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잘 죽는 지혜

01 더불어 사는 삶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삶은 아름다워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건강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친구와 돈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더군요. 알맹이가 빠져 있으면 의미가 없더군요. 그 알맹이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얼마 전 수십 년간 연락을 끊고 있었던 옛 상사를 찾아뵈었습니다. 산속에서 부부가 외로운 삶을 이어가시더군요. 시종일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자랑하고 계셨는데 제게는 왠지 공허함만이 가득 일렁이더군요.

“자신이 별로 하는 일은 없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하여 죄는 짓지 말고 살자”는 철학으로 버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자연에게 죄를 짓고 사는 많은 사람들에 비하여는 훌륭한 삶이 분명하지만 자신들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어쩐지 아름다움도, 향기도 덜했습니다.

삶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이 느낄 때도, 남들이 구경할 때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선문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도 결국은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하늘과 인간,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관계 속에서의 아름다움…….

『행복하게 일하는 법』(수선재)


잘 산다는 것, 잘 죽는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이며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기준 삼아 잘 살았다, 잘 죽었다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요?

누군가에게 잔뜩 폐를 끼치는 삶을 잘 산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좋지 않은 자취를 잔뜩 남기고 죽는 것을 잘 죽는 거라고 볼 수 없을 것이고요. 그런데 동식물, 무생물, 대자연, 어머니 지구와 대화해 보면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도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런데 인간이 지구의 주인 노릇을 하고 착취하면서 지구가 이렇게 파괴되었다.”

지구는 숨 쉬며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인데 인간들이 회복불능의 중병 상태로 몰고 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구성 요소일 뿐인데 그 점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지구의 만물(동식물, 무생물 포함)과 공존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존재는 생사를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불어 사는 삶이 잘 사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 때라야 잘 사는 삶, 보람 있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크게 사랑을 베풀고 죽는 것이 잘 죽는 거라고 볼 수 있고요. 본인의 자취를 만물의 마음속에 사랑으로 남기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구 환경에 쓰레기를 남기는 대신에요.


공동체 마을을 이루고자 하는 이유

수선재가 전하는 선서(仙書, 본성의 메시지)는 결국 잘 살고 잘 죽기 위한 의식의 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허나 의식만 향상되어서는 그 끝이 길지 않고 오히려 머리만 크고 사회 부적응의 불균형한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수선인들이 선서대로 실천하며 살지 못하고 말씀만 무성하게 된다면 결국 선서는 ‘전 세계의 강사와 작가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말의 강물을 조금 더 불어나게 하는 데 일조하는’ 공허한 일이 될 것입니다. 실천을 통해 하단과 중단과 상단을 고루 갖춘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을 알고 이해하며 공생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편리한 삶에 길들여진 가족과 주변의 반대와 도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수선재가 공동체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실천과 나눔의 장소가 필요해서입니다. 공동체 운영을 통해 앎을 몸으로 실천하고, 몸을 통해 삶을 바꾸는 실천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앞장 서 주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으므로 수선인들이 먼저 모델이 되자는 것입니다. ‘저 사람처럼 살고 싶다’, ‘그동안 물질문명에 가려 잃어버렸던 인간 본성을 찾으며 저 사람들처럼 공동체에서 오순도순 살고 싶다’ 하는 모델 말입니다. 우리가 먼저 모델이 되어 즐겁게 잘 사는 방법, 잘 죽는 방법을 알리자는 것입니다.


혈연이 아닌 이웃을 단위로

피를 나누지 않은 이웃과 더불어 행복해야 선(仙)인류라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마을은 혈연이 아닌 이웃으로 마을을 구성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핏줄을 중요시 하는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세계에서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내 자식은 끔찍하게 소중한데 남의 자식은 남의 일입니다. 식구끼리 화목한 가정일수록 배타적이고, 잘 사는 마을일수록 타지인이 발붙이기 어렵게 텃세가 심하더군요. 가정불화가 유난히 많은 것도 따지고 보면 결혼과 자녀에 대한 지나친 애정과 집착에서 오는 것입니다.

진화의 단위는 가족이 아니라 이웃입니다. 이웃이 점점 확대되어 세계가 되는 것이고요. 혈연이 아닌, 남녀가 아닌, 하단(의지) 중단(사랑) 상단(지혜)이 하나가 되어 ‘한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仙인류의 조합입니다.


