 수선재의 선생님이자 선계수련의 안내자로 살다 간 분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민윤리학과에서 한국학을 전공하였으며 한국여성개발원 창립멤버로서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였다. 39살이 되던 해 사회 활동을 접고 수련의 길에 들었으며 삶과 죽음의 관문을 넘는 극한의 수련 끝에 깨달음을 이루었다. 1998년부터 약 15년 동안 수선재에서 제자들을 길렀으며 그 과정에서 선仙(우주, 지구, 인간)에 관한 방대한 분량의 선서仙書를 남겼다.
저서로는 『선계에 가고 싶다』, 『본성과의 대화』, 『다큐멘터리 한국의 선인들』, 『소설 仙』, 『천서 0.0001』 등이 있다.
<1권>
* 책을 내면서
프롤로그
* 영적인 스승님들과의 만남
기공 스승님과의 만남
기 치료
하늘에서 관장하는 도 공부하는 사람
천기와 지기바람
기공의 고급 과정
마음공부
한마음으로 가라
큰 수련
수련생의 마음가짐
비 오는 날의 수련
초능력에 대하여
화두참선
아침수련
모든 것에 감사하라
매사가 수련
의술에 대하여
죽는 시간에 대하여
기는 마음공부의 수단
성인이란
수련 중 주의할 점
수련 중 유혹
무심으로 치료하라
수련 진도에 대하여
불필요한 인연
천심통
하늘에 있는 명부
공능에 대하여
항상 감사하라
* 선도 스승님과의 만남
스승님을 안 찾다
천기의 흐름이 보이다
스승님이 바뀌시다
선계에 입문하는 입학시험
선도 스승님과의 상면
도 공부가 우선
과도기
다른 스승님 면담
기를 여는 것
심공에 들다
도우의 일에 참견
빙의와 제령
무당은 운명인가?
남의 일은 놔둬라
주변 정리
스승님과의 인연
금촉수련
기운줄
무심으로 들라
준비 단계
다른 도장에 나가다
스승님께 공손해지다
전생을 알다
전생의 부모님
지감, 금촉의 이유
업보에 대하여
장심개혈법
화장과 매장
신공
정통 선도의 맥
불필요한 인연을 끊는 수련법
몸의 죄, 마음의 죄
마음잡는 것의 어려움
수련 중 유혹
인간의 타락이란
심공수련
의통과 의도
태극
사명의 지정
천서에 대하여
하늘이 존재하는 이유
인간이란
<2권>
수련에 게으르지 말라
인간의 다섯 가지 욕심
탁기도 필요하다
견성이란
정심은 수련 속에서 찾는 것
일본의 선도
심법은 안에 있는 기운을 키우는 것
피로회복
잡념과 축기
수련 진도는 항상 일정해야
능력과 노력
버리는 법
도인은 평범한 모습
파계
주변 정리의 어려움
집중이 깊어야 정성이 나온다
수련을 잊고 싶다
기안과 영안
노력이 중요
수련자의 성에 대한 인식
하늘과 우주
물욕에 대하여
인공개혈
영계에 진입
이혼에 대하여
최후에 버리는 것은 나 자신
업과 수련의 장애물
여자의 하단과 중단
우주의 사랑
단전호흡의 과정
축기는 수련의 시작이자 끝
자세
호흡
집중
채기에 대하여
영과 혼이 체내에 들어가는 시기
영과 혼
우주로 가는 과정
운명에서 벗어나는 법
하늘이 돕는 사람
생각하는 것
의식에 대하여
풍장, 수장, 장기이식에 대하여
신과 인간의 관계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단전이란
단전호흡
식사와 수련
병에 대하여
경락이란
수면에 대하여
수련 지도
수련의 목표
기는 영성이 깨일 수 있는 근본
성욕을 벗는 법
텔레파시
마음이 흔들릴 때
수련법에 대하여
마음의 진화
사리란
지구 공동설
우주의 역사
상계의 결혼
인연에 대하여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각계의 정상
윤회의 서열
우주로 진입
제사에 대하여
선도수련은 타 수련과 어떻게 다른가?
