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과의 대화

허난설헌1, 2 (허씨 가문의 천재교육, 조선을 빛낸 한류스타)

허난설헌1, 2 (허씨 가문의 천재교육, 조선을 빛낸 한류스타)

저자
김예진

조선 최초의 한류스타, 허난설헌! 그 뒤에는 허씨 가문의 천재교육이 있었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허난설헌의 시를 통한 그녀의 고매한 정신세계와 삶의 품격, 가족사 등을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허난설헌: 조선 최초의 한류스타』의 전자책 버전입니다.)

책소개

조선 최초의 한류스타, 허난설헌! 그 뒤에는 허씨 가문의 천재교육이 있었다.

한류는 수백 년 전 이미 시작되었다? 조선 중기, 여성이 억압받던 시절,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한·중·일을 아우르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했고, 사후에도 수백 년 동안 중국 문인들 사이에 이름이 오르내릴 만큼 인기 있었던 스타는 누구일까? 바로 허난설헌이다.

현대인에게는 일반적으로 한 많은 삶을 살다가 27세에 요절한 여성 시인으로 알려진 그녀는 조선시대의 신사임당, 황진이와 더불어 유명한 인물이지만 화제성에 비하면 그 철학이나 업적은 지금껏 잘 드러나 있지 않았다.

작가는 허난설헌의 유선시(선계의 풍광을 노래한 시)에서 영감을 얻어 시인와의 영적인 교감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그녀의 숨겨진 면모를 조명했다. 명상을 통한 교감에 따르면 허난설헌은 선계에서 사명을 가지고 내려온 분이었으며, 16세기 조선 문화의 형성 시기에 여성 문학의 큰 줄기를 세우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또한 허봉, 허난설헌, 허균 3남매는 모두 당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던 천재들로 유명한데, 이는 자유로운 소통과 토론, 역사 공부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길러 주는 허씨 집안의 엘리트 교육이 이룬 성과였다.

저자는 『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을 통해 역사 속에 숨겨진 정조 선인의 업적과 죽음의 비밀을 다룬 바 있으며, 이 책에서는 허난설헌의 시를 통한 그녀의 고매한 정신세계와 삶의 품격, 가족사 등을 흥미 있게 다루고 있다.

저자소개

*글 - 허난설헌(1563~1589)
조선 명종 때 태어나 선조 대에 활약한 시인. 당시 여성 한시가 생활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해 가정사, 사회문제, 환상적 세계로까지 시선을 돌려 여성 한시의 문학범주를 확장하였습니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신동으로 불리었으며 개방적인 집안 분위기 덕에 여성임에도 체계적인 한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혼인 후에도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아 난설헌의 유선시는 조선조 통틀어 최고라 칭해집니다. 그녀가 죽은 뒤 동생 허균이 누이의 시를 모아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건네준 뒤, 1606년 ‘난설헌집’이 간행되었고 이후 일본에까지 건너가 분다이야 지로에 의해 발간되었습니다. 그녀의 시는 특히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글 - 김예진
충북 속리산의 생태공동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 명상을 해 오고 있으며 선인들의 삶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고통을 겪어 넘기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난설헌의 삶을 배우고자 펴냈습니다. 그간 쓴 책으로는 『작은 신들의 인공별 보고서』, 『마을이 돌아왔다』, 『정조, 월야문답』, 『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 『식당 하나로 혼저옵서예』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vadah04


*삽화 – 최경아 (필명 : 이본)
명상을 통해 얻은 맑고 고요한 내면의 에너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녀는 명상을 시작한 후 그림에도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 음악과 육성, 자신의 그림을 결합한 ‘그림 명상법’을 개발하여 대중들에게 쉽게 명상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grimee1128


*시 감수 – 김영호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동양철학과의 석사 및 박사과정을 졸업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노주 오희상 가학연구』(심산, 2010), 『논어의 주석과 해석학』(문사철, 2010), 『논어 : 공자와의 대화』(산지니, 2012) 등이 있습니다. 현재 영산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논어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강원도와 원주시의 지원을 받아 토지문화관에서 집필하였습니다.

