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사랑으로 가는 길

02 외로우면 하늘을 보라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엊그제 제가 어느 젊은 분에게 “외롭지 않아?”라고 물으니까, “외로움이요?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런데 그분이 정말 외로움을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지 모르는 척할 뿐일것입니다. 또 미처 외로움을 인식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해왔을 것입니다. 외로워지려 하면 컴퓨터 오락하고, 외로워지려 하면 기타 치며 노래 부르고, 외로워지려 하면 문자 메시지 보내고……. 그러니 외로울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외로움에 도달을 잘 하지 않습니다. 외로움을 못 견디기 때문에 미친 듯이 일을 하거나 미친 듯이 사람을 만나서 외로움을 피합니다. 외로움이라는 정체모를 감정이 오는 것 같으면 벌써 불안감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겁니다. 술을 마신다거나, 담배를 피운다거나, 대화를 나눈다거나 하면서 자신을 마비시킵니다.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행동들에 빠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외롭게 태어난 존재

외로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문제입니다. 외로움을 잊고 싶어서 일에 몰두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사랑을 합니다. 인간이 계속 죄를 짓고 방황하는 것도 어찌 보면 외로움 때문입니다. 범죄, 마약, 불륜……, 이 모든 것들이 외로움을 잊어 보고자 하는 몸부림인 것입니다.

그럼 인간은 왜 외로운가? 원래부터 외롭게 태어났습니다. 원래부터 불완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외롭고, 본성을 잃어버린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외롭습니다. 가지고 태어나야 할 것을 못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또 여자, 남자, 이렇게 반쪽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외롭습니다. 양성이 함께 있는 중화된 존재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분리 되었으니까 외로운 것입니다.


외로움이 해소될 수 있는가?

그럼 그 외로움이 해소될 수 있는가? 안 됩니다. 해소된다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아예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외로움이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은 본성의 언어입니다. 태고 적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 순간에 외로움, 그리움, 서러움을 뿌리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너무 오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순간 잊어버릴 수는 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선인이 되면 외로움에서 벗어나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면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외로우면 외로운 채로 살아가는 법을 알고, 그리우면 그리운 채로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입니다. 별짓을 다해도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벗어나려고 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해결 나는 겁니다.

어느 교수가 말하기를, 캠퍼스 커플이 있었답니다. 매일 붙어 다니는데 자기 강의에 들어와서도 둘이 붙어 앉아 속닥속닥 얘기를 하더랍니다. 하도 그래서 주의를 줬더니 남학생이 “외로워서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 교수 왈 “그래도 외로워―.” 그러고는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는데 그 말이 맞습니다. 사실 그래도 외롭거든요.

우리는 경험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작가에게는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도, 슬픔도, 실연도 버릴 것 없이 다 자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밑천 삼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빠지지는 말아야 합니다.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있으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빠지면 뒤죽박죽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되고, 깨어 있으면 모든 경험을 다 받아들여 재산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경험들이 오히려 더 좋은 비료가 되는 것이지요.

빠지지 말고 바라볼 수 있을 때 해결이 난다는 것……. 이래도 외롭고 저래도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면 됩니다.


외로움은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다리

저도 예전에는 외롭다는 타령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수련하다가도 외롭다고 한탄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제 스승님은 “외로워서 안됐다”고 위로해주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반기시더군요. “외로우면 하늘을 보아라”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하늘을 계속 보다가 닿은 것입니다.

외로움은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다리입니다. 외로움 때문에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외로움을 벗 삼아 수련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사실 외로움을 해결할 방법은 수련밖에는 없습니다. 다르게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일에 빠져 있는 사람, 술이나 담배에 빠져 있는 사람, 아이에게 빠져 있는 사람, 배우자에게 빠져 있는 사람……. 외로움을 잊으려고 그러는 건데 순간적으로는 해소가 되어도 완전히 해소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외로움은 축복이다”라고 생각하시면서 하늘을 보십시오. 계속 하늘을 보면 길이 닿습니다.


하늘이 대신 그만큼 사랑해주신다

제 경우 늘 짝이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습니다. 진짜로 짝이 없다기보다는 제 곁에 부성(父性)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없지, 오빠가 없지, 남편이 있긴 하지만 기댈 수가 없지……. 제 남편은 나이도 저보다 대여섯 살이 많아서 처음에는 제가 기대려 했는데, 결혼 후에는 오히려 저에게 기대더군요. 그렇게 누군가에게 기대는 게 안돼서 항상 부성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간이 사랑해주지 않으면 하늘이 대신 그만큼 사랑해주신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하늘이 그 몫을 채워주시는데 왜 자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가?”라는 말씀이셨지요.

그때만 해도 제가 차원이 낮아서 직접적이고 만질 수 있는 상대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안 보이고 거룩한 상대는 감히 바라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반드시 그만큼 더 사랑해주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남자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하늘이 사랑해주신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몫을 하늘이 사랑해주신다, 그러니까 짝이 없다고 너무 애석해 하지 마라, 하늘을 쳐다보면 된다…….

그리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별 볼일 없는 분일수록 하늘은 더 어여삐 여기시더군요. 그것이 하늘의 법도입니다. 인간이 사랑하지 않으면 하늘이 사랑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사랑을 받으시겠습니까?

우리가 금생에 태어난 목적은 더 이상 업을 만들지 않고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남녀관계라는 것은 업을 해소하기보다는 만들기가 더 쉽더군요. 또 사랑으로 인한 업은 갚기가 참 어렵습니다. 만남이란 그만큼의 대가가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만난 기간이 10년이면 헤어지는 데도 10년이 걸린다는 말씀을 늘 드리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 하면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나는 지금까지의 업만으로도 벅차다, 감당하기 어렵다” 싶으시면 과감히 접으십시오.

지금은 생이 굉장히 길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한 호흡입니다. 들이쉬는 호흡도 아니어서 날숨 한 번입니다. 인생이란 숨 한번 크게 내쉬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하지 말고, 충분히 다 내보내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가시면 어떨까요?

『사랑의 상처를 달래는 법』(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