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인 이야기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

저자
박은기 외 명상학교 학생들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는 감사라는 마법렌즈를 통해 새로이 행복을 발견한 명상학교 학생들의 체험담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의 학생들이 명상을 통해 깨달은 감사의 가치를 글로 담았다. 더 많이 고통스러울수록, 더 많이 아플수록, 더 많이 외로울수록 감사하다는 역발상 행복 선언을 들어보자.

책소개

왜 나는 김태희 같은 미녀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빌 게이츠 같은 천재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건희 같은 재벌 2세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

미녀, 천재, 부자로 태어나지 못한 ‘평범인’인 우리들이 가끔씩 해보는 생각들이다.

평범인 반열에도 끼기 어려운, 불행한 조건을 부여받은 이들도 많다. 난치성 질환이나 신체 장애를 갖고 태어난 이들, 평탄치 못한 가정에 태어나 외로움과 서러움으로 자란 이들, 사랑에 치이고 사람에게 배신당해 가슴 가득 흉터가 남은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불행한 조건을 부여받은 이들이 평범인들보다 더 행복할 수 있고, 평범인들이 미녀, 천재, 부자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감사’가 그 답이다. ‘우주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감사가 마법을 부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는 감사라는 마법렌즈를 통해 새로이 행복을 발견한 명상학교 학생들의 체험담이다. 다양한 연령대(23세~63세)의 명상학교 학생들이 명상을 통해 깨달은 감사의 가치를 글로 담았다.

감사라는 마법렌즈를 끼고 보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은밀한 우주의 섭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자신을 성숙시키는 자양분이었고, ‘아픔’으로 느꼈던 감정들은 자신의 감정세계를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자산이었다. ‘미움’은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해가는 과정이었고, 외로움은 본래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인간이란 경험을 통해 배우기 위해 ‘지구라는 학교’에 태어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고통과 아픔과 미움과 외로움은 우리 인간에게 배움을 주기 위해 ‘교재’로서 주어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반듯하지 않은 인생, 고마워요』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역발상 행복 선언이다. 다복한 가정, 미남미녀, 부자로 태어나야 행복하다는 것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고통, 아픔, 미움, 외로움을 부여받아 태어났기에 더 행복할 수 있었다. 더 많이 고통스러울수록, 더 많이 아플수록, 미움과 외로움 속에서 더 많이 마음앓이를 할수록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 더 풍성해지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반듯하지 않은 인생이 더 고마운 이유이다.

저자소개

김나진(76년생, 초등학교 교사): 학생들을 빛내주는 거름이 되자, 오늘도 다짐합니다.
박은기(85년생, 한의사): 자신의 글과 말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청년입니다.
김예진(81년생, 영어강사): 택시 안에서 ‘응애~’하고 태어났어요. 여행을 참 많이 다녔어요.
최경아(71년생, 명상화가):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자유인입니다.
조선가(70년생, 사주카페운영): 균형을 찾기 위한 삶의 경험들이 많았고 지금도 공부 중입니다.
박미선(77년생, 고등학교 교사): 분위기를 잘 깨고 물건도 잘 깨서 ‘살이 내린 소녀’라고 불립니다.
이우정(64년생, 한의사): 한의사로서의 소명과 진정 이웃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김경아(69년생, 명상인): 취미는 하늘 쳐다보기, 특기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듣기입니다.
신해순(64년생, 중학교 교사):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과 삶의 여유를 찾았습니다.
이혜선(74년생, 프로그래머): 우울한 20대를 지나 편안하고 충실한 3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김정완(73년생, 경찰공무원): 넘어질 때마다 더 강해져서 일어나는 오뚝이가 되고 싶습니다.
허정행(66년생, 자영업): 목가적인 어린 시절을 지나 세상과 치열하게 대결하는 중입니다.
강진구(59년생, 고등학교 교사): 오늘은 아이들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하루 종일 화내지 않을 거야!
김홍진(66년생, 선물회사 팀장): 나는 이 땅에 왜 태어났나, 이걸 깨닫기 위해 오늘도 힘차게!
이은영(69년생, 선물회사 직원): 누가 자존심을 건드려도 웃으며 넘기는 여유를 배우는 중입니다.
정래홍(74년생, 명상지도사):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유정은(75년생, 초등학교 교사): 명상을 만나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박혜원(72년생, 의사): 호흡과 명상을 통해 깊고 넓은 ‘우주의 사랑’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조정신(58년생, 중학교 교사):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내 탓이 큼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김수연(63년생, 텍스타일 디자이너): 긴 잠에서 깨어난 기분입니다. 잠을 깨운 왕자는 누구일까요?
이정권(71년생, 회사원):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을 공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황기순(64년생, 명상강사): 23년 동안 여자 경찰관이었습니다. 명상강사로 인생2막을 여는 중입니다.
김대만(74년생, 프로그래머):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청년입니다. 명상의 끝에 다다르고 싶습니다.
김지연(82년생, 초등학교 교사): 수련을 시작하면서 제가 그토록 그리던 자유를 찾았습니다.
김기연(62년생, 식당 근무):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시원하게 숨 쉬는 것만으로 하루가 감사합니다.
이영아(69년생, 퓨전 예술가): 교향곡 전문 궁중 악사였다가 이제는 자신을 리모델링하는 중입니다.
김혜정(80년생, 보건소 간호사): 명상을 통해 배운 ‘선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지영(82년생, 바리스타): 부족하기에 더 많이 노력하며, 세상과 사람들과 깊이 소통하길 바랍니다.
권성진(79년생, 회사원): 명상을 통해 나는 매일 기적을 본다, 사람들이 치유되고 변화되는 기적을….
조애리(78년생, 밝은 춤 안무가): 밝음을 나누고 싶어요, 세상이 환해지는 밝은 춤을 통해!
김덕겸(71년생, 물리치료사): 정말 다행이다.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 있어서.
이상훈(66년생, 마케팅 전문가): 가족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김인성(45년생, 전직 철도청 근무): 평생을 철도청에서 근무하면서 장성한 아들 둘을 길러냈습니다.