조화로운 삶을 위한 수칙

공동체 마을에 입주하는 예비 선(仙)인류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수칙을 제안해 봅니다. 조화롭고 균형 잡힌 삶을 위한 수칙입니다.

1. 하루 4시간 이상 수련과 선서(仙書, 본성의 메시지) 숙독을 기본으로 합니다. 선계수련은 ‘호흡으로 시작하고, 호흡으로 겪어 넘기며, 호흡으로 마무리하는 명상법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본분을 지켜 ‘호흡이 만사’임을 체감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선서는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으로 필요한 것이고요.

2. 그 어떤 생업에도 하루 4시간 이상 투입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오래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하루 4시간 정도 열심히 일하면 될 일을 하루 종일 걸려 느슨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4시간을 집중해서 일한다면 그 어떤 일도 성취되리라 믿습니다.

3. 하루 4시간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한 취미생활을 합니다. 그것이 일이어도 좋고, 취미여도 좋지만 반드시 기쁨을 주는 일이어야 하지요. 자신을 가꾸고, 주변을 가꾸고, 이웃을 가꾸고, 기쁨을 나누는 일에 투자하기를 바랍니다.

4. 매일 일정한 시간을 자신이 맡은 일 이외의 자원봉사를 합니다. 예를 들어 영농 일을 맡았다고 하더라도 하루 한 시간 이상은 주방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을 말하지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듯이 타인의 입장에 서 보아야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선(仙)인류가 지향하는 전인(全人)은 이런 방식으로 도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5. 전 입주민이 참여하는 합창단을 결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기독교와 천주교의 확장에 음악이 기여하는 역할은 대단히 큽니다. 저도 경험했던 바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가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것이 심신의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를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합창은 조화와 화합, 균형이 필수여서 즐거운 공동생활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노래를 잘할 필요는 없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이렇게 하여 12시간을 쓰고, 남는 시간은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수련, 일, 취미, 자원봉사 중에서 자신이 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 더 투자하면 되는 것이고요.


자연과 교감하는 삶

시골에 집을 지으면서 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은 일이 있습니다. 집 앞에 나무들이 너무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서 시야를 다 가렸기 때문입니다.

다들 잘 옮겨졌는데 모과나무 한 그루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잎을 다 떨구고 말라죽은 형상을 하더군요. 그렇다고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시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심을 가져달라고요.

제가 관심을 갖고 대화를 하니까 ‘미리 얘기를 해줬어야 했다’고 하더군요. 옮겨심을 거라고 미리 얘기를 해줘야 자기네도 준비를 할 수 있다고요.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핀드혼 농장 이야기』라는 책을 보면 그곳 사람들이 자연과 대화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식물의 정령, 동물의 정령과 대화하고 그걸 농사에 적용하는 얘기입니다.

그냥 기술적으로 농사짓는 것과 사랑과 관심으로 대화하면서 농사짓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얘기하더군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열매가 맺혔다고 하고요. 황무지이고 비바람이 대단한 바닷가 마을이었는데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연이 원하는 바를 들어줬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자연은 자신을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에 대한 간절한 원(願)이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을 다룰 때는 관심을 갖고 대화하면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물을 캘 경우 그냥 캐기보다는 ‘내가 너를 캘게’, ‘너희들을 먹음으로써 너희들의 진화 사이클을 빠르게 해줄게’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꽃을 꺾을 때도 그냥 꺾기보다는 ‘내가 너를 꺾을게’, ‘방에 꽂아 놓고 향기를 맡으면서 즐거워할게’ 해주시고요. 흙을 다룰 때는 ‘나의 사랑을 받으면서 더 좋은 흙이 되어 다오’ 해주십시오.

풀의 입장에서는 ‘잡초’라는 것은 없습니다.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다 하고 쓰임새가 다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아직 그걸 모를 뿐입니다. 최근에 안개꽃에서 기존의 항암제의 몇 만 배의 효과가 있는 성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독초라고 하는 것조차 다 쓰임새가 있습니다. 이렇게 쓰면 독이 되고 저렇게 쓰면 약이 되는 것이지 애초에 ‘나는 독초다’라고 나온 것은 없습니다.

식물도 우리와 똑같이 귀한 생명체라는 것, 그러니 최소한의 배려는 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 채취하거나 필요에 의해 장소를 옮겨줄 경우 미리 얘기해 줘야 합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해 줘야 합니다.

『선인류의 삶과 수련1』(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