기가 필요한 단계
의지가 중요
깨달음이란
본성과 만나는 과정
탈피
* 에필로그
* 프롤로그
내가 영적(靈的)인 스승님을 만나게 된 것은 기(氣)를 알고 난 지 만 4년만의 일이었다. 1988년 초 안국동에 있는 단학선원에서 기를 알게 된 후 선원과의 인연이 길지 않았는데, 그 후 중국 용정에서 온 조선족 여 기공사에게서 특이공능(特異功能)을 수련하던 중 내게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부터 나는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그 분이 보호령을 넘어선 선계(仙界)의 선생님의 위치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나와 선도수련과의 인연이 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과의 텔레파시 대화가 통하기까지는 많은 수련이 필요했다. 우선 선생님이 계신 곳이 선계이기 때문에 나의 주파수가 상당히 낮아 질 것이 요구되었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하루에 열두번씩 변하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나의 파장은 시시때때로 알파 파장에서 감마 파장까지 오르내렸다.
그러니 알파 파장 중에서도 미풍도 불지않는 제로 상태가 되어, 알고 싶은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선생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련과 수련이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은 ‘왜 굳이 선도(仙道)수련에서 영적인 스승님의 도움이 필요한가?’ 라는데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접신 이거나 빙의된 상태가 아닐까?’ 라고 묻고도 싶어 질 것이다.
이 글 속에서는 접신이나 빙의된 상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또한 많은 신(神)들이나 우주인 등 바로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안내하며 때로는 못본 척도 하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분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간들의 지식은 너무나 미미해서 신(神)에 대해서는 유일신이라고 믿는 하나님밖에 모르거나 산신령(山神靈)아니면 귀신(鬼神)을 떠올리고, 우주인이라면 “ET”라는 영화에 나오는 괴물같은 존재를 떠올리는 것이 아직도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눈에 보이는 물질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기계(氣界)가 함께 존재한다. 물질계와 기계는 마치 동전의 앞과 뒤와 같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이며 이 두 세계는 우주의 진화라는 공동목적을 위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서 아는 범위 내에서 소개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간 스승을 찾아 많이 헤맸으면서도 불행하게도 살아 있는 참 스승을 만날 수 없었고, 그 이유는 나와 인연이 있는 수련은 처음으로 맥을 잇는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영적인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만물은 우리가 흔히 하늘이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선도 수련은 처음 기공(氣功)에서부터 신공(神功), 신공(身功), 마지막 관문인 심공(心功)으로 단계를 구분한다. 기공은 기를 알고 운용할 줄 아는 단계를 말하고, 신공(神功)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공부이고, 신공(身功)은 의술을 포함하여 초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몸공부이다. 그리고 심공은 깨달음으로 향하기 위해 버리는 것을 위주로 하는 마음공부이다.
이 글은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된 기공 마지막 단계에서 신공(神功)으로 이르는 시점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기공에 관해서는 많은 체험기와 지침서와 나와 있기 때문에 중복된 서술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일기의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하잘것 없는 내 의견보다는 그날 그날의 선계의 통신을 주로 소개한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한 주제별로 모으느라 날짜는 좀 뒤바뀌었으나 1992년 10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약 육백일간의 기록이다. 등장하는 분들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 집중이 깊어야 정성이 나온다
= 이제 선생님의 중요함을 알았을 것인 즉 수련을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느냐?
- 정성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떤 정성 말이냐?
- 수련으로 끝장을 보려는 정성입니다.
= 어떻게 끝장을 보겠다는 것이냐? 그렇게 해서 어떻게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냐?
- 정리되는 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 어떻게 열심히 하겠느냐?
- 찾아서 해야 할 것으로 압니다.
= 어디에서 찾겠느냐?
- 안에서 찾아보고 안되면 밖에서 찾겠습니다.
= 안에 무엇이 없는 것 같더냐?
- 모두 있을 것 같사옵니다.
= 안과 밖은 어떻게 다르더냐?
- 같은 것이옵니다.
= 왜 안팎을 구별해야 한다고 하더냐?
