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대답들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아님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이 김삼순에서 김선희로 바뀌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가? 내가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가? 내가 100억 자산을 잃고 나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나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름이니 직업이니 자산이니 하는 것들은 나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난 그런 복잡한 거 몰라. 나는 그냥 나야!”
허나 곰곰이 따져 보면 이 대답에는 ‘몸이 나’라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몸이라는 실체가 있는데 왜 굳이 복잡하게 뭔가를 생각해야 하느냐는 반문이지요.
그러나 이 대답 또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답은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얼굴에 몇 킬로그램의 몸무게에 몇 센티미터의 키가 나인가? 만일 내가 온몸에 화상을 입거나 사고로 어떤 장애를 갖게 된다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는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몸 또한 나의 본질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름과 직업과 역할이 내가 아니라면, 육체 또한 내가 아니라면 나는 대체 무엇일까요?
나는 육체이기 이전에 ‘영혼’입니다. 우리 인간은 경험을 통해 배우기 위해 지구에 내려온 ‘영혼들’입니다. 몸은 영혼이 잠시 입었다가 벗는 옷과 같으며 영혼이 곧 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썩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뿐인가?
임사체험자들의 얘기는 사뭇 다릅니다.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음 너머의 세계를 엿본 신비스러운 체험을 의미하는데, 임사체험자들은 공통적으로 유체이탈, 눈부신 빛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체험, 최근 죽은 친지나 지인들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는 체험,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복습(life review) 체험을 했다고 얘기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하고 온 것입니다.
회의적인 과학자들은 뇌에 산소가 결핍되어 발생하는 환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허나 환각과 임사체험이 전혀 별개의 현상임을 입증하는 증거는 많으며, 임사체험자의 숫자도 많아서 1982년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중 약 800만 명이 임사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명상 수련가들이 고도의 명상수련을 통해 확인한 사후세계는 더욱 놀랍습니다. 사후세계가 수천만 단계로 나뉘어 있다고 말합니다. 오랜 세월 의식이 없이 동면하는 세계가 있는가 하면, 서로 사랑하고 진리를 공부하며 사는 세계도 있다고 합니다. 우주의 일원이 되어 크나큰 역할을 수행하며 사는 세계도 있다고 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탄생입니다. 꽃이 지면 열매가 남듯이 삶은 꽃이고, 죽음은 씨앗으로 남아 하늘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보관되는 곳은 삶 동안의 결과를 보아 정해집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어디로 가느냐를 결정하는 잣대는 기운입니다. 기운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인간의 영혼이며 그 기운은 숨길수도 감출수도 없이 그대로 표현됩니다. 기운의 맑음, 밝음, 따뜻함으로 한 인간의 격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기운이 가벼워져야만, 즉 기운이 맑고 밝고 따뜻해야만 영혼은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짐이 없을수록 높이, 멀리 갈 수 있으니까요.
기운이 맑고, 밝고, 따뜻하려면 마음이 비워져야 합니다. 마음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기적인 욕망들과 이런저런 감정들을 비우고 우주 본래의 상태인 사랑과 기쁨으로 채워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순서는 물질을 비우고, 감정을 비우며, 생각을 비우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물질이 몸을 지배하고, 몸이 감정을 지배하며,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물질의 비움은 본래 왔던 상태대로 씨앗인 영(靈) 하나만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며, 감정은 희노애락애오욕을 죽는 순간까지 몽땅 버리고 가는 것이고, 생각의 비움은 본성으로 회귀한다는 근본 하나만 잊지 않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목적지는 알아야 여행이 즐거울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빚을 지는 일입니다. 공기, 물, 음식, 땅…, 가장 소중한 것들은 거저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죽는데 공기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물을 못 먹으면 죽는데 물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밥을 못 먹으면 굶어죽는데 벼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돈을 내고 쌀을 사먹지만 그것은 농부나 상인에게 지불하는 것이지 대자연에게 지불하는 건 아닙니다.
자연 뿐 아니라 사회에도 빚을 졌습니다. 농부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밥을 먹고 살 수 있었고 옷이나 집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마련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우주에 빚을 졌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우주의 크나큰 선물로 세상에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거저 창조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빈손으로 태어나서 이만큼 성장하고, 누리고, 혜택을 받았으면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는지요? 자원봉사나 환경보호는 내가 잘 나서 뭔가 베푸는 활동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저 받은 것의 천만분의 일이라도 돌려주기 위해 하는 노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