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과의 대화

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

세계 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

저자
김예진

군주 혁명가였던 정조 이산의 진면목을 조명한 역사인문서. 세계 역사상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많았지만 신분제에 손을 대고, 관료중심이 아닌 백성중심의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왕이면서도 가장 백성들의 마음에 닿아있던 그는 가히 세계최초 군주혁명가라 칭할만하다.

책소개

세계최초 군주 혁명가, 정조 이산(李蒜)

조선은 성리학적 질서로 이루어진 나라. 양반과 농민, 상인, 서얼, 천민 간의 신분의 구별은 뛰어넘어서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것이 조선의 세계관!

그런 세계에서 그는 서얼이라도 등용했을 뿐 아니라 노비제도까지 격파하고자 했다.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군주가 자발적으로 노비제를 없애려고 한 것은 세계역사상 처음 있는 일. 정조이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조선최초 도시형 성곽 수원화성. 조선의 왕이란 신분제의 가장 정점에 위치한 존재. 밤하늘의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듯, 왕이 있는 곳은 도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야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丁)자형 도시구조. 도시의 가장 정점엔 임금이 사는 궁궐과 관청이 그 아래엔 백성들의 거주지가 나열되어 있다.

수원화성의 중심은 행궁이 아닌 십자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지대. 북극성처럼 하늘의 정점에서 가장 빛나야 할 별인 왕이 머무는 곳(수원행궁)은 도시의 외곽에 있다. 수원화성은 18세기에 완성되었던 21세기형 도시였다. 왕을 비롯한 양반이 중심인 시대에서 '길'과 '사람'이 중심인 시대를 열어가고자 했던 정조이산. 수원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다. 그것은 신(新)조선을 만들기 위한 추진기였다.

정조 이산의 마지막 계획은 수원화성을 성공 시킨 후 화성모델을 전국에 퍼뜨리려고 했던 것. 이를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새로운 조선을 탄생시키려고 했던 정조이산. 역할의 구분은 있되 상하의 차별이 없는 곳에서 만백성이 자신의 천명(天命)을 다하고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이 되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다. 세계 역사상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많았지만 신분제에 손을 대고, 관료중심이 아닌 백성중심의 개혁을 시도했던 왕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왕이면서도 가장 백성들의 마음에 닿아있던 그는 과히 세계최초 군주혁명가라 칭할만하다.

저자소개

김예진

쓴 책으로는『작은 신들의 인공별 보고서』『김제동의 첫사랑, 後』,『내 가슴에 귀 기울여』,『정조, 월야문답』 등이 있다. 올해로 명상 10년째인 저자는 문화관광부 소속 국제협력 공무원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하여 2005년 명상에 입문했다. 현재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생태마을 선애빌에 살면서 명상을 하며 알게 된 것들을 쉬운 언어로 대중들에게 풀어쓰는 일을 하고 있다.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vadah04

목차

仙인의 삶에서 찾은 삶의 비전 시리즈 1
세계최초 군주혁명가 정조 이산

프롤로그

1강 난 왜 태어났을까? 평범한 의문이 가져다준 삶의 전환

2강 시대를 탐구하면 가야 할 길이 보인다.

3강 세계최초 군주혁명가, 정조 이산
① 탄생, 그리고 사도세자의 죽음 - 고통 속에 건져낸 나의 사명, 시대의 사명
② 삼대모역사건 - 위기를 극복하고 내 자리를 찾아라!
③ 규장각 - 리틀 정조 양성학교, 없으면 만들어내라! 개혁의 주역들
④ 아! 문체반정이여 - 그를 둘러싼 의문, 그는 과연 개혁왕이었나?
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노비제도를 없애라!
⑥ 新조선 창조를 위한 추진기 수원화성 vs. 미래형 생태마을 선애빌

4강 정조 이산과의 만남, 그 후
① 정조 이산, 그는 끝을 알 수 없는 산맥이었다.
② 21세기형 무인공도, 선애빌 주민들 정조 이산을 만나다.

에필로그
-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From 정조 이산 to 후인들

참고문헌
정조 이산 연보

책 속으로

정조 仙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2012년 여름이었습니다. 찌는 더위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었죠. 정조 이산이 돌아가셨던 그해 여름처럼 말입니다. 이분에 대해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조선후기 문화군주 혹은 비운의 사도세자의 아들 정도로만 여겼지 사명이 있어 仙계에서 파견된 분이었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정조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조선부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분과 함께 온 여러 仙인님들이 있었다는 것도요.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죠.

