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스리는 지혜

04 무심으로 대하기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감정 이입하지 마라

항상 일은 하시되 감정을 이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일할 때 지치는 건 감정 때문에 지치는 것이지 일 자체 때문은 아닙니다. 일은 그냥 머리 쓰면서 하면 되는데 거기다가 감정을 계속 이입하면서 하니까 피곤하고 지치는 것입니다.

아는 한의사가 있는데 하루에 백 명 이상 진맥하고 약 짓고 해도 저녁에 만나면 쌩쌩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물어봤더니 “나는 무심(無心)으로 한다”고 하더군요. 환자를 볼 때 여자인지 남자인지, 돈이 많은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얼굴 생김은 어떤지 등 잡다한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환자로만 본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렇게 하면 되겠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하면 되겠다, 쉽게 판단이 되더랍니다.

왜 지치고 피곤한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삐칠까, 저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일까, 비싼 약 지으라고 하면 화낼까, 이러면서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피곤해서 못합니다. 열 명만 상대하면 그냥 나가떨어집니다.

일하실 때 사물을 그 자체로만 보십시오. 자신과 관련시켜 보지 마시고요. 그렇게 하면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고 적은 에너지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왜 지치는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뒤죽박죽인데 거기에 또 감정이 들어가서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생각만 하고 가슴은 느끼기만 하고, 그렇게 서로 섞지 마십시오.

거래처 사람과 마찰이 생기거나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들으면 화가 나고 부당하게 느껴지는데 그럴 때도 그냥 무심으로 드십시오. 거기에 감정 섞어 가며 같이 얘기하면 더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상대방의 말을 들어 주면서 “그럴 수도 있다”고 공감해 주고, 또 이쪽 입장도 얘기하면서 타협점을 찾아 나가면 화가 안 납니다.

사실 일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괜히 옆 사람에게 신경 쓰고 일에 감정을 이입하느라 지치고 피곤한 것입니다. 사회생활은 하되 느낌을 갖지 않는 자세, 행여 가져도 이내 잊어버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걸 무심이라고 하나요?

아무 생각도 없는 게 무심이 아니라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걸 무심이라고 합니다. ‘내가 했다, 내가 칭찬과 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러지 않고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인데 내가 그 역할을 할 뿐이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우주의 구성원으로서 우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일하면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상대에게 다 전달이 되니까요.

허준 선인의 경지가 그러했습니다. 그냥 무심으로 열심히 환자를 치료하셨습니다. 병을 고쳐야겠다, 환자를 살려야겠다, 이 생각밖에 없으셨지요. 자기가 의사라는 걸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없으셨고요.

그러니까 높은 사람이 불러도 안 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환자로만 보고 병으로만 보셨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이 돈을 낼 것인가 안 낼 것인가? 내게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가? 이런 마음이 없는 경지에서 일하셨던 겁니다.


안 알아주면 어떤가?

왜 자꾸 감정이 이입되는가? 왜 자꾸 기분이 나빠지고 부부간에도 어쩌고저쩌고 싸우는 일이 많은가?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를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나를 알아 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데 상대방이 안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나를 알아 달라. 내가 이렇게 재주가 많고, 일 잘하고, 머리가 좋고, 아는 게 많고, 가진 게 많고, 통이 크고……, 단지 그런 걸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니까 말로 이야기하고, 몸으로 이야기하고, 온갖 걸 동원해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알아주면 어떤가요? 내가 나를 알아주면 되고, 하늘이 나를 알아주면 되는 것 아닌가요? 왜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나를 인정해 줘야 하나요?

스스로 자신을 인정할 수 없을 때, 자신감이 없을 때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스스로 짱짱하면 “나 어떠냐? 잘하냐?” 안 물어봅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는 남의 인정이 필요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바라볼 때 뭔가 꿀리고 만족하지 못할 때 주위 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 굳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마시고, 내가 스스로 나를 인정할 수 있도록 갖추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옆에서 누가 알아 달라고 하면 그냥 “잘한다”고 한마디 해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냥 알아주면 되는데 굳이 ‘안 알아주겠다’ 할 건 뭐 있습니까? 그냥 한마디 해주면 되는데요.

물론 매일같이 “잘한다, 잘한다”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사흘이 멀다 하고 알아 달라고 하면 그것도 피곤한 일입니다. 부부간에도 매일같이 “나 사랑해?” 하고 물으면 지치고 싫증나잖아요? 가끔, 한 달에 한 번 정도 “참 잘한다, 참 괜찮은 사람이다” 말해주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