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

03 인생은 원래 여행이 아니던가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왜 도는 ‘길’인가?

우리가 흔히 쓰는 ‘도(道)’라는 단어에는 ‘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도는 곧 길인 것입니다. 왜 도를 하필이면 길이라고 했는가? 왜 딴 이름을 붙이지 않고 길이라고 했는가? ‘길’이라는 단어에는 ‘간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길이라는 게 제자리에 서 있으라고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명상하는 사람들은 가야 합니다. 제자리에 있으면 안 됩니다.

마냥 누워 있는 분이 있더군요. 길바닥에 누워서 남이 지나가는 걸 방해하더군요.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프니까 엎치락뒤치락 자세를 바꾸기는 하는데 계속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온몸으로 기어갑니다. 굼벵이 주위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한참 있다 와보면 이만큼 가 있습니다. 굼벵이도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서 기어가는데 하물며 사람이 제자리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가정적인 행복에 안주하는 분도 많습니다. 집에 가면 따뜻한 방이 있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귀여운 아이들이 있고……, 이런 데 심신이 젖어 있어서 그걸 버리라고 하면 굉장한 공포를 느낍니다. 부부간에도 떨어지면 못 사는 줄 압니다. 잉꼬처럼 붙어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까지 해오던 일을 계속 하려고 명상을 하는 건 아닙니다. 이제껏 해오던 일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해 명상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건 안주하는 것입니다. 험난한 길일지라도 지금의 안락함을 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행이 필요한 건 그래서이지요. 마음이 길을 못 떠나겠으면 몸이라도 떠나봐야 합니다. 길을 떠나봐야 비로소 철이 듭니다. 남녀노소 모두 집을 떠나봐야, 이때까지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서 다른 일을 해봐야 성장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 명상 이외에 가치 있다, 해볼 만하다, 싶은 일은 여행인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명상을 안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여행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명상이 앉아서 우주를 아우르는 정신적인 여행이라면, 여행은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육체적인 여행입니다.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

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여행을 하면 하루에도 여러 국면을 만납니다. 길을 가다가 비가 쏟아질 수도 있고, 강도를 만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안 떠나면 1년에 한두 번 겪을 일을, 여행을 떠나면 매일 겪게 됩니다.

매일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는데 혼자 해결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신도 몰랐던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면서, 자기를 재발견하면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공포심이 많은 분은 혼자 여행갈 엄두를 못 내기도 하는데 그런 분도 닥쳐오는 상황에 대처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길 겁니다. 자기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질 겁니다. 자신을 강화하는 데 있어 혼자 하는 여행만큼 좋은 방법이 없는 거지요.

어린 나이에 무전여행을 하신 분들을 보면 굉장히 성숙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대학은 꼭 가고 싶은 사람만 가게 하지만 여행은 다 보낸다고 하더군요. 고등학교만 나오면 세계 여행을 가게 한답니다. 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전 세계의 젊은이들 중에서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제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스라엘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강대국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앉아서도 여행을 떠납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여행을 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여행을 가는 것도 자신과 만나는 빠른 길입니다.

언젠가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의 길’을 걸어볼 작정입니다. 800km쯤 되는 흙길인데 차가 안 다니고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전 세계에서 찾아온다고 하더군요. 연세가 많은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천천히 끝없이 걸으신답니다. 팔십이 넘은 할머니들끼리, 할아버지가 혼자서 또는 손자와 같이, 천천히 끝없이 걸으신답니다.

이분들께 “집에 안 가십니까?”라고 물어보면 나는 이미 집에서 떠나왔다,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느니 길에서 죽겠다, 대답하신답니다. 죽음을 초월하신 분들이지요. 여행자들의 경지는 높다고 봅니다.

여행을 하는 태도도 가지가지인데 제 경우 명상을 통해 이미 어떤 고지에 올라봤기 때문에 기를 쓰며 걷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행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뚫어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걸으며 매순간을 즐기고, 만나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사는 멋을 부리고 싶습니다.

여행도 오래 하는 사람은 몇 년씩 합니다. 여행 다니다가, 현지에서 일하다가, 다시 여행 다니다가 합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참 드물더군요. 가족의 이해도 부족한 것 같고요. 아마 우리 사회가 획일적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인생을 다양하게 살 줄 모르는 겁니다. 대학을 반드시 나와야 하고, 안 나오면 열등의식이 있고, 결혼을 꼭 해야 하고, 반드시 자식을 낳아야 하고……. 의식이 그렇게 고정돼 있습니다. 인생이 다 찍어놓은 상품 같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다양하고 인간답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면서 인간답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여행하면서 사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지 않겠는지요? “그럼 가정은? 직장은?” 이렇게 반문하는 분도 있겠으나 할 만큼 했다고 여겨진다면 다른 걸 해볼 수도 있는 겁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한 생에 모든 걸 알고 가야 하기에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기 위해 태어났으며 지구는 ‘학교’라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몇 천 년, 몇 만 년 후에 다시 태어날지 모르기에 한 번 나왔을 때 경험할 수 있는 일은 다 경험하는 게 좋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저로 말하자면 지구에 우주의 80여 종족이 다 내려와 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을 다 보고 가고 싶습니다. 여행을 하려면 체력과 돈이 많이 드는데 안배를 잘해서 죽을 때까지 다 보고 갈 생각입니다. 한 생에 모든 걸 알고 가야 하니까요.

비행기 타고 몇 시간만 가도 너무나 달라지지 않습니까? 힌두교니 마호메트교니 문화가 달라질 뿐 아니라 인종도 달라집니다. 나라마다 취할 점과 버릴 점이 있는데 그런 걸 다 보고 싶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이미 잘 알기 때문에 이제는 외국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여행을 하는 목적에는 제2의 고향을 찾으려는 뜻도 있습니다. 지구화 시대, 우주화 시대잖아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살고 싶은 제2의 고향을 찾아서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세 가지 집(태어난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미래에 살아갈 집)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인간으로 태어나 맘에 드는 집에서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여행은 그런 걸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육신과 영혼을 누일 터, 살고 싶은 집의 형태, 그리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을 찾는 과정이지요.

여러분도 한 번 나왔으면 견문을 넓히고 가야 하지 않겠는지요? 외국에 많이 다녀본 사람은 국내에서만 지낸 사람과는 뭔가가 다릅니다. 많이 세련돼집니다. 옴짝달싹 못하던 사람도 의식이 많이 깨입니다.

처음부터 외국 여행을 하기가 어려우면 국내에서 걷기 여행을 하셔도 좋습니다. 처음부터 혼자 여행하기 어려우면 마음이 맞는 친구와 같이 가셔도 좋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세 발로 걸어도 좋고 아주 느리게 걸어도 좋습니다. 사실은 느리게 걷는 게 더 귀한 것입니다.

『행복하게 일하는 법』(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