목차

<1권>

프롤로그

1. 선계에서 만난 허난설헌
□ 허난설헌 생가터를 방문하다
□ 선계로 초대받다

2. 선인, 허난설헌과의 대화 : 대문호를 배출시킨 허씨 가문의 천재교육
□ 허난설헌, 어린 시절을 말하다
○ 시를 쓴 것은 세 살 때부터
○ 남달랐던 허난설헌의 가족들
□ 허난설헌, 허씨 가문의 천재교육을 말하다
○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 준 천혜의 자연환경
○ 진보적인 가족, 진보적인 생각을 낳다
○ 국제적인 집안 분위기
○ 역사 공부를 통해 정체성을 심어 주다
○ 차별이 아닌 차이, 다양성을 인정하다


<2권>

3. 선인, 허난설헌과의 대화 : 조선 최초 한류스타는 어떻게 탄생하였나?
□고통을 승화시켜 시선(詩仙)이 되다
○ 그녀의 남편, 김성립
○ 그녀의 시집생활 : 나는 평범한 며느리였다
○ 시인 허난설헌, 그녀가 조선에 태어난 까닭은?
○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
○ 문학사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다
○ 仙인, 허난설헌
○ 여성의 결혼과 출산
○ 허난설헌의 죽음 미스터리
○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
□대화를 마치며 : 선계에서 나오다

4. 조선 최초 한류스타가 된 허난설헌
□조선 최초 한류스타가 된 허난설헌
□허난설헌의 인기, 어느 정도였을까?
□허난설헌, ‘폐인’ 현상을 낳다
□16세기를 다녀갔던 보석 같은 세 여성 : 신사임당, 황진이, 허난설헌


에필로그
仙인, 허난설헌

(이 책은 『허난설헌: 조선 최초의 한류스타』의 전자책 버전입니다.)

책 속으로

- 둘째 오라버니였던 하곡 허봉께서는 어린 시절 붓을 선물하며 달빛도 그리고 벌레나 물고기도 그려 보라고 독려했다지요?

= 오빠가 붓을 주며 그림을 그리라고 한 것이 자연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가만히 앉아서 자연이 주는 느낌을 포착해야 했어. 꽃을 그릴 때는 내가 꽃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단다.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에는 그것과 일체화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 일체화란 순간적으로 그 물체의 본질과 닿아야 가능한 것이었지.


- 벌레와 물고기는 관찰해서 그릴 수 있지만 달빛을 그려 보라고 한 것은, 무슨 뜻으로 그런 것인지요?

= 달빛의 느낌을 그리라는 것이었지. 그림은 단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야. 보이는 세계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포착해 낼 수 있어야지. 나는 메시지를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그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려 노력했지.


- 자연이 시를 쓰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요?

= 자연을 느끼고 알아 가는 과정에서 그들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배웠어. 그것을 알게 된 후엔 자연에 대해 존경심이 생겼지. 시라는 것은 느낌을 표현하는 작업이야. 즉, 본질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도구지. 사물을 깊이 느끼고 사랑하여 그것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날 때 비로소 시가 되어 터져 나오는 것이지. 그때의 시란 더 이상 시가 아닌 경지란다.

그렇게 표현된 시는 에너지를 가득 품고 있지. 단순히 시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과 접촉했을 때 느낌, 감정, 모든 것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역할이 있단다. 그래서 시나 음악, 그림 등 세상에 표현하기 위한 도구들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될 때에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란다.

*

- 허씨 가문의 사람들은 5문장가라 하여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져 있지요. 자녀들이 성장할 당시 신동이 났다고 소문이 자자했다고 들었어요. 한 가문에의 형제, 자매 모두가 천재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교육 비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 허씨 가문의 남다른 교육법이 있었는지요?

