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는 나의 선생님

02 갈등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배우자는 나의 선생님

배우자는 공부의 교재로서 참 중요합니다. 내가 배워야 할 부분이 반드시 상대에게 있습니다. 그 부분이 반드시 긍정적인 면이지는 않습니다. 배우자는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인데 그 부족한 면이 반드시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지요.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중용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에게 과도하게 치우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선(善)일지라도 치우친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극악(極惡)의 상대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배우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배우자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배우자가 모든 걸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지는 마십시오. 배우거나 취할 점이 크게 한 가지만 있으면 나머지는 보지 않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저도 상당히 극선(極善) 쪽으로 치우친 사람이었는데 남편과 결혼하면서 중용을 알게 됐습니다. 제 친정 집안은 굉장히 학구적이고 고상한 분위기였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식사 시간에 정치 얘기, 종교 얘기를 할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서 서민적인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술 많이 마시고 향락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과 결혼한 후에는 가깝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소위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하는 삶의 형태에 애정을 갖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죄를 짓는 사람들을 보면 별개의 인간, 나쁜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환경이나 이런저런 요인에 의해 그렇게 되었을 뿐이지 사람은 다 같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여간에 ‘배우자는 나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한 걸음만 낮아져서 보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기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것은 대등하게 보려고 하거나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려 할 때입니다.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는 이유

성격이 아주 강렬한 사람들이 부부로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의 성격이 센데 여자는 더 세서 “부인한테 쥐여 산다”는 분이 꽤 계시더군요.

그런데 서로 센 부분이 다릅니다. 부인이 자녀 문제에 굉장히 양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남편은 경제적인 문제에 굉장히 집착한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다른 부분에는 아주 너그러운데 그 부분에는 아주 완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자가 강하다’라고 느끼신다면 자신은 더 강하다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서로 완강한 분야가 다를 뿐입니다.

결국 배우자와 갈등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본인에게 만만치 않은 성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이지요. 그렇게 강한 사람과 살아낸다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어느 누구와도 무난하게 지낼 수 있는 지혜가 생길 것입니다. 그 집단의 온갖 사람과 부딪힘 없이 잘 조화할 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성격상의 지장이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대로 배우자와 계속 문제가 불거지거나, 주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저 사람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백안시한다면, 자신에게 치우친 어떤 면이 있는 것입니다.


갈등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갈등은 대개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 생깁니다.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나는 피해자다, 생각하면서 거부하고 밀어낼 때 갈등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가만히 있다가 벼락을 맞은 듯한 마음을 갖는 한, 갈등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내 책임이고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이상한 사람이 있어서 나를 괴롭히는가?”라고 피해자로서 생각하시는데 따지고 보면 원인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신이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밖으로 돈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자신에게 있습니다.‘남편이 없으면 내가 좀 홀가분해지겠다’라든가 ‘그 시간에 뭔가 다른 일을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발을 못 붙이게 하는 마음 상태인데다가, 그런 마음을 은연중에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그걸 알아채기가 참 어렵더군요.

제가 예전에 여성개발원에 다닐 때 보면 잘난 여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헌데 부부생활에 문제가 많더군요. 입으로는 여성해방을 부르짖는데 실제로 사는 모습은 여성해방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중적으로 사는 것인데 살펴보면 본인에게 원인이 있었습니다.

남편 대접을 잘 안 하더군요. 남편이 직장에서 퇴근하면 피곤하니까 집에 와서 쉬고 싶잖습니까? 그런데 ‘나도 직장에 다니니까 피곤한 건 마찬가지다’ 생각하면서 남편이 들어와도 일어나지도 않더군요. 누워서 “왔어? 냉장고에서 먹을 것 꺼내 먹어” 하고선 잡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상담을 해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남편이 들어오면 일어나지도 않지요?” 물어보면 그렇다고 합니다. 집에 가면 내가 대접받지 못한다, 무시당한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서너 번 거듭되다 보면 자연히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간파해서 들어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쪽으로 안 움직이고,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움직이면 불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환경은 자기 마음의 표현

“환경은 자기 마음의 표현이다”라는 말씀을 종종 드렸습니다. 모든 건 자기 할 탓이고 마음먹을 탓입니다. 지금 자기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환경이 변합니다.

부부간의 불신도 그렇습니다. 드러내어 표현은 안 할지라도 한두 번 배신당한 일이 있었거나 믿지 못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불신이 쌓인 것입니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상대방이 내가 하는 일을 극도로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40세 정도 되었는데 배우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반대한다면 그만큼 잘못 살아 왔다는 얘기입니다.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건 상대방 탓이 아니라 본인 탓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의부증, 의처증 환자들도 다 원인이 있습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어떤 불씨가 있었기 때문에 그게 확대되어 그런 병이 온 것입니다. 물증이 없으면 심증이라도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결국 본인이 진심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본인이 진심으로 달라지면 상대방이 달라집니다. 원인은 항상 본인에게 있습니다.

우리 회원님들 중에도 이혼 직전까지 갔다가 진심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관계가 좋아진 분들이 계십니다. “환경은 자기 마음의 표현이라 하셨는데 정말 그렇더군요”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자기 마음의 중심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환경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자기 가족에게 “내가 명상을 1년, 2년, 3년 해서 이만큼 달라졌다” 하고 보여주는 게 수업료를 내는 것입니다. 변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너는 그래라, 나는 이렇게 하련다” 하면 계속 가망이 없는 것이고요.

저도 가족들에게 불신을 심어줘서 처음 4~5년간은 어려운 환경에서 명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전부 제 탓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내게 그런 것을 바라는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가 변하지 않은 게 주원인이더군요.

명상을 하노라고 했는데 몸이 그렇게 좋아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음이 부드러워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명상을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쌓여서 더 날카로워지기만 했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그걸 깨닫고서 변하려는 노력을 했고, 또 올바른 수련의 길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변한 모습을 보고 그때서야 고개를 숙이고 도와주더군요. 이렇게 제 자신이 너무나 절실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자신이 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먼저 자신이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배우자가 따라올 것입니다.

『사랑의 상처를 달래는 법』(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