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삶이 달라집니다. 사는 것과 살아지는 것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의사가 개입된 적극적인 행동이고, ‘살아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삶이 달라지는가? 첫 번째로 앎이 생깁니다. 우선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뭘 하던 사람인지, 뭘 해야 하는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이런 자신에 관한 정보를 알게 됩니다. 자신이 떠나온 곳이 어디인지, 지금 어떤 시점에 있는지, 앞으로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됩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탈하지 않게 됩니다.
항해를 할 때 떠나온 곳과 갈 곳이 분명하면 표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분명치 않을 때는 망망대해에 떠서 표류하다가 좌초하게 되고요. 이 경우 사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세상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보통 사람들은 세상공부를 굉장히 밑천을 많이 들여 합니다.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가면서 어렵게 세상공부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세상을 다 아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겉모습은 알 수 있을지언정 어떤 원리와 구조에 의해 돌아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우주의 일원이라는 앎이 생깁니다. 내가 우주의 일원으로서 산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의식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이렇게 세 가지를 알면 그때는 도리를 알게 됩니다. 인간의 도리, 세상의 도리, 우주의 도리를 알게 됩니다. 그 도리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도리와는 달라서 따로 습득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깨달으면 사랑이 생깁니다. 이때의 사랑은 우주의 사랑입니다. 『선계에 가고 싶다』를 보면 우주의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요. 너와 내가 하나라는 것, 같은 운명체라는 것, 같은 나무의 같은 뿌리에서 나온 열매라는 것을 알 때 진정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사랑이 나옵니다. 바로 우주의 사랑이지요.
그걸 모를 때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정(情)이라고 부릅니다. 정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사랑은 승화된 감정입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됩니다.
세 번째로 깨달으면 자신이 아는 것, 사랑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됩니다. 아는 데 그치지 않고, 또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알고 사랑하는 것을 끝내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단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데, 일단 깨닫고 나면 다시 아래로 내려갑니다. 상단에서 앎이 시작되어, 중단에서 사랑이 싹트고, 다시 하단의 의지로써 자신의 사명을 이뤄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삶과는 다른 것입니다.
제 경우 수련하기 전에는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영문을 몰랐습니다. 남편이 왜 저러는지, 애들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계속 어떤 행동을 하는데 왜 그러는지를 몰랐습니다. 본인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까 답답함의 연속이었지요.
나중에 꿰뚫고 보니까 다 필요해서 그러는 것이더군요. 자기 공부에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고, 스케줄에 의해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렇게 되면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다’ 하는 것을 아니까 답답함이 없어졌습니다. 모든 걸 다 알게 되니까 답답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사후세계가 있는지 선계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영(靈)이 가 계신 곳을 알기에 뵙고 싶으면 뵙고, 대화하고 싶으면 대화하고, 때로는 먼발치에서 보고 옵니다. 내 눈으로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선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선인들과 만나서 대화합니다. 선계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는데 수시로 선계에 가서 보고 옵니다.
언젠가 어느 분이 왜 깨달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시더군요. 저도 수련하면서 꼭 깨달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대충 보통 사람으로 살면 되지 왜 깨달아야 하나?’ 하고요. 그런데 공부를 하고 보니까 깨달음이란 게 특별한 게 아니더군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평상심(平常心)이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끊임없이 시달리고 불행해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지요. 깨닫는다는 것은 이렇게 시달리는 데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근본적으로 편안해집니다.
편안함을 얻은 다음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동안은 소모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들었다면 이제는 창조하기 위해, 즐겁게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두 배움의 일환으로서 나를 좀 더 완성시키는 쪽으로 바뀝니다.
제가 수련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찾아낸 것 하나는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였습니다.