= 허씨 가문 교육의 특징은 무엇보다 자녀의 의사를 가장 중요시했다는 점이지. 스스로 알게끔 두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 질문하면 알도록 도와주는 식이었거든.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도 먼저 답을 알려 주지 않았고 스스로 해답을 찾은 연후에야 대응을 해 주시곤 했지. 나를 어린아이로 보지 않고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인간으로 대하신 것이야. 만약에 어린 내가 잘못 한 것이 있어도 알 때까지 중간에 개입하지 않으셨단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의 결과를 보여 준 다음 어떤 일을 초래하게 하는지를 깨우치게 하셨지.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내가 한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스스로 행동에 주의할 것을 터득했지. 품성 교육을 가장 중요시하셨고 기본 품성을 닦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어. 예를 들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 스스로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도 그때 배울 수 있었지. 책상머리에서 공부만 했을 것 같지만 실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집안의 다양한 일에 참여하면서 더불어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단다.

*

허난설헌 선인은 아버지 허엽공이 서경덕 문하에서 수학했던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호흡 수련을 했었다고 한다.

*

두 여인이 말하였다. “여기는 광상산입니다. 십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지요. 당신은 선계와의 인연이 있어서 이곳에 올 수 있게 되었으니 이를 시로 기록하시지 않을는지요?”
나는 사양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절구 한 수를 읊으니 두 여인이 웃으며 “글자마다 선인의 말씀입니다”라고 하였다.
「꿈에 광상산을 노닐며」 - 허난설헌

*

○ 그녀의 시집생활 : 나는 평범한 며느리였다

- 어려운 상황이셨는데 어떻게 시를 계속하여 쓸 수 있었는지요?

= 내 가슴이 원하는 일이었지. 아픔을 겪지 못하고는 제대로 된 글이 나오기가 어렵단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결국 나를 성장시켰던 풍부한 자산이 되었지. 처음 시집을 와서는 모르는 것이 많아 시댁의 법도를 따르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시 쓰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어.

*

○ 문학사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다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읽었습니다. 이 글로 당대 신동이라는 별칭을 얻으셨다지요? 아이가 지었다기에는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상량식을 세세하게 너무 잘 묘사해서 ‘이걸 8살이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어른이 되어 지었는데 8살 때 지은 거라고 소개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선계에서 상량식을 하는 것을 직접 보고 쓴 거란다. 내가 어렸을 때 상량식에 초대되었지. 선인이 이끄시는 대로 선계에 도달했는데 상량식을 하고 있었고 내가 상량문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지. 물론 아직 지상에 머무는 내가 그곳에서 상량문을 짓는다는 것이 여러모로 누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선인님들께 내가 한 수 지어 보인 것이다.

아마도 선계에서의 능력이 그대로 나온 것이라서 8살이 쓴 시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

- 선인님께서는 지상에서의 삶에서 무엇을 배우셨는지요?

= 생각보다 지상에서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 정말로 힘든 것은 마음이 힘든 것이란다. 누구나 아픔은 겪지. 하지만 아픔을 겪고 나서는 내가 잘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지. 그래서 나는 아픔을 한층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았단다. 아픔에서 오는 감정 하나, 하나 내 것으로 소화해 내고 이를 나의 자산으로 품었지. 내 영혼을 풍부하게 해 주는 재산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야. 인생의 나쁜 면만을 보면 그렇게만 보인단다. 하지만 거기서 또 다른 문이 열리기도 해.

*

오늘날 아이돌을 흠모하듯 그녀를 흠모한 무리들이 여럿 생겨난 것을 보면 그만큼 허난설헌이라는 인물 자체의 매력이 무궁무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시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그녀 같은 유형의 여자가 그 시절엔 드물었다. 여자임에도 그녀의 시 세계를 보면 역사, 인문, 자연, 선계까지 광대하게 아우르는 데다 시의 수준도 무척 높다. 본래 타고난 재주도 상당했지만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27살이라는 나이에 요절했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상승했을 터, 특히 여성들은 그녀의 시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았을 것이다.

소설헌은 조선인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 집에 얹혀살면서 외로움을 달래 가던 중 난설헌의 시집을 접하고 상당한 위로를 받았으리라. 더불어 그녀와 같은 인물이 되고 싶다고 스스로 다짐했으니 요즘 식으로 ‘난설헌 앓이’ 혹은 ‘폐인’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일까? 우리나라를 빛낸 최초의 한류스타라고 하면 주저 없이 허난설헌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