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잘 죽는 지혜

02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만약 여러분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사로부터 불치병에 걸렸다는 선고를 받았다면, 6개월 안에 죽는다는 선고를 받았다면,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 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입니다. 헌데 기적을 바라려면 하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왜 하늘을 감동시켜야 하는가? 나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은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보실 때는 ‘이 사람을 살리는 게 좋다, 아니면 죽게 놔두는 게 낫다’ 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무슨 기준인가 하면 ‘그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좋은가?

‘생명이라는 것이 무조건 오래 산다고 좋은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명(命)을 받은 다음에 그 영혼이 얼마나 진화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전성기에는 영이 상당히 진화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오히려 퇴화할 수도 있습니다. 영성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쪽으로 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화시키는 쪽으로 살고 또 주변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경우입니다. 이렇게 살았다면 그 한 번의 생은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마무리하고 갈 것인가?

그러므로 ‘벌써 기운이 쇠했다’, ‘아무래도 얼마 안남은 것 같다’ 하는 느낌이 오신다면,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개 보면 차마 그런 생각은 못하시더군요.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못하시는 것이지요. 아무리 병원에서 얘기를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설마 설마 하다가 결국은 죽음을 연습하지 못하고 허겁지겁 헐레벌떡 가게 됩니다.

공자님 말씀에 무지한 것 이상 범죄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생명에 대해서 무지하고, 죽음에 대해서 무지하고, 또 자신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막연하게 ‘어떻게 되겠지’, ‘하느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하는 무지입니다. 그러면 그냥 죽음으로 직행하게 됩니다.

잘 살아오지 못했다면 마무리라도 잘 해야 합니다. 마무리를 잘 하는 쪽으로 비우고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제가 ‘석 달 혹은 여섯 달이 남았다’ 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면, 저는 원 없이 수련을 했고 또 원 없이 하늘을 위해서 일했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정리를 하고 가고 싶어 할 것입니다. 벌여놓은 일을 정리하고,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할 것이지요.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수선재)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죽음을 준비하여 잘 죽기 위해서는, 영생으로 잘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누구로부터,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아는 것은 나를 알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해답입니다.

부모로부터 태어났다고 하여도 내가 부모님의 소유물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부모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나로부터 태어난 자식도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내가 부모님의 것이 아니고 내 자식이 나의 것이 아님은 그 사실만으로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주고받은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이러할진대 부부끼리 서로의 소유물로 착각하여 지나친 간섭을 하는 것은 미숙한 인간들의 횡포입니다.

하물며 나 자신조차도 나의 인생을 내 마음대로 이끌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이 아니며, 늙고 싶어 늙는 것이 아니고, 병들고 싶어 병드는 것이 아니며, 죽고 싶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것이고 부모의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이거나 부모의 마음대로 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도, 부모도 알 수 없는 어떤 섭리에 의하여 내 인생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내 것이라면 오늘 일과 내일 일 정도는 알아야 하는데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전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내 것이 아님은 분명한 것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나뿐아니라 인간은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왜 왔을까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하늘 어딘가에 영혼이 씨앗으로 존재하고 있다가, 조물주님으로부터, 조물주님을 도와 우주의 창조목적인 우주 전체의 진화를 주도하기 위해, 우주의 법칙에 따라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조물주님이 정해놓은 우주의 법칙 중 인간 창조의 법칙과, 각 인간의 진화의 사이클에 따라 그 인간의 금생의 스케줄이 프로그램 된 룰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각 개인의 스케줄이 프로그램 된 장부를 명부(命簿)라고 하며, 스케줄은 그 인간의 인과응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요.

인간은 지구에 태어날 때는 자신의 의지가 5% 정도, 하늘의 뜻이 95% 정도 주어지다가 진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비율이 바뀌어서 끝내는 95%의 자유의지대로 자신의 명을 이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 진화의 법칙입니다.


삶은 꽃, 죽음은 씨앗

인간은 진화의 정도에 따라 단순한 명(命)또는 사명이나 소명, 역할을 부여받아 학교인 지구에 나옵니다. 즉 태어나면서 공부할 양과 역할에 따라 수명을 부여받고 나오지요.

정해진 기간 안에 자신이 해야 할 공부나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수련에 드는 인간들은 모든 것이 수련 안에서 진행되므로 변수가 많지 않으나 수련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인간들은 보호나 인도를 받지 못하여 뒤죽박죽 살다가 허둥지둥 가게 됩니다.

삶은 영생을 위한 준비기간으로서 필요한 것입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남듯이 삶은 꽃이고, 죽음은 씨앗으로 남아 하늘 어딘가에 보관되는 것이지요. 보관되는 곳은 삶 동안의 결과를 보아 정해집니다. 진화의 수준에 따라 선인(仙人, 깨달음을 이루어 우주의 일부가 된 이)이나 영체, 기인, 영인이 되는 것입니다.


잠깐의 인생이 영생을 가름한다

그러므로 ‘잘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맞는 것입니다. 인생은 잠깐인데, 그 잠깐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영생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7~80 평생이 영생을 판가름합니다.

사법고시를 본다 했을 때 그 시험 결과에 따라 평생 그 사람이 판사가 되느냐 못되느냐가 결정되지만, 시험 보는 기간은 하루 이틀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지구에 태어난 우리들은 10년을 살든 20년을 살든 60년을 살든, 그것은 시험장에서의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특히 수련하러 오신 분들은 여기 입학해서부터가 시험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법』(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