우선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지 않게 됐습니다. 그냥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인간에게 외로움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씀드린 바 있는데 수련하기 전에는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별짓을 다 합니다. 외로움이 엄습해 오면 영화도 보러 갔다가 책도 봤다가 친구에게 전화도 걸었다가 하면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수련을 계속하다 보면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별 지장 없이 살아집니다.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외로운 존재니까요. 외롭지만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외로움 때문에 다른 걸 하려고 하지 않고 견뎌내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부부간에도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남편은 남편, 나는 나’ 이렇게 됩니다. 배우자가 무슨 일을 하든 영향을 받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술을 많이 마시고 연락도 없이 외박을 했다면 보통 여자 같으면 아마 못 견딜 겁니다.
하지만 수련을 하여 무심이 되면 그 사람의 어떤 행동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건 그 사람의 일이고 나의 일은 따로 있고 이렇게 분리가 됩니다.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으나 그것이 나를 흔들어 놓지는 못합니다.
금촉을 해서 성욕을 벗으면 굉장히 자유로워집니다. 남에게 필요한 것, 바라는 것, 기대하는 바가 있을 때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이 없어지면 그때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자유로워지면 얼마나 편안한지 모릅니다. 이른바 대자유인데 그 자유가 어디서 얻어지는가 하면 기본적으로 성욕으로부터입니다. 성욕을 넘지 못하면 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짜 벗어나면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누굴 봐도 아무 생각이 안 날 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안 납니다. 그게 금촉으로도 되지만 기운을 계속 보충하는 방법으로도 됩니다. 두 가지 방법을 다 씁니다. 금촉을 하면서 금해 보고 기운을 받아서 충만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찾지 않게 됩니다.
그때의 성은 전에 가졌던 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끄달리지 않게 된다는 것, 자유로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요.
남녀가 서로 끌리는 것은 기적으로 필요해서입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부족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면 끌리고, 영적으로도 자신에게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으면 끌립니다. 완전해지기 위해 끌리는 것인데 사람에게 끌리다 보면 수련이 안 됩니다. 사람한테서 찾으려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팔문원에서 직접 찾으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기도 찾고 영도 찾고 다 찾으십시오. 팔문원의 기운은 완전히 중화된 우주기이므로 계속 받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기운이 중화되어 기적으로 필요한 게 없어집니다.
필요한 게 없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아십니까? 수련을 왜 하는가 하면 필요한 게 없어지기 위해서입니다. 남에게서 필요한 것도 없고 바깥에서 찾을 것도 없습니다. 그게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자유로워집니다.
수련의 경지가 높아지면 눈과 귀가 열립니다. 눈이 열린다는 것은 진리를 알아보는 눈이 열린다는 뜻이고, 귀가 열린다는 것은 진리를 알아듣는 귀가 열린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수준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른데 1차원을 보는 사람이 있고, 2차원, 3차원, 4차원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1차원의 눈은 보이는 것을 보는 눈이고, 2차원의 눈은 물체를 투시해서 보는 눈이며, 3차원의 눈은 시간을 초월해서 보는 눈입니다. 공간을 초월하면 4차원이고,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하면 5차원입니다.
공간을 떠난다는 것은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다른 차원의 공간을 말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100년 정도 주기는 같은 시간대라고 보는 것이어서 천 년이라든가 만 년이라든가 백만 년 정도를 떠나야 시간을 벗어났다고 보는 거예요.
만약 200년 후, 500년 후, 1,000년 후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다면 비로소 5차원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5차원에서 더 넘어가면 6차원, 7차원, 8차원, 9차원, 10차원으로 갑니다. 그렇게 갈수록 차원이 다른 세계, 영적 진화의 레벨이 다른 세계의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시작은 5차원부터 하는데 창조가 가능한 극도로 진화된 분들, 조물주님의 의중까지 읽을 수 있는 단계는 10차원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개안(開眼)입니다. 의도적으로 눈을 열고 닫고 하는 것은 그냥 기법상의 문제일 뿐이며, 진짜 눈이 열린다는 것은 그만큼 영성이 진화되어 다른 차원의 세계에도 의식과 감각이 가 있다는 뜻입니다.
