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기술

02 맞춰주면 된다

* 수선재의 명상 선생님인 문화영님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하신 말씀을 기록한 글입니다.

시소 타듯 맞춰주면 된다

대인관계는 시소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시소 탈 때 유능한 사람은 항상 상대방에 맞춰줍니다. 상대가 무거운 사람이면 자기가 조금 뒤로 앉아 무게를 맞춰주고, 상대가 가벼운 사람이면 앞으로 나와서 앉습니다. 자기를 먼저 내세우고 고집하면서 “나를 따르라” 하지 않고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 보다가 반응해 주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과 문제가 생기는 것은 명상하시는 분들에게는 화두입니다. 그런 문제가 왜 왔는지 생각해 보시고, 내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분별하시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해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내가 하는 일에 우호적이지 않고 빈정거리는 게 고민이라면 한번 원인을 분석해 보십시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인이 본인에게 있음을 알게 될 겁니다. 본인이 무턱대고 밀고 나갔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면에서 불신을 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원인을 찾아내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현재 자신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 냉철하게 판단해 보시고요. 그러고 나서 해결책을 만들어 개선해 나가시면 됩니다.


어루만져 주는 마음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해보면 그 애로사항이 별것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계속 앵앵거리며 불만을 얘기하는데, 살펴보면 별것 아닌 게 눈덩이처럼 커져서 그러는 것입니다. 딱 끄집어내서 해결해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질 일인데 그걸 못해준 것이지요.

명상을 하다 보면 열쇠 구멍이 보입니다. 자물쇠를 끄르는 게 열쇠잖습니까? ‘저 사람을 내가 열어주려면 어디를 어떻게 열면 되겠구나’ 하고 열쇠 구멍이 보이는 것입니다. 열쇠 구멍이 여기 있는데 다른 데를 아무리 열려고 해봤자 안 열리지요.

열쇠 구멍이 보이면 헛발질을 안 합니다. 단번에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압니다. 그걸 열어주면 쉽게 해결 나는 일인데 못 열어주고 딴 데 가서 막 헤쳐 놓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앙심을 품고 저지르는 살인 같은 큰일도 시발은 간단합니다. 대개 무시당했다, 저 사람이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다, 했을 때도 그 이유는 대개 간단한 걸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원하는 바를 들어주십시오. 가까운 사람의 소원 하나 못 들어줘서야 뭘 하겠는지요? 그런 야박하고 초라한 마음으로 무슨 명상을 하겠는지요? 주변 사람을 보면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 약점이 많이 보일 것입니다. 그걸 다 감싸주는 눈이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저기가 아프구나, 이렇게 보는 눈이어야 합니다. 단점을 드러내는 부분이 사실은 다 아픈 부분입니다. 피 흘리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걸 헤쳐 놓으면 어떡하겠다는 것인가?

명상하시는 분들은 상처를 어루만져 줘야 합니다. 이 사람은 이 부분을 굉장히 아파하는구나, 그렇게 치료해 주면서 가는 것이 명상하시는 분의 마음자세입니다. 항상 돈이나 물질보다는 말 한마디, 마음 한 조각 써주는 것에 크게 은혜를 입고 감동하고 힘을 얻는 것입니다. 어루만져 주는 마음으로 대하면 이심전심으로 그 마음을 압니다.

약점을 끄집어내어 고쳐주겠다, 하면 그건 덕이 아닐뿐더러 고쳐주지도 못합니다. 자기 약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약점을 모른다면 그건 바보 천치입니다. 그걸 왜 내가 굳이 알려주려고 하는가? 지금은 모르더라도 일을 저질러 놓고 며칠 있으면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압니다. 그런데 왜 내가 굳이 알려줘야 하는가?

살인을 하고 붙잡혀서 재판을 받을 때 최후 진술을 하잖습니까? 그때 “나는 할 일을 했다, 죽일 사람을 죽였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 당시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압니다. 그러니 다 감싸주고 덮어주면서 가 주십시오.


할 수 있는 일, 할 수 없는 일

누구를 바꿔 놓겠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저 사람을 어떻게 해보겠다, 내 마음대로 해 보겠다, 그런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어떻게 조절할 수 있어도 큰 수확입니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하지 않나요? 유행가 가사처럼 “내 마음 나도 몰라” 이러지 않나요? 하물며 남의 마음을 움직여보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인 것입니다.

남의 마음은 남의 소관입니다. 절대 내 소관이 아닙니다. 남의 마음에 관한 부분은 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에 관한 부분만 처리하면 됩니다. 그러면 벌써 반이 줄어듭니다. 자기 힘으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되는 일은 자기 혼자만의 일입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나 자기 자신을 상대하는 일은 자기 마음대로 됩니다. 반면 타인과의 관계는 자기 마음대로 안 됩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하되 할 수 없는 일은 그냥 포기해야 합니다. 계속 붙들고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납니다. 판단을 빨리 해서 할 수 없는 일이면 제쳐 놓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걸 아무리 해봐야 힘만 들고 되지도 않습니다. 남의 마음을 돌려보겠다, 버릇을 고쳐주겠다, 하는 것은 아주 부질없는 소모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 명상을 하겠다, 술을 안 먹겠다, 하는 것은 자기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그런 것도 잘 못하지 않나요? 그런데 왜 남의 일까지 참견을 하나요?


사람은 감동을 받아야 변한다

사람은 감동을 받지 않으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을 변화시키려면 감동을 시켜야 합니다. 감동을 시키면 서서히 마음이 열리면서 변하는데 감동을 안 시키면서 ‘저 사람을 어떻게 해보겠다’ 하면 엄청난 에너지만 소모될 뿐입니다.

감동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변하면 됩니다. 말은 그저 가볍게 한마디 던져 보는 것이고 자신이 변해야 따라옵니다. 자신이 변해서 감동을 주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말로 제압한다고 해서 감동을 받지는 않습니다. 저 사람이 지식이 많아서 나를 완전히 제압한다 해서 감동을 받지는 않는 것입니다. 감탄은 합니다. ‘아, 많이 아는구나!’ 하고 입은 벌립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마음을 울려 주는 것은 다른 부분입니다. 몸에서 풍겨 나오는 분위기라든가 태도라든가 하는 감성적인 부분입니다. 다들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맑다, 부드럽다, 친절하다, 이런 것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식으로는 설득은 할 수 있어도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중단을 움직이는 것은 지식이 결코 아닙니다.

엊그제 은행에 갔는데 은행 창구에 직원이 없어서 조금 기다렸습니다. 옆 창구에 있던 직원이 와서 응대를 해주는데 계속 웃더군요. 웃음으로 시작하더군요. 제가 질문을 많이 했는데 바쁜 와중에서도 웃음으로 응해 줍니다. 상당히 인상적이었지요. 명상도 안 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는가? 꾸민 것도 아닙니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닌데 미소로 그렇게 합니다. 그런 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직장 다닐 때 동료 한 분이 상당히 상냥했습니다. 제가 그분에게 부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가장 부러운 점이 상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박사이고 많이 갖췄는데도 “네, 선생님” 하는 게 입에 딱 배어 있었습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동료이거나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그렇게 합니다.

보통 “네, 선생님”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부한다거나, 아니꼽다거나, 치사하다거나, 이런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그 소리가 굉장히 듣기 좋더군요. 아주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나중에 국내 박사였는데도 국립대 교수로 가게 됐습니다. 제가, 그렇게 된 이유는 “네, 선생님” 때문일 거라고 했습니다. 그게 너무나 인상적이었니까요.

『행복하게 일하는 법』(수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