목차

* 매일매일 인생에서 알아지는 것들
내가 만나는 천사
순화시대
하하하, 바닥이라는 것은
함께 해줘서 고마워
돌고 도는 세상
웃음과 울음사이
가난한 감사
조용한 전쟁
그래, 난 바보야


* 그 손을 잡고 또다시 걸을 수 있었다
나의 20대
무늬만 경찰
나 같은 사람 또 보면 안 되지
뚝배기 한 그릇
눈물의 3단 찬합
지금처럼 뚱뚱했어요?


* 아직 사랑을 말할 시간이 남아있다*
어머니의 밥상
딸의 결혼식
성탄선물
바보엄마
내 사랑 호호 할머니
한나절의 사랑
내 딸 천지수는요
아들이 알 수 없는 것
아빠의 꿈
엄마처럼 안 살 거야
요령부득 이 선생


* 지금 이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기에
박하사탕
행복을 굽는 매장
첫 자전거 여행
사랑의 춤
어디 아프세요?
내 삶의 카모메 식당
이화에 월백하고

책 속으로

- 양아들에게 버림받은 독거노인이 함박웃음으로 사는 이유는?
박하사탕 | 김혜정(28, 간호사)

울릉도에서 보건지소 간호사로 근무하는 저자는 주기적으로 저소득층 독거노인을 방문 진료하는 일을 한다.

방문 진료 중에 만난 ‘강할아버지’는 객관적인 조건만 봐서는 세상을 원망하고 한탄하며 살아도 이상할 게 없는 처지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다리를 다쳐 못 걷게 되었고, 백내장을 앓아 눈이 많이 상했다. 무엇보다도 거두어 키운 양아들이 은혜도 모른 채 그를 노골적으로 박대한다. 자신은 신식 벽돌집에 살면서 강할아버지는 춥고 어두운 판자집에 살도록 내쳐버렸다. 생활비도 주지 않아 강할아버지는 담배를 팔아 근근히 생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할아버지는 늘 함박웃음을 짓고 산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비록 양아들이 자신을 구박하긴 하지만 옆에 살아줘서 든든하다고 느낀다. 담배를 팔아 그 나이에도 용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남부럽지 않게 산다. 방문 진료하러 온 저자에게 비록 작긴 하나 ‘박하사탕’을 선물할 정도로 베푸는 마음으로 산다.

저자는 “감사는 우주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이며 “어쩌면 좋은 일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곳에 더욱 요긴하게 쓰라고 주신 조물주님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연세가 80이 넘었고 고혈압에 걷지도 못함에도 강할아버지가 맑은 정신으로 정정하게 사는 비결은 다름 아닌 감사일 거라고 말한다.


- 친어머니의 자살, 새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기까지……
어머니의 밥상 | 정래홍(34, 명상지도사)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어머니가 가만히 부른다. 저녁으로 뭘 먹고 싶은지 묻는다. 아이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이윽고 어머니는 반찬이 푸짐하게 차려진 된장찌개를 내온다. 허겁지겁 먹는 아이를 눈물을 흘리며 바라본다. 아이를 꽉 껴안으며 눈물을 터뜨린다. 영문도 모르고 품에 안긴 아이는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가슴이 따뜻함을 느낀다.

