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전에 알던 분 중에 대기업에서 이사를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서 경리 이사를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으로 내려온 신임 사장과 뜻이 안 맞아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사장이라는 사람이 회사 돈을 빼돌려 정치권에 상납도 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니까 이분이 팔을 걷어붙이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의협심이 강한 분이어서 매일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혼란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다 간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물었습니다. “회사가 더 중요하십니까, 자신이 더 중요하십니까?”
그랬더니 회사가 더 중요하답니다. 목숨을 걸고라도 해야 한답니다. 그래서 제가 할 말을 잃고 “그럼 싸워서 이기십시오”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하나 있는 아들이 뇌에 종양이 생겼습니다. 수술을 해도 3개월을 못 넘긴다는 선고를 들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인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서 그때부터 이분이 전국의 용하다는 분들을 찾아다녔지요. 회사일 하랴, 아들 때문에 그렇게 찾아다니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제가 또 물었습니다. “아들이 더 중요하십니까, 자신이 더 중요하십니까?” 그랬더니 또 아들이 더 중요하답니다. 이번에도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명상을 하라고,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으라고 말씀드려도 안 듣더군요.
결국 이분이 간암에 걸려서 돌아갔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를 지배하면 안 되는데 이미 80~90% 이상 일과 아들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한 가지 일도 아니고 두 가지 일이잖습니까? 자기는 그냥 껍데기만 남은 상태가 되니까 병이 침범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 어떤 것도 자기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일단 자기가 있어야 회사도 있고 아들도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런 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목숨까지 잃을 정도로 소중한 일은 없는 것이지요.
그분이 아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은 아닙니다. 아들 때문에 고민하다가 병을 얻어 죽은 것일 뿐입니다. 오히려 아들은 어찌어찌해서 살아남았습니다. 회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도 아닙니다. 사장 때문에 그 회사가 거덜 났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갔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무엇도 나를 50% 이상 지배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자신을 바칩니까?
저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 하면, 일정한 나이가 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을 성공했다고 봅니다. 잠 잘 시간 줄여서 하루에 열 몇 시간, 스무 시간 일하는 사람,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을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바빠서 정신없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바빠서 정신없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너무너무 정신없는 사람들 있잖습니까? 중요한게 뭔지 모르는 거지요. 바삐 돌아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러는 겁니다.
사람은 그렇게 일벌레로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여유롭게 숨 쉬면서 인간답게 살려고 태어난 것이지 그렇게 일만 하면서 살려고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에 이미 그걸 거부했습니다. 더 이상 직장 속의 부속품으로 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유로움을 지향해서 그런 것이지요. 우리가 하는 명상도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물론 젊을 때는 일에 매진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기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 계속 끌려가서는 안 되며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인생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준비하십시오. 경제적, 시간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해 보십시오. 한번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어느 선까지 먹고살게 되면 그때는 하루 몇 시간만 일하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할애하겠다, 이런 식으로 목표를 세워보시는 겁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인간이 아니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경우 20대는 결혼해서 아이 낳아 기르고 직장 다니느라 정신없이 보냈고, 30대는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면서 굉장히 힘을 쏟았습니다. 39살에 명상에 입문해서 40대는 명상으로만 10년을 보냈고, 50대는 이렇게 명상 지도를 하게 됐습니다.
제 인생 스케줄에 의해 그렇게 된 건데 60대가 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유명한 작가가 될 수도 있고, 시골 찻집 주인이 돼서 살 수도 있습니다. 70쯤 되면 다시 선생이 될 수도 있고요.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경영할 수 있어야 인간이 아니겠는지요?
지금껏 해오던 일을 계속 하지 않으면 죽는 줄 아는 분도 있더군요. 만일 30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다 하면 정년퇴직을 해야 명예로운 퇴직이고 중간에 나오면 불명예 퇴직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서 30년을 일 했다면 정말 끔찍이 많이 일한 겁니다. 10년을 일했다 해도 참 많이 일한 것인데요.
만일 내가 30년을 한 분야에 종사했다면 나머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10년쯤은 사회를 위해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반장이나 동장을 지내면서, 혹은 구멍가게를 하면서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10년은 농사짓고 자연과 대화하면서 보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한다면 그 이유는 아마 낮아지지 못해서일 겁니다. 수치심을 버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명예나 지위 같은 걸 따지다 보니까 못하는 것일 겁니다. “사장님, 선생님” 이렇게 불러줘야 좋아하고 그렇게 안 불러주면 아주 싫어하지 않습니까? 관광 가이드도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야 좋아하더군요. “가이드님”이라고 불러도 좋을 텐데요. 직업이 귀천이 있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지요.
그런 것들이 다 우리를 옭아매는 굴레입니다. 왜 내가 그럴듯한 일만 해야 하나요? 왜 내가 넥타이 매고 출근하는 일만 해야 하나요? 전에 의사였다고 다른 일은 못하나요? 꽃 장사를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수치심을 버리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좌판 놓고 떡을 팔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부끄럽지 않다면 겉옷 같은 것은 다 벗어 던지십시오. 내가 부끄럽지 않은데 남이 뭐라고 하면 어떤가요?
외국으로 이민 가신 분들은 대개 자유로움을 원해서 가신 분들이지요.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많은 참견을 받는데 외국에 가면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으니까 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게 죽어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명상은 버리는 공부이고 본성을 만나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일에 있어서 비웠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걸 말하는 걸까요? 아예 직장도 때려치우고 직업도 안 가지는 걸 말하는 걸까요?
직업은 필요합니다. 하루 종일 놀 수 없으니까 필요하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필요하고, 취미가 있어야 하니까 필요합니다. 단지 반드시 그 일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직업에서 비웠다, 놓여났다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저로 말하자면 지금은 제가 명상학교의 선생 노릇을 하고 있고 저를 차지하는 것의 95%가 선생이지만, 95% 선생이라 해서 “나는 선생 아니면 안 된다” 이러지는 않습니다. 하기 싫어지거나 뭔가 사정이 생기면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선생을 그만두면 잠시 쉬다가 동대문에 가서 점원 노릇을 할 수도 있고, 찻집을 운영할 수도 있고, 작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불편 안 느끼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게 비웠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내가 지금 여건이 되고 형편이 되니까 그 일을 할 뿐이지 죽으나 사나 그 일 아니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이 일도 할 수 있고 저 일도 할 수 있는데 현재는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일하는 법』(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