- 생각의 차이인가 하옵니다.
= 어떤 생각의 차이 말이냐?
- ….
=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구나. 공부를 다시 하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는 힘들다. 그런 공부는 공부가 아니다. 참 공부를 해라. 진리를 찾고 그 진리를 깨고 그 이상의 것들을 밝혀 인류를 구제할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수련해서 거기까지 언제 가겠느냐? 피눈물나는 각오로 임해야 간신히 갈 길을 너무 안이하게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더냐? 무슨 공부를 했다고 그렇게 퍼져 앉아 있단 말이냐? 그게 무슨 공부라고 할 수 있단 말이냐?
공부란 정성으로 하는 것이다. 집중이 깊으면 정성이 나오고 그 정성에서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며 그 공부로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지 시건방지게 조금 보았다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예(禮)가 아닌 것이다. 참 공부란 모든 일과에서 출발하되 참으로 옳은 방향으로만 나가야 하는 것이니 그리 알고 다시 시작하도록 해라.
- 감사합니다.
* 단전호흡의 과정
단전호흡의 과정은 어찌 되는지요?
첫째, 잡념 제거
둘째, 하단 축기
셋째, 중단 축기
넷째, 하단 완성
다섯째, 중단 완성
여섯째, 이 모든 것의 기로 상단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중단이 열리는 증상은 따끔따끔하거나 후끈후끈하게 되는 것이며 그 단계를 넘기면 포근하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각 수련법은 단계별로 전수해야 한다.
하단 축기는 기운의 결집이나 중단 축기는 방향의 결정이며 하단 완성은 기의 출입이 자연스레 이루어질 수 있는 상태이고 중단 완성은 기가 뻗고 멈춤이 자유로운 상태이다. 이 모든 것이 되고 나면 그 다음 단계인 영적인 능력 개발의 준비가 끝난 것인데 이후의 수련은 반드시 개별적으로 전수해야 한다.
* 본성과 만나는 과정
나는 그동안 수련에 대해 짝사랑만 해 온 심정이었다가 이즈음 나 자신과의 사랑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었다. 어느 날의 일기에서 옮겨본다. 나를 만났을 때의 감흥은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표현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울고 또 울었다.
바보같이 어쩌려고 사랑을 안해보고 컸어. 그건 사는 것이지 사랑이 아니었다고. 숨막히고 가슴 저리는 사랑을 이제 경험하고 있는 거야. 없어도 되는 것인 줄 알았지. 따라다니는 사람들만 있었으니 그 사람들 속을 헤아릴 수가 있나? 사랑은 그런 게 아니지. 내가 안달이 안나봤으니 그 속을 몰랐던 거지. 나 잘난 것은 알아도 나보다 더 잘난 남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았지. 그게 무슨 삶이야? 인생은 치여봐야 제맛을 안다고. 당하며 자라는 거지. 이기며 자라는 게 아닌 것이지. 앞만 보고 걸었던 거야. 뒤를 못보고 왔던 거지. 뒤를 잘 봐야 다 아는데. 앞만 보아 반만 살았던 거지. 좌도 우도 모르고 앞만 보았으니 출세는 했었으나 이제와서 이 고생이지. 산다는 게 어디 그리 간단한 것인가?
정수는 빼놓고 이제껏 허물만 보고 산 것 아닌가? 그래 결국 알맹이는 어디에 있던가? 내 가슴속 마음속에 있지 않던가? 속(俗)에서 찾는 것은 한계가 있지. 이제 들여다 보니 선계(仙界)가 어떻던가?
모르겠다. 머리 아프다 떼쓰기보다 이미 들어와 있는 그곳이 내 자리인 줄 알고 나니 어떻던가? 이제껏 빼놓고 살아온 것. 비워야 할 것……. 지금 와서 주섬 주섬 채우는 그 맛이 어떻던가? 선계의 문 앞에서 주저앉아 돌아보고 긁어모으는 그 맛이 어떻던가?“
또 어떤 때는 시(詩)가 절로 나왔다. 옮겨본다.