1시간 후, 어머니는 농약을 마시고 한 많은 인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도박 빚 때문에 자주 아버지한테 매질을 당했던 어머니는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이 지나고 나서 새어머니가 왔다. 아버지가 한 때 결혼생활을 했다가 이혼한, 그 사이에 자식을 두기까지 했던 전 부인이다. 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아이의 어머니가 별세했기에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새어머니는 밥상머리에서 아이를 노골적으로 구박한다. 아이 앞에는 늘 찬밥과 김치만 놓인다. 구박을 못 이긴 아이가 신경쇠약과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였다.

원망스러운 새어머니에게 감사를 느낀 것은 아이가 집을 떠나 객지생활을 한 이후였다. 자신보다 더 불우한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비록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가면 밥이라도 차려주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참 고맙다”고 느끼게 됐다. 그리고 아이가 새어머니를 이해하는 만큼 새어머니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바꼈다.

20대가 된 아이는 새어머니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배 아파 낳은 두 아이를 놔두고 아내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시리고 아팠을지……. 그렇게 아픈 기억을 가진 새어머니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원수 같은 여자의 자식을 지난 10년 동안이나 밥을 먹이고 키워줬다는 걸 알게 된다. 입장 바꾸어 생각해봐도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이와 새어머니는 이윽고 진짜 모자인 양 사이가 좋아진다. 군대에 간 아이가 6개월 만에 첫 휴가를 받고 집에 오자 새어머니는 아이에게 맛깔스럽고 푸짐한 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준다. 차려준 밥상을 물리며 아이는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밥이 참 맛있었어요. 고마워요, 어머니!”


- 난소종양아, 고맙다! 질병을 통해 명상화가로 거듭난 피아니스트 이야기
함께 해줘서 고마워 | 최경아(37, 명상화가)

피아노를 전공한 음대생이었던 저자가 난소종양으로 쓰러진 후 오랜 투병 끝에 깨달은 감사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맘껏 받으며 행복과 평안을 누려보고 싶었던”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다. 병명은 난소종양. 긴 투병 생활의 시작이다.

병이 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투병 생활을 하느라 불같은 사랑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일도, 멋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도 모두 미완의 꿈으로 남게 됐다. 그럼에도 “지금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매일 주어지는 평범한 하루가 아름답게 느껴졌고 작은 일들에 감사할 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근원적인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이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줬다”고 말한다. “아프기 전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 생명이 있는 하찮아 보이는 모든 생명체가 신비롭고 귀하게 여겨졌으며, 두꺼운 껍질이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그 위로 새 살이 돋아나듯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재 ‘명상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을 통해 찾아낸 평온한 내면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갚아도 절대 못 갚을 ‘아주 특별한 20만원’
나의 20대 | 이혜선(34, 컴퓨터프로그래머)

얼어붙은 경제만큼이나 추웠던 98년 겨울. 여대생이었던 저자는 난방도 되지 않는 슬래브집에서 5명의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추위에 진저리치던 저자에게 찾아온 뜻하지 않은 소식! 일본에 가는 교환학생으로 선발된 것이다.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면 1년간 학비가 면제였고, 매달 생활비까지 지급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긋지긋한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반가웠다.

그런데 일본에 가는 데 필요한 초기 비용 50만원을 구할 수 없었다. 50만원조차 융통할 수 없을 만큼 가난했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저자는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한 연구소의 박사님을 떠올린다. 가끔씩 아르바이트생들을 모아 맛난 것을 사준 분이었기에 돈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찾아갔다.

“저… 저, 50만 원만 꿔주세요.”

그 박사님은 몇 분 정도 망설이다 어렵게 말을 떼셨다.

“음. 어쩌지? 나 돈 없어…. 생각보다 가난한 사람이야. 이걸 어쩌지?”

너무 당황스런 나머지 단어로만 이루어진 대답을 했다.

“네…, 괜찮습니다.” 라고 말했지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미안함과 뒤늦게 느껴지는 창피함, 그리고 이젠 어쩌지… 하는 당혹감이 뒤엉켜 나오는 눈물. 그분은 당혹한 표정으로 나가더니 손에 봉투를 하나 들고 돌아오는데.

“50만 원은 못해주겠지만, 얼마 안 되는 용돈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돈은 내가 그냥 주는 거야.”

잉여재산이라고는 없는 그 박사님이 바닥을 박박 긁어 만들어준 돈이었다. 그 돈을 기반 삼아 일본에 갈 수 있었다.