영을 보고 귀신을 보는 차원에 계속 머물러 있는 분도 있습니다. 눈이 열렸다 하더라도 자꾸 쓰지 않고 일단 더 가야 합니다. 볼 줄 알더라도 일단 눈을 닫으면 다음 단계로 발전합니다. 그런데 대개는 재주 하나를 갖게 되면 거기 머물러서 자리를 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을 보기 시작하면 계속 귀신만 보다가 거기서 끝나더군요.
수련을 고도로 하여 집중도가 순식간에 어마어마하게 증가하면 이 증가한 집중력에 의해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기운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본인까지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동시이므로 사속(思速, 생각의 속도) 비행이 가능합니다. 우주는 생각으로 다 조절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생각과 동시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속은 광속보다 훨씬 앞 단계의 것입니다. 가령 광속으로 500억 년 떨어진 별이라 할지라도 사속으로는 순식간에 갈 수 있습니다. 사속의 1,000% 정도를 넘으면 시공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1,000%가 최대치라고 할 수 있으며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이상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팔문원이 나오면서 거리가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팔문원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전에 저는 단전으로 바로 갔는데, 보면 상•중•하단이 터널처럼 되어 있습니다. 《콘택트》라는 영화를 보면 여주인공이 앉은 자리에서 어디에 갔다 오는데 사람들은 아무 데도 안 갔다고 합니다. 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까요. 그런데 터널을 통해 갔다 온 것입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어지간히 아는 것 같더군요. 파장을 받아서 만든 것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우주로 가는 방법은 그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상단, 중단, 하단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제일 안전한 방법은 하단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고 두 번째 안전한 방법은 중단을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제일 불완전한 방법이 상단을 통해서 가는 것이고요.
처음에는 호흡을 고르면서 20~30분 있어야 들어가는데, 나중에는 5분이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팔문원이 나오고 나서는 순간적으로 가운데 원으로 들어갑니다. 가운데 원으로 들어가면 블랙홀인데 거기서 사라집니다. 터널처럼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길을 잃을 위험이 있어서 못 들어가게 합니다. 문이 안 열리는 것이지요. 때가 되면 문이 열려서 들어갑니다.
우주가 너무나 크다 보니까 우주인들도 오갈 수 있는 영역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천(下天)만 해도 하하천(下下天), 하중천(下中天), 하상천(下上天), 이렇게 구분이 되어 있는데 이것도 대략 구분한 것입니다. 우주가 그렇게 광대하기 때문에 우주인들도 자기가 속해 있는 차원의 우주만 왕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높지 못하면 그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가 본 게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곳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지구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외국에 나가보지 않았을 때는 우리나라만 있는 줄 알았고요. 우주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저기 사통팔달 다닐 수 있는 우주인은 차원이 높은 우주인입니다. 그중에서도 선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우주인은 헤로도토스인 정도입니다. 9등급 정도의 우주인만이 선계의 존재를 압니다.
다른 우주인들은 하늘이 끝인 줄 알고, 하늘에 있는 신들이 전부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인들이 잘못된 메시지를 주기도 하는데 자기들로서는 정답을 준 것입니다. 더 높은 차원은 모르고 자기들이 아는 수준에서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수련하면서 눈이 열려도 끊임없이 영적으로 확장되고 의식이 확장되어야만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거기서 거기입니다. 지구를 떠나서 북두칠성만 가도 크게 출세했다고 만족하면서 배 두드리고 삽니다. ‘나는 공부 끝났다’ 하는데 거기까지밖에 모르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한 은하를 벗어날 정도의 영성을 지녔다 하면 선인입니다. 선인은 자유자재로 은하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 단계에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길이 얼마나 먼 길인지 상상이 안 되실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참 해볼 만한 공부입니다.
이 수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제가 힘겹게 공부를 했고, 또 힘겹게 수련지도를 하면서도 붙들고 있는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부럽지 않고 박사가 부럽지 않고 백만장자가 부럽지 않더군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자기 노력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가 안 되었습니다. 힘들지만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지요?
- 『선인류의 삶과 수련1』(수선재)