하늘을 들이쉬고 땅으로 내보내고
우주를 들이쉬고 아래로 내보내고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내보내고
한번에 채우고 한번에 비우고
단전을 의식하되 빠지지 말고
호흡에 실려 호흡에 실려
머나먼 그곳까지 갈 수 있도록 해야지
번뇌를 버려 평온을 얻고
평온을 버려 자유를 얻고
자유를 버려 해탈을 얻는다
해탈을 버려 영생을 구하고
영생을 버려 우주를 얻고
우주를 버려 자신을 얻는다
* 에필로그
얼마전 중국 000기공의 장문인을 만났다. 그는 내게 단전호흡 십년간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버리는 공부에 치중하여 얻은 것은 없지만 마음공부를 했노라고 답변했다. 그는 그 말을 별로 시원치않아 했다. 그러더니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서 몇 가지 술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며칠 후 그가 애써 알려 준 비법마저 잊어버렸다. 소질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 기공이나 타 수련법은 치병술(治病術)이든 무공(武功)이든 한 가지는 확실한 것이 남는다. 그러나 많은 단전호흡 수련 중 특히 깨달음의 길을 가는 선계수련은 버리는 것에 치중하므로 이렇다할 기술이 남지 않는다. 나는 닭을 죽였다가 다시 살리거나 나뭇잎을 갈기갈기 찢었다가 복원시키는 기술도 지니지 못했다. 또 우주인이나 타 신들과 채널링을 하여 그들의 말씀을 전하는 도구로 쓰여지는 메신저도 아니다.
나는 단지 오랜 구도의 방황에서 이제 수련의 가닥을 잡고 수행을 하는 수도자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한때는 내가 가는 길이 하도 멀고 따분하여 남에게 같이 가자고 권하는 일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때로는 살기 싫고 하루 빨리 본래의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우울증 환자이면서 또 그래도 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으로 버텨내는 공주병 환자이기도 하다.
인체에는 적당한 콜레스테롤도 필요하고 분노마저도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데 나는 파장을 가라앉히는 일에 치중하다 보니 아등바등 사는 일에 진력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수련이나 글 쓰는 일 외에는 이렇다 할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왜 살고 싶겠는가? 그런데 공부를 마친 처지도 아니면서 수련기를 내는 이유에는 안정된 수입원을 얻어 글은 쓰고 싶을 때만 쓰고, 또 세상에 이름도 좀 알리고, 또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같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러 욕망들이 움틀거리고 있다.
버리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아직도 뭔가를 잔뜩 움켜쥐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 공부란 정말 끝이 없는지 버리는 것은 아직도 아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저런 다른 얻는 공부에 기웃거리다가도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다시 단전호흡을 하면서 무심으로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에게는 이 방법이 왕도(王道)인 모양이다. 그런 점에서 수련기를 내는 그럴듯한 변명은 이렇다.
수련의 길은 만인만도(萬人萬道)이므로 누구나 같은 길은 없으며 따라서 비슷한 길은 있어도 동일한 길은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좀 독특한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내 공부는 다른 사람들이 한 가지 방법을 깊이 팜으로써 일가(一家)를 이룬 것에 비해 많이 가는 것을 중심으로 버리는 공부를 해 왔고, 그렇다고 버리는 것 중심의 마음공부 한 곳에 집중해서 머물렀다기보다는 다양한 부분을 접할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그 과정에서 확실히 찾아낸 것 하나는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이다.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방법은 하나의 모델로서는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에, 또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있어 그 부분에 대한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나는 아직 공부 중이고, 기(氣)가 인생사의 만병통치 처방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므로 내가 한 수련에 관해서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많은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장의 안내를 참고해 주기 바란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아직 펜끝이 다듬어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께, 또 고지식한 성격 탓에 직설적인 표현으로 혹시 상처를 입게 되실지 모를 분들에게는 남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더라도 사죄드린다. 도 공부하는 아내와 어머니를 둔 탓에 마음 고생이 심했을 나의 가족과 친정 식구들, 그리고 공부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매력이 넘치시는 천강(天降) 스승님께 마음 숙여 큰 절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