정조 임금은 이 프로젝트에서 중앙조정에서 조선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고 연암 박지원은 우주에서 세상사를 조정하는 仙인 중 한 분으로 조선에서는 문학과 교육을 통해 조선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원 김홍도는 별의 구성요소를 디자인하던 仙인 중 한 분으로 별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다 지상에서는 예술의 대중화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담헌 홍대용은 우주에서 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교육을 담당하던 仙인으로, 지상에서는 물질문명의 시대적 흐름이라 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시대관을 소개하고 이를 접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정조시대가 순탄하게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 있었지요. 마지막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분들 중 가장 늦게 태어난 다산 정약용은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후대에 전하는 역할이 있었대요.

또한 정조 시대에 활약했던 채제공 仙인은 정조 임금의 측근에서 인재를 등용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부여되었고 초정 박제가, 이덕무 등은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고 여러 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답니다. 그들이 서얼로 태어났던 이유는 시대의 모순을 온몸으로 체험한 후 시대가 원하는 개혁안을 내기 위함 이었다고 해요. 이밖에 많은 분들이 정조 프로젝트의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하지요.

仙계는 어느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구조가 아니라 각 분야를 담당하는 仙인님들이 함께 일을 하고 조화를 통해 시너지를 내는 구조입니다. 프로젝트의 리더역할은 처음 일을 기획한 사람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것은 仙인의 등급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정조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당시 세계가 본격적인 물질문명으로 발돋움 하고 있었지만 조선은 세종시대 이후 오히려 과학이 퇴보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을 근대화의 흐름에 동참시키기 위한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仙인님들은 강력한 지도력으로 빠른 시간 안에 조선을 도약시키려 했습니다.

정조 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사도세자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도 대화를 통해 새롭게 알아내었습니다. 사도세자는 仙계에서 온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정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주의 한 차원 높은 별에서 그 시기 조선에서 함께 역할을 하기로 한 분이었습니다. 이분의 역할은 무너진 조선의 기강을 무(武)로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양반층이 아닌 백성들을 먼저 변화시킴으로써 조선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일로 군을 강화하는 방법이 곧 물질의 힘을 강화시키는 빠른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갑작스레 죽음으로써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그랬기에 정조 임금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본래 계획했던 판 자체가 바뀌어 仙인님들의 역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두고 시대의 모순과 싸우면서 차근차근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했던 정조 임금은 재위 후반 수원화성을 만들었습니다. 수원화성은 흔히 성곽 혹은 신개념 도시라고 알려져 있는데 수원화성은 새로운 조선을 만들기 위한 추진기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상·공업을 발달시켜 조선의 물질문명을 도약시킨다면 신분간의 차별, 실천 없는 명분싸움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새로운 조선을 만들 수 있다고 보았기에 도시의 형태를 선택했다고 하더군요.

정조 프로젝트를 공부하면서 仙인님들께서 일하는 방식은 개개인이 각 분야의 중심이 되어 흐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또 그 일이 다른 仙인님들이 하는 일과조화를 이루어 최상의 시너지를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지구에서 일을 하는 경우에는 물질이라는 특성, 지구라는 별의 특성 상 예측할 수 없는 갖가지 변수가 발생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지만 배움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꼭 나쁜 것만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고요. 역리에서는 순리를 배우는 것이 지구의 일이라고 합니다.

정조 仙인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정조 프로젝트는 당대에 꽃을 피우진 못했지만 그 시기 함께 했던 많은 仙인님들이 책의 형태로 혹은 기록의 형태로 후인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남겼기에 후손들이 그 뜻을 이해하고 이어준다면 얼마든지 다시 꽃피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제 바통은 후인들에게 넘겼으니 각자가 오랜 세월동안 준비했던 역량을 뽐낼 때라고요.

같은 정조 시대 세계사를 보면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또 미국에서는 독립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것을 보며 우리나라는 왜 이런 일이 없었을까? 안타까워했었죠. 하지만 우리들이 가진 강점도 있었습니다. 한반도 땅에서는 물질적 발전은 더뎠지만 개혁을 주도했던 세력들이 깨인 지식인이었다는 것, 또 총칼을 앞세우고 무력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변화보단 최대한 인명손실이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추구했다는 것을요. 늦게 가는 것 같지만 최대한 업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조선은 변화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