이제는 직장을 잡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 저자. 소득의 일정부분은 아동후원과 사회적 나눔을 위해 쓴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을 기부해도 그 20만 원은 절대 갚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소득의 일정부분을 떼어 주는 것이지만, 그분은 바닥을 박박 긁어서 주신 돈이었기” 때문이다.


- 힘든 시기에 만난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 고맙습니다!
나 같은 사람 또 보면 안 되지! | 허정행(42, 자영업)

IMF로 회사는 망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기에 풍선인쇄기계를 들고 나왔다. 헌데 그 기계가 자꾸 고장이 난다. 그것도 주로 납기일에 쫓길 때 고장이 난다. 고장이 나서 수리공을 부르려면 최소 10~20번 전화를 걸어야 한다. 밍기적거리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껏 내세우는 수리공들의 태도는 더욱 진저리가 난다.

불친절한 수리공들에게 학을 떼던 차에 다시 기계가 고장이 났다. 하필이면 납기가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을 때였다. 기존 거래처는 바쁘다 하여, 새로 알아둔 거래처에 수리를 부탁했다. 60이 넘어 보이는 평온한 인상의 수리공이 왔다. 정중히 부탁했다가는 얕잡아 보일 것 같아 무례하게 다그쳤다.

"무조건 고쳐야 됩니다. 아시겠어요?"

“….”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야지! 이거 툭하면 고장이고. 아저씨들은 고장 나면 돈 벌어서 좋지? 남 고통이 아저씨들에겐 기쁨이라니까! 2시간 넘을 거면 아예 손도 대지 마세요!"

수리공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바삐 손을 움직인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자 기계를 다 고쳤단다. 스위치를 올리자 “징~ 슈~ 철거덕” 소리를 내며 기계가 시원스레 돌아간다.

'오! 주여, 오! 하나님, 오! 부처님, 감사합니다!'

속으론 만세를 연발했지만 겉으론 ‘수고 했습니다’ 소리도 안하고 퉁명스럽게 다음에 또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

"나 같은 사람을 또 보면 안 되지!"

"뭐라고? 이 아저씨가 일 잘 하고선?"

그때 수리공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는데 순간 그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느낀다.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돌린다. 부끄러워 아저씨를 바로 볼 수 없다. 그 말 속에는 부디 기계를 잘 다루어 자기 같은 A/S 기사를 부르지 말라는 염려와 당부, 젊은 나이에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쁘다는 칭찬과 정이 들어 있었다. 자기는 기계만 보면 그 집 상황을 다 안다고. 자네보다 더한 경우도 있다며 괜찮다고 위로를 해준다.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지친 시기에 가슴을 울려준 고마운 한마디, 하루하루를 넘기는 게 힘든 시기에 만난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 고맙습니다!


- 쌓이고 쌓인 울화 속에서 사랑을 증류해 내신 어머니
순화시대 | 박은기(23, 한의사)

어머니는 처음 시집 왔을 때 할머니가 그렇게도 무서웠단다. 자주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고 한다. 다른 식구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하시다가도 며느리인 자신에게만 그리 호되게 대하실 때마다 참 많은 상처가 가슴속에 점점이 박혀 화병이 되었단다. 그러고도 20년간 따스한 눈길을 못 느끼셨단다. 그렇게 밉던 시어머니가 이제는 애기처럼 되어서 자신을 부를 때마다 어머니의 느낌도 남다를 것 같다. 가끔씩 어머니는 할머니께 이렇게 묻는다.

“어무이, 그때 나 혼냈던 거 기억 나는교?”

할머니는 갑자기 어색하게 무표정해져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가슴 속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간다.

“다 내 업보다. 업보를 닦을 수 있는 기회니까 고마운 일 아니겠나.”

어찌 고맙기만 할 텐가. 가슴을 치고 통곡한 세월이 어디 하루 이틀이겠는가. 원망하고 원망하다 가슴이 문드러져 이제는 그만하자 포기하자 했던 수많은 세월이 뇌리를 스치실 게다. 하지만 더 기억해 무엇 하리. 모두 다 내 탓이다. 모두 다 내 업보다.

어머니는 그동안 쌓인 울화를 삼키고 녹이고 울어내고 또 다시 삼키어 그 속에서 사랑을 증류해 내신다. 할머니의 마음도 사랑이었음을, 모두 다 사랑임을 알아내신다. 또 다시 할머니는 어머니를 부르신다.

“에미야, 내 손 좀 잡아도고.”

“어무이, 왜 진작 안 그러셨습니꺼.”

어머니는 따스한 눈길로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눈빛도 더 없이 자애롭다. 사람들은 때때로 깨닫는다. 모두 다 사랑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